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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초대석)임헌영 "친일문제, 정쟁 도구로 전락해선 안돼"
"현대 색깔론, 청산 돼야 할 대표적인 친일 잔재"
"후대에 올바른 역사관 심는 게 친일 잔재 청산"
"민족문제연구소 30년…새 30년은 시민 속으로"
2021-11-23 06:00:00 2021-11-23 06:00:00
[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30년 동안 꾸준히 한국 근현대사의 쟁점을 연구하고 친일 잔재 청산에 앞장서 온 곳이 있다. 친일파에 의해 와해된 반민특위의 정신과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설립된 ‘민족문제연구소’다.
 
민족문제연구소는 4389명의 친일파들의 행적을 꾸준히 쫓아 이를 국민들에게 공개했고, 역사 왜곡을 막도록 국정교과서 저지에도 앞장섰다. 일제 파시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꾸준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올바른 후대에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는 것이 친일 잔재 청산의 기본이라고 말한다.
 
<뉴스토마토>는 2003년부터 민족문제연구소의 3대 소장을 지내며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주도한 임헌영 소장을 22일 만나, 친일 잔재 청산의 현주소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문학평론가에서 어떻게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으로서 활동하게 됐나
 
=문학과 역사는 별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역사를 바로 잡는 것에 기반을 두고 활동했기 때문에 문학평론가와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으로 살아온 인생은 별반 다르지 않다.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기 이전에도 역사문제연구소 설립에 참여해 부소장직을 역임했다. 1985년 당시 근현대사를 다룰 연구소가 절실하다는 판단에서 연구소를 세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전공을 가리지 않고 한국 근현대사와 관련이 있는 학자들을 찾아다니며 참여 해달라고 호소했다. 연구소가 개소하고 두 달만에 해방 3년사와 일제강점기사, 문학사 연구팀을 꾸리게 됐다.
 
유신 독재 당시에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해 두 차례 수감 생활을 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온전히 문학평론가의 길만을 걸을 수 없었던 시대적 상황에 있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반민특위와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 임종국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아 설립됐다. 대표적인 사업은 무엇인가
 
=4389명의 친일파들의 행적을 담은 ‘친일인명사전’ 발간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친일인명사전은 국민성금으로 이뤄낸 사업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 현재 스마트폰 앱으로도 출시돼 있으며 지금도 새로운 친일파들의 행적을 꾸준히 찾아내고 있다. 이 밖에 ‘일제식민통치기구사전’ 발간도 주목할 연구업적이다.
 
징용, 징병, 야스쿠니 문제 등 일제 강제동원피해자 지원, 항일음악 330곡집 발간,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 등 독립운동 선양 사업도 중요한 축이다. 다큐 ‘백년전쟁’ 제작, 국정교과서 저지, 친일기념사업 반대 등 역사 왜곡에 맞서고 있다.
 
-친일잔재 청산을 어렵게 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친일청산이 어려운 이유는 반민특위를 와해시켰던 정치세력이 지금도 여전히 강력한 기득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색깔론’, ‘빨갱이’ 등의 단어는 기득권 세력에서 쓰고 있는 대표적인 친일 잔재다. 이에 대해서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 대통령의 기념사가 아주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 기념사에 따르면, 과거 빨갱이라는 단어는 공산주의자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민족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까지 모든 독립운동가를 낙인 찍는 말이었다. 빨갱이로 낙인 찍히면 가족과 유족들은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다.
 
일제가 우리 민족성을 해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해방 후에도 친일 청산을 방해하는 요소가 됐다. 양민학살, 간첩조작, 민주화운동이 모두 국민을 반역자로 여긴데서 비롯된 불행이다. 해방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일제 경찰 출신은 독립 운동가를 빨갱이로 몰아 고문했다.
 
현대에 와서는 색깔론이 대두되면서 정치적 경쟁 세력을 공격할 때 대표적으로 쓰는 단어가 됐다. 우리가 하루 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친일잔재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최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가쓰라-태프트 협약' 발언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한일관계 발언을 놓고 여야가 공방을 벌였다.
 
=친일 문제가 정치인들의 정쟁의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대통령 후보라면 친일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자신의 역사관을 밝히는 것이 도리라고 본다. 참고로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미국의 필리핀 지배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상호 합의했고 그 결과 일본의 조선 지배가 가속화됐다는 것은 교과서에도 나오는 상식적 이야기다. 이러한 상식적인 이야기를 문제 삼는 세력의 역사관이 의심스럽다.
 
-친일잔재를 청산하려면 후손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이 계속 계승돼야 하지 않겠나. 단순히 역사 교육을 넘어 어떤 방법이 시도되면 좋을까.
 
=1945년 해방 당일부터 이뤄졌어야 할 친일청산이 한번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당사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생존 독립운동가도 10여 명의 불과하다. 곧 독립운동가 부재 시대가 온다.
 
뿐만 아니라 강제 징용, 징병,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분들도 초고령이기에 일제 강점기를 경험한 세대의 부재도 우리가 곧 직면할 현실이다. 일제 강점기를 살아온 당사자분들이 계신 상황에서도 역사 부정론이 큰소리를 내고 있는데 당사자 분들이 부재한 상황이 오면 오죽할 것인가.
 
따라서 이제까지보다 더욱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역사 교육이 필요하다. 연대기를 암기하는 방식이 아닌 현장 답사, 문화 콘텐츠를 활용한 역사 교육은 물론 특히 학교 교육 외에도 각종 연수제도에 독립운동과 일제 강점기 역사 교육을 대폭 강화시켜야 한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지난 30년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 30년의 비전은.
 
=지난 30년 동안 최선을 다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그래도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실천하는 대한민국의 유일한 단체로서 외롭지만 묵묵히 한 자리를 지켜왔다고 자부한다. 나아가 친일청산의 완성은 분단구조 극복이라고 보기 때문에 남북의 평화공존와 일치와 화합을 위한 사업에도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다.
 
-새로운 30년을 시작하는 첫해인 내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역점사업은.
 
내년 초에는 오랫동안 한일 학자들이 공동으로 작업하고 있는 ‘재일조선인 단체사전’ 발간이 기대된다. 또한 코로나19로 2년간 정상적인 운영을 하지 못한 식민지역사박물관, 근현대사기념관 운영을 통해 더 많은 시민들과 학생들을 만날 예정이다. 더불어 다양한 역사 관련 전시회, 답사, 문화행사 등도 펼쳐 나갈 것이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사진/민족문제연구소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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