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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얼굴의 행동주의펀드)"주주수호" 대 "주가조작단"
2023-05-11 06:00:00 2023-05-11 06:00:00
[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자본시장에 행동주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국내 주식 투자 인구는 기존 600만명에서 1400만명 수준으로 늘었고요. 지난 3월 주총 시즌에선 행동주의 펀드는 소액주주를 비롯한 지지세력을 끌어모으며 주주 권리 강화를 외쳤습니다. 과거 ‘기업사냥꾼’ 이미지가 강했던 것과 비교해 소액주주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는 호평이 나옵니다. 다만 시장의 평가는 여전히 양극단을 달리고 있습니다. 주주 가치 기치를 이용해 주가를 부양한 이후 대규모 차익 실현에 성공한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섭니다.
 
주주행동주의 급부상…행동주의펀드 '두각'
 
(그래픽=뉴스토마토)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상장기업들의 주주총회에서 주주제안 안건 상정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최근 5년간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제안 안건을 상정한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19~2022년 4년간 30개사 전후의 회사에서 주주안건을 상정했던 것에 반해, 2023년도에는 총 47개사로 전년(29개사) 대비 62.1%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코로나19 이후 개인투자자들의 주식시장 참여가 활발해졌고 주주 가치 제고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면서 주주총회 풍경도 바뀐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주주 제안은 배당확대나 자사주 취득 등 주가 상승을 목표로 하는 정관변경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이사회 개선 등 지배구조 변화와 요구하는 추세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자본시장에 주주행동주의가 급부상한 겁니다.
 
주주행동주의란 주주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배당금이나 시세차익에만 주력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부실 책임 추궁, 구조조정, 경영투명성 제고 등 경영에 적극 개입하는 행위 등이 속합니다.
 
주주행동주의 급부상과 함께 행동주의펀드의 존재감도 커졌습니다. 주총에서 행동주의펀드가 주주제안을 하거나 특정 안건을 지지한 기업등의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하기도 했죠.
 
가장 대표적 사례는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입니다. 얼라인은 지난해 에스엠(041510)이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의 개인회사 라이크기획에 과한 프로듀싱 금액을 지급하고 있다며 △라이크기획과의 계약 종료 △얼라인 추천 감사 선임 등을 요구하는 주주공개 서한을 보냈습니다. 얼라인의 주주제안은 받아들여졌고 이는 향후 에스엠 경영권 분쟁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얼라인의 진짜 목적이야 어찌 됐든 기존주주들에겐 희소식으로 작용했습니다. 올해 초 7만6700원에 출발한 에스엠의 주가는 고점 기준 16만1200원까지 오르며 110.17%나 급등했습니다.
 
이밖에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지난해 12월 태광산업(003240)의 흥국생명 4000억원 유상증자 참여를 저지하며 행동주의 펀드의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은 남양유업(003920)에 감사선임과 배당확대 등을 요구했죠. 최종 부결되긴 했지만 △안다자산운용·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KT&G(033780), △트러스톤-BYC(001460), △밸류파트너스-KISCO홀딩스(001940), △얼라인-JB금융지주(175330) 등의 주주제안도 시장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행동주의펀드들의 활동은 지속 증가할 전망입니다. 한국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는 2018년 580개에서 2022년 3분기 기준 1094개로 2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은경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대부분 주주제안이 부결된 것은 아쉽지만, 높아진 주식시장에 대한 관심은 주주제안은 물론 행동주의 펀드 활동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며 “오너 중심의 지배구조, 낮은 주주환원율과 밸류에이션 등을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은 지속될 공산이 크다”고 밝혔습니다. 
 
'소버린 사태'부터 얼라잇까지…'먹튀' 논란 여전
 
앞서 국내증시에서 행동주의펀드는 ‘기업사냥꾼’이나 단기 주가 차익을 노린 ‘먹튀’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지난 2003년 SK(034730)가 겪은 '소버린 사태'가 대표적입니다.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으로 SK 주가가 폭락하자 소버린자산운용은 주식을 대거 매입했죠. '주주 가치 확립'을 내세우며 경영진 퇴진을 요구했지만 표 대결에서 패배하자 지분을 전량 매각해 1조원에 가까운 차익을 챙겼습니다.
 
미국 행동주의 펀드를 운용하는 칼 아니진은 2006년 KT&G 지분을 확대한 후 주가가 오르자 전량 매각했으며, 삼성물산(028260)현대차(005380)그룹은 미국 행동주의 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힘 대결을 벌였고 이후 지분을 전량 매각했습니다. 
 
당초 국내에선 행동주의펀드가 긍정적으로 인식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2016년 국내 최초 행동주의 헤지펀드였던 '데모크라시펀드'는 라임자산운용이 출시한 상품이죠. 라임자산운용은 2019년 펀드 환매 중단 사태를 일으키며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줬고 2020년 등록이 취소됐습니다.
 
최근 주주행동주의가 확산하고 행동주의펀드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있지만 우려의 시선은 여전합니다. 특히 에스엠에 주주제안을 했던 얼라인이 최근 에스엠 주식을 매도, 대차거래로 제공해 수십억원대의 이익을 챙긴 것이 알려지며 '먹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얼라인은 앞서 에스엠 공개매수 당시에도 1%의 지분율을 통해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죠.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과거 엘리엇이나 헤르메스 등 외국 헤지펀드의 국내 기업 공격은 먹튀 논란으로 부정적 사례로 남았다”면서 “최근 KCGI펀드가 한진칼 경영권 공격으로 100%의 수익을 실현한 사례 역시 토종펀드들에게 모티베이션이 됐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과거 행동주의자들이 지배구조 개선을 주장했지만, 오스템임플란트(048260) 사례만 보아도 결국 수익이 어느 정도 확보되니 엑시트하기로 결정하게된다”며 “과연 이런 펀드들이 미래가치를 바라보고 지배구조 개선을 이야기하는 건지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부연했습니다. 
 
주주제안 90%, 방어력 취약한 중소·중견기업이 대상
 
전문가들은 행동주의펀드들의 주주제안 증가와는 별개로 단기 수익만 추구와 중소·중견기업에 집중된 주주제안에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상장협이 최근 5년간 중 주주제안 안건을 상정한 회사들을 분석한 결과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취약한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주주제안이 전체 주주제안 대상기업의 약 9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상장협 관계자는 “경영권을 위협하는 주주제안에 대해 현재로선 효과적인 대처방안이 없는 상황”이라며 “자본시장에서 어느 쪽도 선과 악으로 구분할 수는 없으나 단순한 배당 확대 등에 그치지 않고 경영권을 위협하거나 공격하는 행태는 기업의 가치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만큼 경영권 경쟁 제도의 불균형이 개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은경완 연구원은 “행동주의펀드의 문제는 소액주주권의 남용 또는 정도를 지나치게 활용하는 경우”라며 “단기 수익률 확보를 위한 무리한 요구는 중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영·재무 안정성 악화, 사회적 역할 축소 등을 야기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3월31일 SM사옥에서 SM엔터테인먼트 정기주주총회가 열렸다.(사진=뉴시스)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증권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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