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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9·19 평양선언 4주년…MB시대 회귀에 문재인 일침
'담대한 구상', 사실상 좌초…북, 핵사용 법제화 조치로 맞대응
문 전 대통령 "대화 없으면 평화도 없다"…과거 남북정상 합의 이행 촉구
윤 대통령, 북핵에 강경대응 방침 재확인 "미 영토 내 핵무기 사용"
2022-09-19 17:01:19 2022-09-19 23:08:10
지난 2018년 9월19일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후 합의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4년 전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나 한반도를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자며 9·19 평양공동선언에 합의했지만, 현실은 과거 이명박정부(MB) 시대로의 회귀라는 평가다. 윤석열정부는 경제 지원을 고리로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이명박정부의 '비핵·개방 3000'과 유사한 '담대한 구상'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이를 단칼에 거부, 오히려 핵 사용 문턱을 낮추는 핵 법제화로 맞섰다. 남북 간 '강대강 대치' 국면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문 전 대통령은 "대화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며 과거 남북 정상 간 합의를 양측이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지난 2018년 9월19일 당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 비핵화 추진에 나섰다. 남북 정상은 9·19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군사합의도 체결했다. 공동선언에는 '비무장지대를 비롯한 대치지역에서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 '교류협력 증대', '이산가족 문제 해결 위한 인도적 협력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평양공동선언의 부속문서로 '군사분야 합의서'도 함께 채택됐다. 군사적 긴장 완화와 전쟁 위험·우발적 충돌 방지의 제도화를 위한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됐다.
 
북미 싱가포르 회담이 결렬되며 다시 긴장관계로 돌아갔지만, 물밑 대화마저 사라지지는 않았다. 문 전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카드로 '종전협정'을 내세우며 돌이킬 수 없는 평화체제 구축에 힘썼다. 반면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는 아예 대화가 단절됐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추석연휴 직전인 지난 8일 북측에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남북 당국회담을 공식 제안했지만, 10일이 넘도록 북한의 반응은 없었다. 남북 대화가 사실상 완전히 끊긴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같은 날 최고인민회의에서 핵 법제화를 발표하는 등 노골적으로 핵무력 사용을 과시했다.
 
정부는 강경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핵심은 과거 한미일 3각동맹 체제로의 복원이다. 북중러 대 한미일, 신냉전이 그렇게 찾아왔다. 특히 강력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확장억제 강화에 방점을 찍었다. 한미 외교·국방 당국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4년8개월 만에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회의를 열고 미국 전략자산 등 모든 군사적 자산을 총동원한 확장억제 강화에 뜻을 모았다. 여기에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미연합훈련(UFS·8월22일~9월1일)도 대규모로 정상화했다. 연중 나눠서 했던 야외기동훈련을 이번 한미연합훈련에서는 몰아서 실시했다. 경북 성주의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도 정상화 조치에 나섰다. 이로써 군은 사드 레이더 가동에 필요한 유류 등 핵심물자를 육로를 통해 반입할 수 있게 됐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회의 모습. 왼쪽부터 콜린 칼 미국 국방부 정책차관, 보니 젠킨스 국무부 군비통제·국제안보 담당 차관, 조현동 외교부 1차관, 신범철 국방부 차관. (사진=뉴시스)
 
정부가 강경대응에 나서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앞서 제안했던 '담대한 구상'의 진정성도 퇴색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비핵화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을 제시했지만 별다른 진전을 이뤄내지 못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달 19일 담화문을 통해 "남조선 당국의 '대북정책'을 평하기에 앞서 우리는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며 윤 대통령 개인에 대한 원색적 비난과 함께 '담대한 구상'도 정면 거부했다. 정부는 이후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와 북핵수석대표 회담을 잇달아 열며 담대한 구상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구체적인 진전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이는 정부가 북한에 대한 별다른 유인책 없이 북한의 일방적인 수용만을 요구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북한이 거부할 줄 알면서도 관계 개선에 노력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회피하기 위한 노림수라는 지적이다. 권영세 장관의 이산가족 상봉 제안도 이런 측면에서 '보여주기식'이라는 혹평이 뒤따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오는 20일(현지시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북한 비핵화를 위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연대에 방점을 찍을 것으로 전해졌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안했던 '담대한 구상'과 관련한 추가 언급은 없을 전망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조연설과 관련해 "이번 총회에서 담대한 구상을 다시 요약해 연설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대신 "이번 연설에서는 핵 위협, 대량살상무기 위협 속에서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동맹인 미국과 자유를 중시하는 국제사회와의 연대를 통해 한반도를 지키고 핵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해 나간다는 함축적 메시지가 담기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북한은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을 이명박정부의 "'비핵·개방 3000'의 복사판"으로 규정하고 있다. '비핵·개방 3000'은 북한의 '선 비핵화'를 전제로 비핵화·개방시 1인당 소득 3000달러 사회가 되도록 해주겠다고 한 이명박정부의 대표적인 대북 정책이다. 윤석열정부의 '담대한 구상'도 '선 비핵화'를 전제로 경제 지원을 하겠다는 기조여서, 큰 틀에서는 '비핵·개방 3000'과 유사하다. 윤 대통령의 대북 참모진이 과거 MB정부 인사들인 까닭에 남북관계가 이명박정부 시대로 회귀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스탠스테드 국제공항에 도착해 환영 인사들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더욱 악화되는 조짐을 보이자, 문 전 대통령은 9·19 평양공동선언 4주년을 맞아 "대화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며 "우리 스스로 한반도 평화를 일구는 주도자가 되어 흔들림 없이 추진해나가야만 한 걸음이라도 전진할 수 있다"고 밝혔다. 퇴임 이후 첫 정치적 메시지였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19일 국회에서 열린 9·19 군사합의 4주년 기념 토론회에 앞서 전날 문 전 대통령의 서면 축사 발언을 공개했다. 문 전 대통령은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선언, 10·4선언, 판문점선언, 평양공동선언 등을 언급하며 "정부가 바뀌어도 마땅히 존중하고 이행해야 할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불신의 벽이 높고 외교안보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게 지금의 현실이지만 우리가 상황을 비관하지 않고 주도적 입장에서 극복하고 헤쳐나갈 때 비로소 평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당부했다.
 
반면 윤 대통령은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반문재인 기조를 재확인하며 북한의 핵 사용시 강경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공개된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정부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너무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였다고 비판하며 "나는 예측 가능성을 추구할 것이며, 한국은 미중 관계에서 보다 분명한 입장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 과정에서 문 전 대통령을 "교실에서 한 친구(북한)에게만 집착하는 학생"에 빗대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 인터뷰에서 고조되는 북핵 위협과 관련해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의 핵우산을 포함한 모든 수단과 방법이 담긴 패키지를 미국과 함께 마련할 준비가 돼 있다"며 "확장된 억제력에는 (유사시)미국 영토 내에 있는 핵무기 사용뿐 아니라 북한의 핵 도발을 막을 수 있는 모든 수단의 패키지가 포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정세현 전 장관은 윤석열정부 출범 후 남북관계에 대해 "(현 정부의)정책이 없기 때문에 문재인정부 때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며 "수준이 다른데 비교가 되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윤 대통령 인터뷰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은)북한이 만약 남한을 상대로 핵을 쏘면 미국 본토에 있는 핵을 쏘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말이 되느냐"며 "정책이라면 어떻게 하든지 북한이 핵을 쏘지 않도록 사전에 회유하던지, 포섭하던지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미국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이 요구하면 그대로 핵 단추를 눌러주느냐"며 "윤 대통령이 미국의 주지사 같은 이야기를 했다"고 비판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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