29년 일한 소방관 '급성 백혈병'…법원 "공무상 질병으로 봐야"
2025-12-15 13:49:18 2025-12-15 13:49:18
[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29년간 소방공무원으로 근무하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백혈병)에 걸렸다면 공무상 질병으로 봐야 한다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소방공무원인 A씨는 2021년쯤 백혈병 진단을 받고 인사혁신처에 요양급여를 신청했습니다. 이에 인사혁신처는 A씨가 2년2개월여 동안만 화재 진압 및 구조 업무를 수행했고, 그로부터 22년이 지나 질병이 발생했으므로 공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무상 요양 불승인 처분을 했습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조합원들이 11월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제63주년 소방의날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뉴시스)
 
공무원 재해보상법은 공무상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리는 경우와 그 부상이나 질병으로 장해를 입거나 사망한 경우 공무상 재해로 봅니다. 공무상 질병은 △공무수행 과정에서 물리적·화학적·생물학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 질병 △공무수행 과정에서 신체적·정신적 부담을 주는 업무가 원인이 돼 발생한 질병 △직장 내 괴롭힘, 민원인 등의 폭언 등으로 인한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돼 발생한 질병 △공무상 부상이 원인이 돼 발생한 질병 △그 밖에 공무수행과 관련하여 발생한 질병 등으로 크게 나눠집니다.
 
특히 같은 법 시행령에 공무상 재해의 인정 특례를 두고 있는데, 화재 진압 및 구조가 주 직무로서 5년 이상 근무 후 발생한 백혈병은 직업성 암(공무수행 중 석면·벤젠·포름알데히드 등 발암물질에 장기간 노출돼 그 영향을 받은 신체 부위에 발생한 암)으로 분류돼 공무상 재해로 추정됩니다.
 
A씨는 29년간 소방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개인보호장구를 충분히 보급받지 못한 상태에서 화재 현장 출동업무를 수행해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의 유해 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인사혁신처가 인정한 기간 외에도 화재의 진압 및 경방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의 장, 당직근무 책임자, 소방서장으로 근무해 화재 현장을 지휘했고, 그 과정에서 일선 소방대원들과 마찬가지로 유해 물질에 노출됐다는 겁니다. 2021년 백혈병이 발병하기 전에는 관련 질환으로 진단이나 치료를 받은 적도 없고 가족력이나 유전력도 없으므로 백혈병과 공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A씨가 소방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백혈병의 발병 원인이 되는 유해 물질에 장기간 노출됨으로써 질병이 발병했다고 볼 수 있는지에 관해 주로 살펴봤습니다.
 
대법원은 공무원 재해보상법상 요양급여의 지급 요건이 되는 ‘공무상 질병’은 공무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질병을 뜻하는 것이므로 공무와 질병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있는지 증명해야 한다고 봅니다. 공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할 때는 △공무원으로 채용될 당시의 건강 상태 △질병의 원인 △근무 장소에 발병 원인 물질이 있었는지 △발병 원인 물질이 있는 근무 장소에서의 근무시간 △그 질병이 직무수행 환경 등의 공무상 원인이 아닌 다른 사유로 유발됐다고 볼 만한 사정이 있는지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법원은 백혈병이 골수에서 생성되는 혈액의 유전적 변화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으로, 노화, 방사선 피폭, 벤젠 또는 포름알데히드 노출, 흡연, 항암 치료 등이 유전적 변화에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는데, 석유화학제품이 연소되면 벤젠이 방출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소방공무원이 화재 현장에서 방출된 벤젠에 노출될 경우 백혈병이 발병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소방본부가 산정한 A씨의 화재 현장 출동 건수 1400여건 중 1047건은 신빙성이 높다는 점도 법원의 판단 근거가 됐습니다. △인사혁신처가 인정한 기간에 출동대원으로 출동한 188건 △A씨가 여러 소방서에 근무하면서 출동부서장으로 출동한 370건 △당직 책임관으로 출동한 420건 △소방서장으로 출동한 69건 등은 경남 조례 시행규칙 및 소방서 사무분장의 내용, 원고와 함께 근무한 소방공무원들의 진술에 부합해 신빙성이 높다는 겁니다.
 
인사혁신처는 △소방본부가 제출한 자료에 인사혁신처가 인정한 기간만 ‘외근 부서’로 기재돼 있고, 출동부서장 근무 기간은 모두 ‘행정 부서’로 기재돼 있는 점 △소방력 기준에 관한 규칙에서 방호요원, 구조·구급요원을 행정요원으로 분류한 점 △소방서가 출동할 때 방호·구조·구급 담당 부서의 장과 담당계장 등까지 모두 화재 현장에 출동한다는 것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점 등을 근거로 A씨가 출동부서장 근무 기간에도 행정업무만을 수행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인사혁신처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만약 인사혁신처의 주장을 고려해 A씨의 실제 출동 건수가 1047건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적어도 수백 건의 화재 현장에 출동해 화재 진압 업무 등을 수행했다는 점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밖에 A씨가 소방공무원으로 근무하기 전 백혈병과 관련된 질병을 앓았거나 가족력 및 유전력이 있다고 볼 자료가 없고,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도 약 29년간 소방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화재 진압 업무에 종사했다면 공무와 백혈병 사이에 업무관련성이 있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A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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