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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의 미디어 비평)기자에게 용기를
2024-02-19 06:00:00 2024-02-19 06:00:00
세상을 바꾸겠다는 뜨거운 열정을 품은 청춘들이 한때 이상형으로 꼽았던 직업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기자였다. 감춰진 비리를 파헤쳐 세상을 밝혀주고 타락한 권력에 맞서 정의를 바로 세우는 영웅, 펜과 수첩을 들고 현장을 누비면서 백만가지 삶의 모습을 스케치하는 사람, 우리는 그들을 기자 또는 저널리스트라 불렀다. 직장 상사 눈치나 보는 구차한 셀러리맨이 아니라 권력자 앞에서도 고개 들고 할 말 하는 당당함이 언론인의 자랑이었다. 어두운 곳을 밝히는 횃불이요, 힘든 자의 가슴을 울리는 목탁 같은 기자가 고된 노동과 박봉을 이겨 낸 것은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대중들이 좋아하는 영화에서도 기자는 매력적이고 영웅적으로 그려졌다. 2016년 개봉한 미국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미국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보스턴 글로브’ 기자들이 카톨릭 사제들의 아동성추행 의혹을 파헤친 영화다. 2년 뒤 나온 ‘더 포스트’는 70년대 베트남전의 기밀문서 폭로를 둘러싼 미국의 두 유력지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의 경쟁과 활약을 멋지게 그렸다. 로자먼드 파이크가 ‘애꾸눈 종군기자’로 열연한 2018년 영화 ‘더프라이빗 워’는 오로지 진실만을 좇아 세상을 바꾸는 기자의 모습이 담겨있다. 2019년 일본 영화 ‘신문기자’에서 기자로 출연한 한국 배우 심은경씨가 “아무도 물어보지 않으면 내가 물어볼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장면은 기자가 봐도 가슴이 뛴다. 언론 혹은 저널리즘을 다룬 해외 영화들은 예상 외로 흥행에도 성공하고 영화제에서 상도 많이 받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세계 최고 감독에 메릴 스트립, 톰 행크스, 로자먼드 파이크 같은 헐리우드 최고 배우들이 언론인으로 분장한 영화를 보고 기자라는 직업에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한국 영화에 등장하는 기자의 모습은 좀 다르다. 기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가 많지도 않고, 그나마 조연으로 등장해 ‘술꾼’ ‘찌질이’ 정도로 희화화됐다. 대학생 박종철의 고문치사 사건과 민주화 운동을 담은 영화 ‘1987’에 나온 기자는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경찰 발표를 뒤집는 역사적 특종을 보도했지만, 단역이어서 관객의 기억에 별로 남지는 않았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라는 영화 ‘내부자’들의 모 신문사 주필은 권력·자본과 한 몸이 되어 뒹굴다가 ‘대중은 개돼지’라는 명대사를 남긴 뒤 한쪽 팔이 잘리는 빌런으로 그려졌다. 
 
국산 영화들이 그리고 있는 것처럼, 요즘 한국에서 기자, 언론인 혹은 저널리스트로 산다는 것이 그렇게 행복하거나 영예롭지는 않은 것 같다. 정의로운 ‘지사(志士)’ 이미지보다는 남이 사주는 술에 취해 갑질하기 좋아하는 ‘받아쓰기’ 직장인으로 인식되고 있을 뿐이다. 기자들 스스로도 높지 않은 연봉, 부족한 휴식, 따가운 외부 시선 때문에 기자로서 삶에 별로 만족해하지 못하고 있다. 기자단체가 지난해 회원 기자 99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39%만 기자직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5년 전 52%에서 매년 하락하더니 30%대까지 낮아진 것이다. 외부에서 기자를 보는 시선도 별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조사한 작년 언론인 신뢰도는 2년 전에 비해 한 단계 낮아졌는데, 10개 직업군 중에 연예인보다는 높고 종교인보다 낮은 6위였다. 
 
국민들이 기자에게 ‘멸칭’을 붙여 부른 지 벌써 10년 가까이 됐지만, 기자에 대한 비하와 혐오는 줄지 않고 있다. 국민들 뿐인가? 최근에는 정부가 기자를 더 우습게 보고 있다. 본연의 업무인 권력 비판을 열심히 하는 기자에게 ‘난동 부린다’고 질책하고, 툭하면 집까지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벌였다.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멋대로 중단시키더니 대통령실 출입도 막았다. 그 와중에 일부 기자들은 대통령 영부인과 셀카놀이로 욕을 먹고, 공영방송 30년차 기자가 대통령 ‘심기보좌’ 특별대담 방송을 벌여 기자 망신의 최대치를 보여줬다. 요즘 기자들은 울고 싶을 것이다. 일은 힘든데 어디 가서 환영은커녕 ‘박절하게’ 내쳐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기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지지를 보내야한다. 정의롭고 열정 넘치는 기자들이 아직 남아있다.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이들과 함께 가야한다. 문제는 정의롭고 열정넘치는 기자를 찾아내는 일 뿐이다. 
 
김성재 전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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