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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탈취 소송, 행정조사 자료 제출 촉탁 말고 '명령'을"
현행법상 공정위 등에 조사자료 제출 '촉탁' 가능
명령 없으면 웹사이트 게시된 의견서만 내
가해 기업 보유 자료 확보 난관…법원 명령 절실
명령 있어도 공무원에 불이익 없도록 확신 줘야
2023-05-30 15:23:43 2023-05-30 15:23:43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기술 탈취 소송에서 법원이 관련 기관에 증거 자료 제출을 강제할 수 있게 법을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박희경 재단법인 경청 변호사는 30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열린 '기술 탈취 행정조사 기록 민사소송 연계를 위한 국회 입법 세미나'에 참석해 기술 탈취 피해 중소기업을 위한 행정조사 기록 확보 방안에 대해 제언했습니다.
 
박희경 재단법인 경청 변호사가 30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열린 '기술 탈취 행정조사 기록 민사소송 연계를 위한 국회 입법 세미나'에서 기술 탈취 피해 중소기업을 위한 행정조사 기록 확보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우선 박 변호사는 관련법 사문화로 공정위의 적극적인 협조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공정거래법 110조와 하도급법 35조 4항이 사문화됐다는 것인데요. 법원은 공정거래위원회에 증거가 될 수 있는 모든 자료 송부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법적 의무에도 기록송부 의무를 강제할 방안이 없습니다.
 
박 변호사는 "문서 제출 명령 신청을 하려면 요건이 어느 정도 있는데, 공정위 기록은 문서 제출 명령 조건을 충족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실무상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이 때문에 당사자는 보충적 방법으로 문서 송부 촉탁을 신청합니다. 이건 명령이 아니라 부탁입니다. 문서를 보관하는 사람에게 이 문서를 법원에 보내달라고 부탁하므로 강제력이 없습니다.
 
박 변호사는 "우리가 정말 필요한 자료는 가해 기업 보유 자료"라며 "가해 기업의 보유 자료를 침해 입증이나 손해배상 증명을 위해 확보하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박 변호사에 따르면 이때 공정위는 실무상 웹사이트에 공개된 의결서만 법원에 송부합니다. 기타 자료 송부는 사실상 거절하는 겁니다.
 
특허청과 중소벤처기업부를 통한 증거 확보 역시 관련법 사문화로 제대로 안 된다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부정경쟁방지법 14조의7은 법원이 특허청에 부정경쟁행위 등 조사기록 일체를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상생협력법 40조 4항도 법원이 중기부 장관에게 사건 기록 송부를 요구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도 기록 송부 자체를 강제할 방안이 없습니다. 법원은 이들 기관에도 문서 송부 촉탁 형식으로 기록 송부를 요구합니다. 이 때문에 해당 규정으로 민사상 증거 활용을 위한 행정조사 기록 확보도 어렵습니다.
 
소송상 기록 송부 의무를 강제할 방안은 문서 송부 촉탁이 아닌 '문서 제출 명령'입니다. 이건 법원 명령이어서 응하지 않으면 입증상 불이익이나 과태료 부과 등 불이익이 있습니다.
 
현행 국세기본법은 세무 공무원이 업무상 취득한 과세자료에 대해 법원의 제출명령으로 소송상 증거자료를 확보할 수 있게 합니다.
 
박 변호사는 기술탈취 관련 소송에서도 상대방이 갖고 있지 않은 내부 심의 보고서와 조사 보고서, 조사 진술서, 전문가 감정 의견서 등을 확보하려면 공정위 대상 문서 제출 명령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공정위 외에 특허청과 중기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두고 공무원의 직무상 비밀유지 의무와 자료 제출 의무가 충돌하지 않느냐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박 변호사는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 국가공무원법상 일반적 비밀엄수 규정은 절대적 비밀 엄수 의무가 아니어서 단서 조항 등 예외 규정을 만들 수 있다고 봤습니다.
 
30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열린 '기술 탈취 행정조사 기록 민사소송 연계를 위한 국회 입법 세미나'에서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재단법인 경청)
 
문서 제출 명령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로는 한화와 에스제이이노테크 간 태양광 스크린 프린터 기술 탈취 분쟁이 소개됐습니다. 에스제이이노테크 법률 대리인인 정영선 법률사무소 동락 변호사는, 자녀가 눈 앞에서 납치됐지만 CCTV를 볼 수 없는 게 적법한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라고 개탄했습니다.
 
이어진 토론에서 전문가들은 관련법 개정 필요성에 공감하며 효용성 확보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황보윤 법무법인 공정 대표변호사는 법원 제출 명령이 있어도 행정기관이 명령에 따를 것이란 보장이 없다며, 명령 위반에 대한 제재 규정을 둬야 한다고 했습니다.
 
전종원 법무법인 정률 변호사는 법원이 문서 제출 명령을 한 경우 공무원이 해당 자료를 법원에 낼 때 불이익이 없다는 확신을 주는 방향이 맞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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