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최근 대법원은 지역주택조합 탈퇴자들이 '환불 약속이 무효니까 조합 가입계약도 무효·취소'라고 주장하면서 이미 낸 분담금을 돌려달라고 한 소송에서 '이제 와서 돈 돌려달라는 건 신의칙(믿음과 성실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돌려주지 말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기존 1·2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이 사건의 지역주택조합은 경남 창원시에 아파트를 신축하기 위해 설립됐습니다. 소송을 낸, 조합을 대상으로 분담금의 반환을 청구한 조합원들은 2015년 6월쯤 조합원 가입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조합은 조합가입계약 당시 조합원들에게 2015년 12월까지 사업계획 승인 신청 접수를 하지 못하면 계약금 일체를 환불하겠다는 확약서(환불보장약정)를 작성한 바 있습니다.
조합은 2015년 11월쯤 조합설립인가를 받았으나, 2016년 5월쯤에야 사업계획 승인 신청을 접수해 같은 해 7월쯤 사업계획 승인을 받았습니다. 조합원들은 별다른 이의 없이 2017년 11월쯤까지 4차례 분담금을 추가로 납부했고, 조합의 보증으로 중도금을 대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일부 조합원들이 중도금의 대출원리금을 갚지 않자 조합이 대신 변제를 해줬습니다. 그러고서도 분담금을 내지 않은 조합원들은 제명하는 결의를 했습니다. 그러자 제명된 조합원들이 조합을 상대로 '환불보장약정이 무효니까 가입계약 자체도 무효·취소'라고 주장하면서 지금까지 낸 납부금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낸 겁니다.
1심에선 조합원들이 이겼습니다. 조합이 조합원들과 조합가입계약을 체결하면서 환불보장약정을 했는데, 이 약정이 없었다면 가입계약을 체결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고 봤습니다. 환불보장약정은 총회의 결의 없이 체결된 것으로 무효이고, 애초부터 조합원들은 환불보장약정에 따라 납부금을 반환받을 수 없어 착오에 의해 가입계약을 체결했으므로 가입계약은 적법하게 취소됐다고 판단했습니다. 납부금을 돌려달라는 조합원들의 주장이 권리남용이나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지도 않으므로 조합이 조합원들의 납부금을 돌려줘야 한다고 본 겁니다.
2심도 1심의 판단을 그대로 인정했습니다. 환불보장약정이 무효이고 조합원들은 그 약정이 유효하다고 착오해 가입계약을 체결했는데 이는 중요 부분의 착오에 해당해 가입계약이 취소됐고, 환불보장약정이 무효인 이상 그와 일체로 체결된 조합가입계약은 무효라고 본 겁니다. 조합원들이 2015년 환불권을 행사할 수 있었음에도, 이후 수년간 조합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에서 환불보장약정을 문제 삼아 가입계약의 무효 또는 취소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는 조합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법원도 조합가입계약이 적법하게 취소됐거나 계약 자체가 무효라고 본 2심 판단은 맞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조합원들이 분담금의 반환을 구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우선 조합원이 지역주택조합 가입계약을 체결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주택건설사업이 성공적으로 완료돼 신축아파트의 소유권을 취득하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조합원이 조합가입계약과 함께 환불보장약정을 체결하는 주된 목적은 조합가입계약의 목적 달성 실패로 인한 손해를 최소화하려는 것이지 분담금 반환을 절대적으로 보장받으려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지역주택조합은 비법인사단(사단의 실질을 가지지만 법인격이 없는 단체)에 해당하는데, 민법은 비법인사단의 소유를 총유로 보고 총유물의 관리와 처분은 사원총회의 결의에 의하도록 하므로 사원총회의 결의를 거치지 않으면 총유물의 처분행위는 무효가 됩니다. 따라서 대법원도 환불보장약정이 총유물 처분행위에 해당해 총회의 결의가 없다면 무효가 될 수 있고 조합가입계약의 무효 또는 취소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본 겁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환불보장약정이 무효가 되더라도 조합가입계약의 궁극적 목적인 신축 아파트 소유권 취득에는 지장이 없는 경우도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조합원이 조합가입계약 등의 무효나 취소를 주장하지 않는 동안 환불보장약정에서 환불 조건으로 삼은 절차가 이행돼 목적이 달성되고 주택건설사업의 절차에 따라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면, 조합원이 환불보장약정의 목적과 취지를 벗어나 환불보장약정의 무효와 그에 따른 조합가입계약의 무효나 취소를 뒤늦게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거나 권리의 남용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환불보장약정의 주된 목적은 조합이 조속히 사업계획 승인 신청을 하고 사업계획 승인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인 점 △환불보장약정에서 정한 기한을 넘기긴 했지만 결국 사업계획 승인을 받은 점 △주택건설사업이 절차대로 진행되고 있고 사업이 무산될 우려가 없는 점 △당초 약정에서 정한 기간이 지난 이후 상당한 기간 조합원들이 계약금의 반환 요구나 분담금 반환 요구가 없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당초의 반환의사를 묵시적으로 철회한 것이라고 봤습니다.
반면 지역주택조합의 주택건설사업은 그 성패에 따라 다수 조합원의 안정적 주거 마련 여부가 좌우되므로 그 재원인 조합원 분담금은 상당한 공공성을 띠게 되는데, 위 환불보장약정의 목적이 달성되고 사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에도 제명된 조합원들에게 분담금을 반환한다면 그 피해가 나머지 조합원들에게 돌아간다는 점도 판단의 이유가 됐습니다. 조합원으로서의 의무를 해태한 조합원들은 아무런 손해를 입지 않는 반면, 지역주택조합은 사업계획 승인 이후 신규조합원을 모집할 수 없어 다른 조합원들이 그 손해를 전적으로 부담하게 되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된다는 겁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