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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빚 '정부 리스크' 대비해야
2021-11-05 06:00:00 2021-11-05 06:00:00
김의중 금융부장
“상환능력 중심의 대출 관행을 정착시키고 분할상환을 확대해나가겠습니다. 금융회사의 자율적인 가계부채 위험관리 강화를 유도하면서도 실수요자와 취약계층은 보호하겠습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26일 가계부채 추가 규제안을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실수요자 대책이라고 할 만한 내용은 없었다. 가계부채 위험관리 강화 유도는 사실상 강제다. 
 
정부는 지금까지 가계대출을 지속적으로 규제해왔다. 부동산 가격 폭등의 원인이 ‘쉬운’ 대출에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잘못된 진단이라는 평가가 나오자 이제는 가계부채 증가세를 이유로 규제에 나선 모습이다. 
 
갚을 수 있는 능력만큼 대출을 받아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은 맞는 말이다. 다만 지금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는 가혹하다. DSR은 차주가 연간 갚아야 하는 원리금(원금+이자)을 연 소득으로 나눈 수치다. 내년 1월부터 총대출액 2억원을 초과할 경우 DSR 40% 규제를 적용하고 7월부터는 총대출액 1억원 초과 차주까지 확대 적용한다. 이것이 과연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적정 상환 능력의 기준인지는 의문이다. 
 
이미 시장의 자율규제로 대출심사가 까다로워져 상환능력을 벗어난 대출은 받을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특히나 연봉 1억원 이상의 고소득자의 경우 당국의 권고에 따라 이미 은행에서 개인별 DSR 40% 규제를 받고 있다. 이번 DSR 추가 규제는 대출총량 제어를 위해 서민 목만 조른 격이다. 
 
그러는 사이 은행들만 배를 채웠다는 지적도 많다. 은행들은 정부 규제를 이유로 대출 금리를 높였고, 차주들의 부담은 커졌다. 반면 예금금리는 올리지 않아 역대급 예대마진을 기록 중이다. 하지만 이런 부작용에 대한 정부의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관련 질문을 받은 고 위원장은 “가격과 관련된 것은 제가 직접적으로 말씀드리기 적절하지 않다”며 외면했다. 
 
더 아이러니한건 ‘부실폭탄’으로 불리는 코로나19 대출 만기 연장은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로 피해 본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 만기 연장 및 상환 유예를 해주는 건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자동 만기 연장이다. 여기에는 영업을 더 이상 영위하기 힘든 상인이나 좀비기업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평가다. 정부 조치로 금융사들이 이들을 들여다볼 수 없게 돼 부실을 키우는 셈이다. 
 
최근에는 대출금리가 상승하며 연체율 등 건전성 지표마저 악화한 상황이다. 상환 유예된 대출은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상태여서 우려가 더욱 크다. 내년 3월 대선을 의식한 매표행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부실이 걱정돼 대출규제를 하면서 진짜 부실한 대출의 만기를 연장해주는 건 상식적이지 않아서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한 목소리로 “대출 만기 연장이 끝나면 부실이 한꺼번에 터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일각에선 대출 상환 유예 정책을 두고 사실상의 정부발 분식회계라고까지 얘기한다. 그 결과는 차기 정부에서 실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금융사들이 정치 일정과 무관하게 부실폭탄에 더욱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충당금도 더 많이 쌓고 선제적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어차피 지금의 정부는 믿을 수 없다. 금융사가 ‘정부리스크’를 극복해야 금융권도 살고 국민도 산다.
 
김의중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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