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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코뿔소' 우려 간과 말아야 …보수적 대응 필요"
금융시장 변동성·불확실성 증대
SVB 사태, 글로벌금융 위기 시발점 가능성
미국 공격적 금리 인상 가능성 낮아져
2023-03-16 06:00:00 2023-03-16 06:00:00
[뉴스토마토 홍연 기자]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 은행 파산 소식에 전 세계 금융시장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높아진 가운데 전문가들은 당분간 위험 관리에 무게를 둔 보수적 대응을 권고했습니다. 미국 정책당국의 시장 안정화 조치가 이뤄져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곳곳에 악재가 잔존하는 만큼 SVB 파산이 글로벌 금융 위기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회색 코뿔소' 발생을 간과해선 안된다는 설명입니다.   
 
1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30.75포인트(1.31%) 상승한 2379.72에서 마감했습니다. 지난 14일 2.56% 급락 이후 일부 되돌림이 나타났습니다. SVB 파산 사태가 진정되는 분위기인 한편 미국 인플레이션 지표도 예상치에 부합하면서 투자 심리가 되살아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국내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SVB 파산 사태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김성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지급준비금 부족이나 미실현손실 인식 가능성이 큰 지역은행들이 몇 개 더 남아 있다"면서 "전체 시스템은 건전하지만 일부 취약 은행에 대한 우려는 단번에 회복되기 쉽지 않은 고리"라고 지적했습니다. 
 
강민석 교보증권 연구원도 "다른 중소형 은행인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에도 유동성에 대한 우려가 생기는 등 소형 은행들의 유동성 문제는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면서 "과거 풍부한 유동성과 저금리로 떠오른 유니콘 기업들과 버텨온 좀비 기업들의 청산과 파산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역시 금융기관 파산으로 시작됐고, 유동성의 위기라는 공통점에서 단초를 간과할 수 없는데요. 사태 발생 1~2년부터 위기 징후가 나타난 만큼 이번 사태 역시 더 큰 위험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됩니다. 베어스턴스와 리먼 브라더스 파산 전에도 최초 위기 징후가 2006년 8월에 있었고, 2007년 초에도 이미 서브프라임 모기 취급 금융기관들이 연쇄적으로 파산 신청을 한 바 있습니다. 
 
이승훈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경우 사태가 확산되는 조짐이 보일 때가 위험관리를 강화해야 하는 국면이라는 시사점이 있다"면서 "신용위험을 측정하는 지표가 안정화되지 않는다면 더 큰 정책 대응이 요구될 소지가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점의 보안요원들이 예금주들을 입장시키고 있다. (사진/뉴시스·AP)
 
다만 파산 원인은 좀 다른데요.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의 경우 은행들이 파생상품 등 위험 자산에 무리하게 투자했던 게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미국 부동산 가격이 하락이 서브프라임 등급의 주택저당증권(MBS) 부실화로 이어져 MBS의 채무불이행이 늘어났습니다. 이에 따라 부동산 가격의 거품이 꺼졌고, 담보대출이 부실해지면서 MBS 노출이 컸던 대형 금융회사들이 연쇄적으로 파산한 것이지요. 
 
반면 SVB 사태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정책으로 금리가 올라 스타트업과 밴처캐피탈(VC)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 진 게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많은 기업은 SVB에 예치해둔 현금을 인출하기 시작했고, 현금 유동성이 필요해진 SVB는 미실현 손실 중인 국채를 매각하면서 재무구조가 악화됐죠.
 
SVB는 주로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에 투자하고 있었는데, 미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끌어올리면서 국채 가격이 크게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장기 국채는 만기 때까지 보유하면 원금을 보존할 수 있는데, 은행이 불안하다는 소식에 불안감을 느낀 고객들의 뱅크런으로 결국 파산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SVB가 자금 위기가 불거진 뒤 이틀도 안 돼 초고속으로 파산한 데는 스마트폰이 꼽히는데요. SVB가 약 18억달러의 손실을 봤으며 자금 조달을 위해 신주 발행에 나서겠다고 밝히자마자 해당 소식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지고 고객들은 순식간에 스마트폰으로 예금을 대거 인출한 것이지요. 
 
현재로선 입소문을 통해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뱅크런 사태에 대응 준비가 돼 있지 않은 만큼 고금리와 뱅크런 공포가 지속되면 제2, 제3의 SVB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높은 상황입니다. 실제로 퍼스트리퍼블릭은행에도 예금 인출이 몰리는 등 중소형 은행들의 도미노 파산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SVB 파산 이후 미국의 금리 전망도 변곡점을 맞았는데요. 이달 연준이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이나 빅스텝(0.5%p 인상)을 밟을 것으로 예상하던 시장에서 금리 동결이나 인하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다만 금리 인상이 조기 중단될 경우 인플레이션 장기화를 초래할 수 있어 진퇴양난인 상황입니다. 전일 발표된 CPI가 시장 예상치에 부합해 공격적인 금리 인상 가능성은 다소 낮아졌습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SVB 사태로 '회색 코뿔소' 성격의 신용위기는 예상치 못한 취약한 곳에 잠재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줬다"면서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의 공격적인 금리인상 사이클의 후유증이 앞으로도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어 추가 금리인상 수준과 속도에 대해 금융시장은 이전보다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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