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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왜 이은해의 '가스라이팅'을 인정하지 않았나
재판부 "거부·저항 못할 정도의 심리적 지배 없어"
"사건 당시 '웨이크보드' 권유에 거부·다른 선택도"
2022-10-27 19:23:49 2022-10-28 00:15:26
[뉴스토마토 조승진 기자] '계곡 살인' 사건으로 기소된 이은해와 조현수가 중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살인죄를 인정하고, 이은해에 대해 구형과 같이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가스라이팅 혐의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인천지법 형사15부(재판장 이규훈)는 27일 살인과 살인미수 등 혐의로 기소된 이은해에게 무기징역 선고하고, 조씨에게는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재범 우려에 따라 형 집행 종료 후 각각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부착도 명령했다.
 
검찰, '작위에 의한 살인' 적용
 
이는 지난달 30일 결심공판에서 검찰이 이은해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한 것과 같은 판단이다. 검찰은 이씨와 조씨가 살인을 계획해 피해자 A씨를 물에 빠뜨렸다고 보고 직접 살인을 의미하는 ‘작위에 의한 살인죄’로 기소하며 각각 무기징역을 구형해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이 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성립한다고 본 것은 이씨가 피해자에게 ‘가스라이팅’을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씨가 피해자에게 자신의 요구를 쉽게 거부하거나 저항하지 못하도록 심리적으로 제압하는 속칭 ‘가스라이팅’을 했고, 이에 구명조끼 등 구호장비 없이 맨몸으로 뛰어내리게 해 사망하게 했다는 것이다.
 
'계곡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은해가 지난 4월19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쟁점에 대한 법정공방은 치열했다. 지난 8월26일 11차 공판에서 검찰측 증인으로 나선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법정진술과 의견서를 통해 "피해자는 이은해로 인해 극심한 생활고와 심리적인 지배 상태(가스라이팅)에 놓이게 되었다"면서 "이은해의 경제적, 정신적 학대가 막바지로 치닫는 최후 2년 동안 피해자는 전혀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상태로 치달았던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말했다. 
 
범죄심리학자 "피해자, 오랜 가스라이팅에 맹종"
 
또 "사건 당시 다이빙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뛰어내리라는 이은해의 말이 피해자의 의사결정에 주도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면서 "오랜 기간 가스라이팅으로 인한 심리적 지배 상태에서 놓여있던 피해자는 심리적 우위에 있던 이은해의 권유에 맹종했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가스라이팅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부작위에 의한 살인(간접살인)’으로 봤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이은해에게 줄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장기 매매까지 시도하는 등 통상적인 관점에서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나 행동 양상을 보이기는 했다”면서도 “피해자와 피고인들이 주고받은 각 카카오톡 메시지 등에서 볼 때 피해자가 자신의 생명·신체에 위협을 가할 만한 이은해의 요구를 거부하거나 저항하지 못하는 정도로 심리적 지배 및 통제 상태에 이르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계곡살인’으로 구속기소된 이은해(31·여)와 조현수(30)의 선고공판이 열린 27일 오후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법에서 피해자 유가족이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재판부 "비정상적 죄책감·좌절감에서 비롯된 행동"
 
이어 “피해자와 이은해의 관계는 금전을 매개로 시작되어 유지되었고, 이를 피해자 또한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라며 “금전적인 문제로 갈등 상황에 놓이는 경우에 피해자가 비정상적인 죄책감이나 극단적인 좌절감에서 비롯된 행동들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해자는 피고인들이 사건 당시 피해자에게 웨이크보드를 타게 할 때도 거절 의사를 표현하는 등 이은해의 말에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거부하거나 다른 선택을 하기도 했다”며 “(사건 당시에도) ‘다이빙을 안 하겠다’고 하는 등 이은해의 제안에 거부 의사를 보였다”고 했다.
 
또 “피해자에게 있어 전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은 아니었고, 피고인들이 가스라이팅을 해 피해자를 물에 뛰어내리게 했다는 점도 드러나지 않는다”라며 “피해자는 ‘남자들은 다이빙을 다 하는’ 분위기에 휩쓸려 바위 위로 올라가 원하지 않았던 다이빙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처음부터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목적으로 범행을 의도하고 구호조치를 의도적으로 이행하지 않았다”라며 “피해자의 사망 원인을 사고사로 위장한 것이므로, 작위행위에 의해 사망의 결과가 발생한 것과 규범적으로 동일한 가치가 있다”고 판시했다.
   
조승진 기자 chogiz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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