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금감원, 알고도 못 막은 CB 공시 위반…1년래 73곳 의심
CB제도 개선한다더니 상장사 자발적 공시에 의존
그나마도 증발공 규정 재탕…금감원 감독 소홀
2024-05-30 06:00:00 2024-05-31 10:33:57
[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금융당국이 전환사채(CB) 불공정거래 악용을 막겠다며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증발공)’ 개정안을 예고했지만 실효성이 크지 않을 전망입니다. CB 등의 발행 및 유통공시를 강화하고 CB 전환가액 조정을 합리화하는 내용인데요. 사실 대부분은 이미 2021년부터 시행 중인 사안들입니다. 오히려 금융감독원이 그동안 제대로 관리감독을 하지 않아 현재도 수십건의 CB 관련 공시 위반이 버젖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손놓은 금감원실상은 '재탕' 발표
 
금융위원회는 지난 27일 ‘전환사채 시장 건전성 제고 방안’에 대한 후속조치로 증발공 규정에 대한 개정 예고를 실시한다고 밝혔습니다. △CB 등의 발행 및 유통공시 강화 △CB 전환가액 조정 합리화가 골자로 3분기 중 시행될 예정입니다.
 
CB 발행·유통공시 강화 부분에선 일명 ‘반품 CB’라 불리는 만기 전 취득한 CB의 재매각에 대한 공시가 강화됩니다. 재매각 CB는 무자본 M&A 세력 등의 ‘먹튀’에 주로 활용됐습니다. 무자본 M&A 세력 등이 회사의 주가를 끌어올린 후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자기사채를 제3자에게 재매각하면 단기간에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위의 증발공 개정 역시 재매각 CB가 불공정거래에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회사가 CB 등을 만기 전 취득시 ‘주요사항보고서’를 통해 관련 정보를 공시해 시장의 감시와 견제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인데요. 이밖에 최대주주의 편법적 지분 확대 등을 막기위해 콜옵션(매도청구권) 행사자 지정과 제3자 양도에 대해서도 주요사항보고서를 통해 공시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다만 일각에선 이번 개정안에 대해 ‘재탕’ 발표라는 지적을 내놓습니다. 이미 증발공에 자기 CB 매각시 ‘주요사항보고서’를 통해 공시해야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이를 감독해야할 금감원이 그간 손을 놓고 있었다는 설명인데요. 실제 지난 2021년 10월 신설된 증발공 4장 3절에는 “상장사가 자기 CB를 취득해 재매각하거나 CB 콜옵션을 부여할 경우 주요사항보고서 공시를 해야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결국 상장기업들이 만기전 취득한 CB를 재매각할 경우 반드시 주요사항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게 현재 규정인 셈입니다. 주요사항보고서를 미제출할 경우 공시의무 위반에 해당합니다. 다만 실제 금감원의 조치가 이뤄진 곳은 손에 꼽습니다. 
 
지난해 금감원은 공시위반으로 총 105개사 116건의 공시 의무 위반에 대해 조치했습니다. 116건의 공시위반 중 주요사항공시 관련 조치는 총 4건입니다. 더구나 105개 기업 중 101개 기업은 비상장법인이었는데요. CB 발행이 대부분 상장기업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할 경우 사실상 CB 재매각 관련 조치는 전무했던 것으로 추산됩니다. 
 
1년간 자율공시 73건…공시위반 가능성
 
지난해 6월부터 최근 1년간 상장기업들이 주요사항보고서를 통해 자기 CB 재매각 사실을 공시한 건은 총 90건 36개 기업입니다. 이중 철회공시 10건을 제외할 경우 80건에 그칩니다. 다만 실제로 재매각이 이뤄진 건수는 이를 크게 웃돕니다.
 
같은기간 ‘기타경영사항(자율공시)’를 통해 자기 CB 재매각 사실을 공시한 건수는 73건에 달하는데요. 해당 공시를 진행한 기업들 대부분은 따로 재매각에 대한 주요사항보고서는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달 자율공시를 통해 재매각을 공시한 엑스플러스(하인크코리아(373200)), 디딤이앤에프(217620), 노블엠앤비(106520), THE E&M(089230) 등은 따로 주요사항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자율공시를 통해 주요사항보고서를 대체한 것인데, CB 재매각의 경우 주요사항보고서(2021년 11월 이후 발행) 제출이 의무 사항으로 자율공시로 대체할 수 없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그간 자율공시를 통해 재매각 사실을 알린 곳들은 공시의무 위반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자율공시로도 CB 재매각 사실을 공시하지 않는 상장기업들을 포함할 경우 매해 공시위반 대상이 되는 상장기업은 80여곳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례로 아이엠(101390)의 경우 지난해 7회차 CB(65억원)를 만기전 취득했습니다. 해당 CB는 전량 주식(지분 11.73%)으로 전환됐지만 최대주주를 비롯한 특정 주주의 ‘5%룰’(대량보유보고) 공시는 없었습니다. 5%룰을 피해 여러 조각으로 나눠 매각됐지만 이를 공시하지 않은 것입니다.
 
상장기업들의 공시 의무 위반에 대해 금감원은 상장사들의 자발적 공시에 의존하며 손을 놓고 있습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CB 재매각에 대한 주요사항보고서 제출의무는 자율공시로 대체할 수 없다"면서 "주요사항보고서 제출 사유에 해당돼 이를 공시하지 않았다면 공시위반 개연성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주요사항보고서 미공시 등을 적발하면 모두 조치를 취하고 있다”면서도 “사전적으로 모두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시장 정보 여전히 부족…추가 개선 필요
 
자율공시는 주요사항보고서에 비해 투자자들에게 제공되는 정보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주요사항보고서를 통해 CB를 재매각할 경우 상장법인은 재매각 대상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공개해야 합니다. 개인의 경우 실명이 공개되며, 투자조합이나 법인일 경우 출자자수와 대표자, 최대출자자 등의 정보가 제공됩니다. 
 
자율공시의 경우 증발공 의무사항이 아닌 한국거래소 소관사항으로 투자자에게 제공되는 정보가 한정적입니다. 자율공시로 CB 재매각 사실을 알린 디딤이앤에프의 경우 113억원 규모의 9~10회차 CB 재매각하면서 거래상대방에 대해 ‘외국법인’ 정도만 표시했습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에 2600여개의 상장사들이 있는데 정기보고서 등을 제외한 주요공시들의 제출 여부를 전부 파악하기는 힘들다"면서도 "증발공 개정과 함께 거래소 공시규정 개정 등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금융감독원 전경.(사진=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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