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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미래기금 참여 딜레마…최순실 학습효과?
전경련 탈퇴한 4대그룹 눈치보기…회원사 아니라며 선긋는 곳도
방일 외교 후 지지율 하락, 여론 반감도 부담
일본 전범기업도 동참 안해…“먼저 나설 수 없어”
2023-03-27 06:00:00 2023-03-27 06:00:00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미래기금’ 참여를 놓고 4대 그룹이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재계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K스포츠-미르재단 출연이 뇌물죄로 연루됐던 만큼 불미스런 악몽이 재연될까 조심스럽습니다. 미래기금은 한일 경제단체 합작이며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만큼 출연금 유용 가능성은 낮지만 재계 총수들이 대통령 방일 행사에 동원된 실익이 없다는 비판도 있어 공연히 정권에 줄 대는 대가성이 연상될까 꺼리는 분위기입니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그룹 중 “애초 전경련 회원사도 아니”라며 선 긋는 곳도 있습니다. 비회원사인 만큼 “기부금을 내고 말고 검토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모금 주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는 시각차가 있습니다. 전경련은 “꼭 회원사만 참여하는 게 아니고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많이 참여해주길 기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지난 17일 열린 한일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 행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경제 인사들이 참석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미래기금 조성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등 정권이 힘을 싣고 있어 재계가 무시하기 힘듭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7일 한일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 행사에 참석해 “기금을 토대로 미래세대 교류가 늘어나고 상호 이해와 협력이 확대된다면 양국 관계가 굳건해질 것이라 확신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재계에서도 “재단을 만들 건지, 기금은 어떻게 쓰이는지 아직 내용을 모른다”며 추후 검토해볼 여지를 둔 곳은 많습니다.
 
4대그룹의 경우 과거 국정농단 사태 후 전경련을 탈퇴한 인상이 커 다시 전경련에 기부금을 내는 것이 여론에 어떻게 비칠까 의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가운데 방일 외교 후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하는 등 여론 반감이 적지 않은 현상은 부담입니다.
 
대통령과 여당은 방일 합의가 미래세대를 위한 것이었다며 ‘미래’를 캐치프레이즈로 정권 치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지난 17일 도쿄 게이오대학에서 ‘한일 미래세대 강연’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애초 윤석열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관련 양보를 했지만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 등 피고 기업이 제3자 변제에도 동참하지 않아 굴욕외교란 비판을 키운 바 있습니다. 이에 미래기금은 일본 기업의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급조된 방편이란 지적도 나옵니다.
 
이처럼 정치적 색깔이 짙은 미래기금에 참여하는 것은 국정농단 사태를 경험한 기업들에게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삼성의 경우 국정농단 사건 후 외부 지급하는 후원금 운영 방법을 개편해 외부에도 적극 알린 바 있습니다. 10억원 이상 모든 후원금과 사회공헌기금 지출은 사외이사가 과반수를 차지하는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하고 내용도 외부 공시한다는 방침입니다. 이런 까다로운 절차를 밟는 것 자체가 공연한 시선을 끌게 됩니다.
 
미쓰비시, 일본제철 등 일본 전범기업이 아직 미래기금에 동참하지 않아 한국 기업이 먼저 내는 모습도 여론을 자극하는 역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도쿄 게이오대에서 열린 한일 미래세대 강연에 나선 모습. 사진=연합뉴스
 
방일 외교에서 주도적으로 참여해 정권 패싱 논란을 벗은 전경련은 윤정부서 부활 조짐을 보입니다. 전경련은 윤 대통령 후보 시절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상임선거대책위원장과 당선 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김병준 회장직무대행체제로 바뀌자마자 한일 재계 가교 역할을 수행하며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그 직전까지 대통령 행사에서 잇따라 제외되며 허창수 회장(GS건설 회장)과 권태신 상근부회장이 함께 사퇴하고 후임자를 찾지 못했던 것과 딴판입니다. 전경련이 회장대행 체제 아래 일사천리로 현안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미래기금 기부를 계기로 4대그룹까지 회원사에 복귀한다면 전경련으로선 최상입니다.
 
이 가운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청문회 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은 전경련에 기부금을 내지 않겠다”고 남긴 육성 약속은 지금의 딜레마가 됩니다. 당시 같은 자리에서 “정부 요청이 있으면 기업이 거절하기 힘들다”고 했던 허창수 회장의 말도 묘하게 교차됩니다.
 
재계 관계자는 “재단을 만들면 어떤 법인 성격인 건지, 기부하는 것에 절차적 문제는 없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이라며 “미래기금 운영 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있기 전에는 기업들이 먼저 나설 수도 없다”고 전했습니다.
 
21일 오전 광주시청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를 지원하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한일 정상회담 규탄' 기자회견을 연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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