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금융당국이 금융권 직원들의 비리를 수년간 묵혀놨다가 뒤늦게 발표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벌어지면서 국민 알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금융 업무는 투명성과 신뢰가 핵심인데 당국의 늑장 대응이 도덕적해이를 키운다는 지적이다.
23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정례회의를 열고 농협은행 직원들의 조직적인 전산조작을 적발한 회의록을 공개했다. 금융위 정례회의는 지난 3월 열렸고 이들이 비리를 저지른 시점은 2016년 8월~2018년 3월이다. 최대 6년에서 최소 3년 전 비리 사건을 이제야 징계하고 언론에 알린 셈이다. 이마저도 과태료처분에 그치면서 솜방망이 처벌 논란까지 빚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011년 수협은행 직원들이 개인적인 목적으로 784회에 걸쳐 수시로 다른 사람의 개인신용정보를 조회한 사실을 3년이 지난 2014년이 돼서야 언론에 발표했다. 지난 2009년 교회 건축 자금으로 150억원을 추가 대출하는 과정에서 돈을 갚을 여력이 되는지 심사를 소홀해 46억원의 손실을 낸 문제도 5년이 지나 알려졌다.
이처럼 당국은 극히 일부 시급한 현안사건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수년간 묵혔다가 비리 사실을 공개하고 있다. 일각에선 당국이 비리에 연루된 직원의 징계를 수년간 미루는 이유로 법원의 최종 판결 등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 법정 송사로까지 비화하지 않는 비리 사건도 묵혔다가 공개하는 게 태반이다. 일각에선 전체 금융권의 총체적 문제가 누적돼 금융 비리가 눈덩어리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당국은 비리 인지부터 징계 의결까지 절차상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농협은행 비리 사건에 대해 "금융권 직원들의 과거 비위 사실이 적발돼 금융위에서 과태료 처분을 하고 의사록이 공개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금융감독원 등 당국이 정기검사를 통해 과거 비리라도 이상한 부분을 들여다보고, 불법의 여지가 있는 부분을 금융위 안건에 올린 것"이라며 "해당 사건이 3월에 의결되고 회의록 공개는 절차상 두 달 있다가 공개한 것일 뿐 의도는 없다"고 설명했다.
중대한 비위 문제이더라도 뒤늦게 언론에 알려지면서 뒷북 징계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 당국이 금융권의 제 식구 감싸기를 사실상 용인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실제 농협은행 직원들의 카드값 전산조작 비리와 관련, 금융위 전체회의 회의록에는 '언론보도가 안 됐고, 실제 피해도 없어 경미'라고 적시했다. 농협은행의 직원 비리를 '중대 위반'으로 인정하면서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 처벌 수위를 낮춘 셈이다.
전문가들은 금융 비리는 서민 경제에 타격을 주는 중대 사안인 만큼 국민 알권리를 보호하고 사건을 제때 공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특임교수는 "금융권 비리를 과거에는 제대로 적발하지 않고 이제 와서 공표를 하는지 의문이 든다"면서 "더욱 철저하게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불법행위가 벌어지더라도 언론에 알려지지 않아 솜방망이 처벌로 슬그머니 넘어가는 사례는 금융업계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고 당국의 책임 있는 자세를 주문했다.
금융위. 사진/뉴시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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