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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2024, 상상 그 이상의 해가 되기를!
2024-01-03 06:00:00 2024-01-03 06:00:00
월터 : 언제 찍을 거예요?
숀 : 어떤 때에는 안 찍어. 아름다운 순간을 보면 난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잃어버린 25번 사진을 찾으러 올라간 아프가니스탄의 히말라야산맥 중턱에서 숀 오코넬은 ‘유령 표범’이라 불리는 눈표범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눈표범이 마침내 나타났을 때 숀은 셔터를 누르는 대신 월터가 카메라렌즈로 직접 눈표범을 볼 수 있게 해준다. 고작 몇 초의 시간. 별명에 걸맞게 유령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그 찰나를 위해 그들은 전쟁과 눈발의 위험을 뚫고 그 먼 길을 간 것이었다. 
 
숀은 직업이 사진작가이니 또 그렇다고 치자. ‘라이프’ 잡지사에서 필름 원화 관리자로 일하는 월터 미티는 그게 웬 사서 고생인가 말이다. 문제의 25번 사진은 잡지사 폐간을 앞두고 마지막 호에 실릴 사진이었다. 그것도 표지사진! 게다가 때는 정리해고가 예고된 직후였다. 그런데 사실 그 사진은 16년간 자신의 작품을 멋지게 완성해 준 월터에게 숀이 선물로 주고 싶어 ‘특별하게’ 저장해 전달한 것인데 월터가 그것을 알 수 없었기에 ‘사고’가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인생에 그 어떤 것도 온전히 나쁘거나 온전히 좋은 것이 있던가. 당시의 ‘사고’는 월터를 결국 해고했지만 잊지 못할 경험과 인연을 선사하기도 했다. 평소 상상을 즐겨하던 월터였지만 사고를 수습하러 숀을 찾아 떠나는 길에서 월터는 상상 이상의 스릴과 감동의 순간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사고가 없었다면 어쩌면 그런 순간들은 평생 월터의 삶 속에 없었을 일이라는 얘기다. 결과론적인 말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행과 불행의 정중앙에서 즉각적인 판단과 평가를 내리는 일의 위험성을 이미 크고 작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하여 어떤 일의 진정한 의미를 알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시간의 흐름을 허락한다.
 
이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나는 매년 1월1일에 본다. 올해로 10번째이다. 익히 아는 내용인데도 그해의 나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데 예를 들어 어떤 해는 ‘도전의식’으로, 어떤 해는 ‘일의 가치’로, 어떤 해는 ‘운명적 관계’로, 어떤 해는 ‘인과론’으로 다양하게 읽히는 것이다. 올해의 키워드는 ‘시선’이었다.
 
나를 포함해 많은 분은 세계 곳곳을 떠돌며 온갖 진기한 것들을 렌즈에 담는 숀의 일상을 특별하게 바라볼 것이다. 반면 월터처럼 루틴하게 집과 직장을 오가는 샐러리맨의 일상은 너무도 평범해서 아무런 감흥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의식이 월터의 일상보다 숀의 일상을 우위에 놓거나 숀이 사는 방식으로 삶의 지향을 둘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시선은 쉬이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 더 잘, 오래 남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편견이라는 걸 숀은 25번 사진으로 분명히 말해준다. 늘 같은 자리에서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내는 월터의 모습, 그것이야말로 숀의 눈에는 가장 특별하며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간직해야 할 순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름다운 것들은 관심을 바라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2024년, 청룡의 해인 갑진년이 시작되었다. 
영화의 메시지와는 별개로 우리네 삶은 자주 버겁고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며 외로울 것이다. 평범하고 때론 지질한 우리를 숀처럼 아름답게 봐줄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선’에 희망이 있다. 아름다운 것들은 관심을 바라지 않지만, 관심을 두는 것들은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올 한 해, 독자 여러분들의 소원성취와 더불어 우리의 시선이 모이는 곳에서 대한민국의 위대한 아름다움이 피어나길 간절히 소망한다.
 
이승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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