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자연에 맞춰 진화한 인간, 현대 환경에 부적응”
만성스트레스·출산율 급락 원인
산업사회와 생태 불일치의 결과
2025-12-09 09:52:58 2025-12-09 14:05:38
현대 산업사회가 인간의 생물학적 설계와 충돌하면서 건강과 생식 기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스위스 취리히대와 영국 러프버러대 연구진은 지난 11월 <바이올로지컬 리뷰(Biological Reviews>에 발표한 논문에서 “인간은 자연 속에서 움직이며 짧은 위협에 대응하도록 진화했지만, 현대 환경은 이러한 생리적 특성을 끊임없이 압박하고 있고, 이로 인해 현대인의 스트레스가 지속된다”고 밝혔습니다. 자연에 의해 형성된 인간의 생리학과 오늘날 대다수가 살아가는 고도로 산업화된 환경 사이의 근본적인 불일치(mismatch)에서 많은 문제가 파생되었다는 지적입니다.
 
수십만 년 동안 인간은 사냥-채집 생활의 신체적·심리적 요구에 맞춰 진화해 왔습니다. 이는 빈번한 이동, 짧은 순간의 강렬한 스트레스, 그리고 자연환경에 대한 일상적 노출을 필요로 했습니다. 산업화는 불과 수세기 만에 이 조건을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소음, 대기 및 빛 공해, 미세 플라스틱, 농약, 지속적인 감각 자극, 인공 조명, 가공식품, 장시간 앉아 있는 생활 등이 추가된 것입니다.
 
인간의 생식 기능이 떨어진 것은 현대 산업사회가 인간의 생물학적 설계와 충돌하면서 생긴 결과라는 연구가 발표됐다. 간호사들이 신생아실에서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매일 사자 수십 마리와 싸우는 셈”
 
연구를 이끈 콜린 쇼(Colin Shaw) 취리히대 교수는 현대인이 받는 스트레스의 성격이 달라졌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조상들의 환경에서는 포식자를 피하거나 맞서기 위한 급성 스트레스에 잘 적응해 있었다. 사자가 가끔 나타나면 자신을 방어하거나 도망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핵심은 사자는 사라진다는 점이다.” 이렇게 우리 몸의 스트레스 반응은 포식자의 공격처럼 짧은 위협에 최적화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인의 스트레스는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집니다. 교통 체증, 직장 내 압박, 소셜미디어, 지속적인 소음 등 지속적 자극이 신경계를 과흥분 상태로 만들며 회복 시간을 없앤다는 설명입니다.
 
롱맨 교수는 “우리 몸은 이 모든 스트레스 요인들을 사자처럼 반응한다”라고 설명합니다. “상사와의 어려운 논의든 교통 소음이든, 당신의 스트레스 반응 시스템은 마치 사자를 계속 마주하는 것과 같다. 결과적으로 신경계는 매우 강력한 반응을 보이지만 회복은 이뤄지지 않는다.” 조상들이 경험했던 신속한 해결과 달리, 이러한 스트레스 요인들은 거의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규칙적 회복 없이 누적되는 만성 스트레스는 고혈압, 우울증, 수면 장애, 인지기능 저하 등 전신 건강을 훼손하고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연구진은 산업환경의 변화가 인간의 생존과 번식 능력에 직접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산업화 및 도시생활로의 전환이 인간의 진화적 적합성을 저하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화적 성공은 생존과 생식 능력 두 가지에 달려 있으며, 산업화가 시작된 이후 모두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강조합니다.
 
전 세계적인 출산율 하락은 정자 수와 운동성 감소의 결과이며 이것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 현상입니다. 쇼 교수는 “농약·제초제, 미세플라스틱, 가공식품 노출이 생식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연구진은 천식, 알레르기, 장염증질환 등 각종 면역질환이 산업국가에서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이것은 “화학물질, 미세먼지, 장시간 좌식생활 등 현대적 조건이 면역체계를 지속적으로 자극한 결과”라고 분석합니다. 쇼 교수는 “한쪽으로는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부와 안락함, 의료 서비스를 창출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산업적 성취 일부가 우리의 면역, 인지, 신체 및 생식 기능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역설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인간이 직면한 역설을 진화 인류학(Evolutionary Anthropology)의 관점에서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환경을 인간 진화 속도에 맞춰야”
 
문제는 인간의 진화 속도가 환경 변화를 따라갈 수 없다는 점에 있습니니다. 쇼 교수는 “생물학적 적응은 수만~수십만 년이 걸린다”며 “현대 환경에 맞춰 인체가 알아서 변화하길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연구진은 문제 해결의 대안으로 문화적·환경적 재설계, 특히 자연 중심의 계획이 필수적이라고 제안합니다. 
 
인간이 진화했던 환경과 비슷한 풍경을 복원해야 인간 생리학에 더 부합한 삶의 조건을 만들 수 있다. 서울 도심속 공원에서 열린 가족숲속도서관 행사 모습. (사진=뉴시스)
 
연구진은 자연을 공중보건의 핵심 요소로 간주하고, 인간이 원래 진화했던 환경과 비슷한 풍경을 보호하거나 복원할 것을 제안합니다. 또 도시 설계를 재고해 인간 생리학에 더 부합하고 유해한 노출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쇼 교수는 “우리 연구는 예를 들어 혈압, 심박수 또는 면역 기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자극 요인을 식별하고 그 지식을 의사 결정권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며 “우리는 도시를 올바르게 설계해야 하며 동시에 자연 공간을 재생하고 가치 있게 여기며 더 많은 시간을 자연 속에서 보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늘도 AI 경쟁과 속도에 맞춰야 살아간다고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호모 사피엔스에 던진 ‘인간의 생리적 원리에 맞는 환경 재설계와 생활’이라는 화두는 정책 결정자만이 아니라 개인의 성찰도 함께 촉구하고 있습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