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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엇갈린 '해군 성폭력 사건'…"대법, 시대 역행…피해자 절망"
첫번째 가해자 무죄·두번째 가해자 파기환송
"대법원 판쪽짜리 판결 내놔…스스로 모순"
피해자 "잠시 희망가졌지만…또 한번 죽어"
2022-03-31 15:07:37 2022-03-31 15:08:09
[뉴스토마토 조승진 기자] 해군 성 소수자 성폭력 사건에 대한 대법원판결을 두고 사건을 맡은 공대위 측이 “시대에 역행하는 판결”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이번 사건이 3년4개월간 대법원에 계류되며 피해자의 인권을 짓밟아 왔는데 이에 더해 연관된 두 사건에 각기 다른 판결을 내려 피해자를 또다시 절망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31일 성폭력 두번째 가해자에게는 파기환송결정을, 첫번째 가해자에게는 상고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에 두번째 가해자는 다시 재판을 받게 됐지만, 첫번째 가해자는 무죄를 확정 지었다.
 
‘해군 상관에 의한 성 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31일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판결이 ‘반쪽짜리 판결’이라며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공대위에서 대리인단을 맡은 박인숙 변호사는 “피해자는 첫번째 가해자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상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두 번째 성폭력이 발생했다”며 “그런데도 대법원은 첫번째 가해자에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첫번째 가해자가 피해자와 ‘연인관계’라고 주장해왔다며 “다른 성폭력 가해자들이 내세우는 수법을 대법원이 그대로 인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대법원이 피해자의 상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며 “피해자는 레즈비언이기 때문에 연인관계가 가능한가에 대한 성 심리 등 과학적인 검증 절차가 필요한데 대법원에서 관련 절차가 있었는지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공대위는 이번 사건이 각각의 재판부가 아닌 한 재판부에서 이뤄졌어야 하는데 이 역시 대법원이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박 변호사는 “어떻게 같은 피해자에게 일어난 연관된 두 사건에서 한 재판부는 진술 신빙성을 인정하고, 다른 재판부는 인정하지 않을 수 있냐”며 “전원합의체로 넘겼어야 하는데 대법원 스스로 판결의 모순을 나타냈다”고 일침을 가했다.
 
최희봉 젊은 여군 포럼 공동대표는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피해자뿐 아니라 군대 내 성폭력 피해자들에게는 절망”이라며 “군에는 지금도 신고를 고민하는 많은 피해자가 있고 신고 이후에도 편견으로 고통받는 피해자들도 있다”고 했다. 최 대표는 “판결로 대법원이 군의 정의 구현 시스템을 무력화시켰다”고 말했다.
 
이날 피해자는 입장문을 통해 대법원판결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피해자의 입장문을 대독한 도지현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는 “(피해자가) 파기 환송 소식에 잠시 희망을 가졌지만 결국 다시 절망 속에 빠졌다”며 “(첫번째 피의자에 의해) 임신 중지 수술까지 했는데, 대법원은 이를 무죄로 판결했고 이게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했다. 그는 “고통으로 가득 찼던 수많은 날의 기억을 대법원이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은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나는 오늘 또 한번 죽은 것”이라고 했다.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대법원 선고 기자회견을 열고 가해자에게 중형을 촉구하고 있다. 대법원은 군인등강간치상 혐의로 기소된 김모 대령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날 같은 혐의로 기소된 박모 소령에 관해선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된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사진=연합뉴스)
 
 
조승진 기자 chogiz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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