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앞두고…처벌보다 자율 vs 노동자 참여 보장해야
산재 사망사고 OECD 평균 수준 목표한 '로드맵'
권기섭 차관 "규제 한계·노사 자발적 노력 촉진"
중대재해 65% 하청노동자, 참여구조 원천 봉쇄
로드맵 발표 앞두고 '경영계에 유리한 토론' 불만도
2022-10-20 17:21:34 2022-10-20 17:25:03
[뉴스토마토 용윤신 기자] '중대재해감축 로드맵' 막바지 작업을 앞둔 정부가 노사의 자발적 노력을 강조하고 나섰다. 산업 현장의 중대재해를 근본적으로 줄이려면 경영자 처벌 위주의 현 방식이 아닌 노사 간의 자율적 참여를 바탕으로 해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노동자의 실질적인 참여를 보장하는 방식이 우선돼야 한다며 반발했다.
 
고용노동부는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가든호텔에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수립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정부는 5년 이내에 우리나라 산재 사망사고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줄이기 위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막바지 조율 중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국내 산재 사망자는 2017년 964명에서 작년 828명으로 14.1% 줄었다. 노동자 1만명당 산재 사망자 수를 일컫는 사망사고 만인율은 지난해 역대 최저치인 0.43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이는 OECD 평균인 0.29보다 여전히 높다.
 
한국과 산업 구조가 유사한 일본과 독일의 사망사고 만인율은 각각 0.13, 0.15다. 이번 토론회는 이 같은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방법에서 대국민 의견 수렴을 위한 과정 중 하나다.
 
권기섭 고용부 차관은 토론회 시작에 앞서 "주요 선진국은 이미 정부 규제의 한계를 느끼고 노사의 자발적 노력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며 "우리도 중대재해를 획기적으로 감축하기 위한 사고체계의 전환을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권기섭 차관이 노사의 자율적 노력 측면을 강조한 것은 현행 경영자의 처벌을 중심으로하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이나, 금명간 발표 예정인 로드맵에서도 의무와 처벌보다는 자율성을 강조할 가능성이 높다고 풀이될 수 있다.
 
이날 고용부가 섭외한 발제자들 역시 '자율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첫번째 발제자인 이병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학과 교수는 '펠츠만 효과'를 언급하며 "경영자를 처벌하는 규제방식보다 인센티브를 제공해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방향을 지향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펠츠만 효과'는 안전을 도모할수록 위험을 감수할 때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적어지면서 오히려 위험도가 커질 수 있음을 뜻한다.
 
이병태 교수는 "안전에 대한 규제가 반드시 안전을 보장하는 건 아니며 경영자 처벌 위주의 규제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노사 간 책임과 의무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대재해 감소 목표는 OECD 평균 이하로 맞출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OECD 평균보다 김치나 쌀밥, 삼겹살을 많이 먹는다고 해서 문제라 할 수는 없다"면서 "국가 간 산업구조의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광수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중대재해를 근본적으로 감소시키려면 사업장 구성원들이 스스로와 동료의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안전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사고' 같은 지표에 매달리면 사고 예방보다는 발생에 초점을 맞춘다는 논리에서다. 안전을 우선순위에 두기보다는 핵심 가치로 인식하고 이를 도모하기 위해 노사가 원팀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 교수는 "노사 모두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이 핵심 가치임을 수용해야 한다"면서 기업에는 여유 있는 작업 시간과 인력을 확보할 것을, 노동조합에는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고 안전에 대한 현장훈련(OJT)을 강화할 것 등을 주문했다.
 
고용노동부는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가든호텔에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수립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은 SPL 산재 사망사고 엄중수사를 촉구하는 노동계. (사진=뉴시스)
 
이에 반해 노동계는 실질적인 노동계의 참여 보장을 촉구했다.
 
최명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영국, 독일, 미국, 일본 등 주요사례로 제시하고 있는 외국의 자율안전은 노동자 참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기반 속에서 추진될 때 '산업재해 감축' 이라는 목적을 달성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실패한 자율안전 정책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노동자 참여’를 실질화하는 혁신적인 정책과 제도개선으로 예방정책에 대한 노동자의 신뢰와 수용성을 제고하는 것이 시급하고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2015년 고용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 사업장은 6646곳에 그친다. 2015년 기준 사업장 숫자가 236만7186개 사업장이므로, 전체 사업장 대비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 사업장은 0.25%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명예산업안전감독 제도도 사문화된 상황이다. 이 마저도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활동을 보장하도록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근로시간 면제제도'와 연계해 활동시간이 전혀 보장되지 않고 있다.
 
중대재해의 65%가 하청노동자에게서 발생하지만 이들의 참여구조는 사실상 원천 봉쇄격이다. 사고조사와 작업중지 명령 해제에 노동자, 노동조합 참여가 배제된 상황이다.
 
이날 토론회의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도 제기됐다.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정보건본부장은 "중대재해 로드맵 막바지 작업을 앞두고 경영계에 굉장히 유리한 토론을 하고 있다"며 "노동부에도 굉장히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고용노동부는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가든호텔에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수립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은 토론회장 모습. (사진=뉴시스)
 
세종=용윤신 기자 yonyon@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