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취임 후 세계를 3만km 이상 누빈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지구 한바퀴의 약 4분의3 거리를 도는 수준입니다. 삼성의 차세대 먹거리를 발굴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각오를 드러낸 셈인데요. 대한민국 서울과 7077km 떨어진 아랍에미리트(UAE)의 모래바람을 뚫고 중동 시장을 점검하는가 하면 중국 955km, 베트남 3600km, 스위스 8970km, 일본 1159km, 미국 1만1000km 등 취임 후 7개월 간 광폭행보를 펼쳤습니다. 이 회장은 해외에서 경영현장을 점검하고 글로벌 경영인들과 만나 전략 사업을 논의했는데요. 복합적인 사업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신성장 동력 마련에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취임 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해외 출장 이동거리.(그래픽=뉴스토마토)
"중동은 기회의 땅"…UAE서 IT 시장 개척 의지
이 회장은 지난해 10월 취임 후 첫 해외 출장지로 아랍에미리트(UAE)를 찾았습니다. 당시 이 회장은 UAE 아부다비에 있는 바라카 원자력 발전소 건설 현장을 찾아 3·4호기 건설 상황을 점검했는데요. 중동 지역 법인장들을 만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대변혁'을 추진 중인 중동은 기회의 땅"이라며 "어려운 상황이지만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자"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바라카 원전은 삼성물산이 포함된 '팀코리아'컨소시엄이 진행 중인 한국 최초의 해외 원전 건설 프로젝트입니다.
이 회장이 첫 출장지로 UAE를 택한 이유가 관심을 모았는데요. 전세계적으로 공급망 위기가 지속되는데다 주력 사업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중동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됐습니다.
여기에 UAE가 180억달러를 투입한 스마트 프로젝트인 '마스다르시티' 건설은 삼성 입장에서 5G·반도체 등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확보할 수 있는 호재입니다.
이후 이 회장은 두 번째 해외 출장지로 베트남을 택했습니다. 서울과 약 3600km 떨어진 베트남으로 향한 이 회장은 하노이 '베트남 삼성 R&D센터' 준공식에 참여했습니다. 이 회장은 하노이 인근 삼성 생산공장에 들러 사업 현황을 점검했는데요. 베트남 일정이 끝난 뒤에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찾아 동남아 주요 거점 등을 9일간 둘러보는 장기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베트남 삼성 R&D센터는 글로벌 기업이 베트남에 세운 최초의 대규모 종합 연구소인데요. 2200여명의 연구원들이 상주하며 스마트 기기, 네트워크 기술, 소프트웨어 등을 연구할 계획입니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삼성 R&D 센터는 베트남의 산업 경쟁력 강화는 물론 한·베트남 양국 간 우호 협력 증진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회장은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의 스위스 다보스 순방에 경제사절단으로 참여했습니다. 이 곳에서 이 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빛났다는 평가가 나왔는데요. 이 기간 열린 윤 대통령과 글로벌 최고경영자(CEO) 오찬에 이 회장은 평소 친분이 있던 인텔과 퀄컴 등의 CEO를 직접 섭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회장이 윤 대통령에게 크리스티아누 아몬 퀄컴 CEO를 소개하면서 어깨를 툭 친 것은 이 회장의 글로벌 인맥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장면으로 꼽힙니다.
이후 3월엔 윤 대통령의 일본 순방에 동행했습니다. 이 회장은 이 기간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일본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이 여는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했습니다. 이 회장은 일본 출장을 통해선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일본과 협업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업계에선 통신 사업 협력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요. 앞서 삼성전자가 일본 1·2위 통신사업자인 NTT도코모, KDDI 등 일본 1·2위 통신사업자에게 5G 네트워크 장비를 공급하게 된 것도 이 회장의 일본 내 인맥이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사진=연합뉴스)
전장용 MLCC 등 미래 시장 선점 위한 사업 구상
이 회장은 일본 출장과 같은 달에 중국을 찾았는데요. 중국 출장의 경우 정중동 행보를 보였습니다. 이를 두고 미중 기술패권 경쟁 심화 속에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보유한 삼성전자의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중국 출장에서 이 회장은 톈진 삼성전기 사업장을 방문해 전자부품 생산 공장을 점검했는데요. 삼성전기 톈진 공장은 부산사업장과 함께 글로벌 시장에 IT(정보통신)·전장용 MLCC를 공급하는 주요 생산 거점입니다. 전자제품 전반에 쓰이는 MLCC는 반도체에 공급되는 전력량을 일정하게 제어하는 핵심 부품입니다.
전기차, 자율주행 기술 발전과 함께 급성장하고 있는 전장용 MLCC 사업 분야를 이 회장이 각별히 챙기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 회장은 지난달엔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 경제사절단에 동행했습니다. 공식 일정 이후에도 미국에 남아 총 22일간의 출장 일정을 소화한 뒤 지난 12일 귀국했습니다. 회장 취임 후 가장 긴 출장 기간이었습니다.
이 회장은 미국에서 바이오, 정보통신기술(ICT), 인공지능(AI), 차세대 모빌리티 등을 주도하는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20여명과 회동했습니다. 하루에 한명 이상 거물급 글로벌 수장들을 만난 셈입니다.
이 회장은 미국 출장 기간 동안 동부 바이오 클러스터와 서부 실리콘밸리 ICT 클러스터를 누볐는데요.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 팀 쿡 애플 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등 글로벌 IT 공룡 수장과 연이어 만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어 호아킨 두아토 존슨앤존슨 CEO, 지오반니 카포리오 BMS CEO, 누바 아페얀 플래그십 파이어니어링 CEO, 리스토퍼 비에바허 바이오젠 CEO, 케빈 알리 오가논 CEO 등 바이오 분야 대표들과도 연달아 만나며 미래 사업을 논의했습니다.
장기간의 미국 출장은 AI(인공지능) 분야와 차량용 반도체 같은 삼성의 '미래 먹거리'에 이번 출장의 초점을 맞춘 것으로 분석됩니다. 아울러 글로벌 네트워크를 다지고 '뉴 삼성'을 이끌 미래 먹거리에 대한 전략을 구체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재계 관계자는 "5일 중 하루는 출장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이 회장이 숨가쁜 일정을 이어가고 있다. 아마 비공개 외부 일정까지 포함하면 지구 한바퀴가 넘을 것"이라며 "불확실한 대내외 여건을 돌파하기 하기 위한 과제와 신사업 전략을 모색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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