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의 한국철학사 26화) 이제현, '고려의 몽골 편입 저지한 논리적인 항변'
고려의 원나라 편입 시도를 저지시킴으로써 지식인의 본분 보여준 문인
2023-09-18 06:00:00 2023-09-18 06:00:00
이번 글에서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고려시대의 세 지식인 가운데, 두 번째 분으로서 이제현이라는 분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고려 시대 후반기는 논리와 이성으로는 어쩔 수 없는 무력이 지배했던 시대입니다. 무신정권시대, 원나라의 무력간섭기, 그리고 역성혁명파들의 무력에 의한 정권 타도와 새 왕조의 창립. 이 시기를 살았던 지식인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무력 앞에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라는 문제를 우리들한테 보여준 세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 말씀 드렸던 이규보는 직접 생산자들이 중요함을 그들이 세상의 근본임을 일깨움으로써, 세상을 바로잡으려고 했다 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인 이제현 선생은 호가 역옹과 익재였습니다. 이제현은 열일곱 살에 성균시(成均試)에서 급제하고 문과에서 장원을 합니다. 열일곱 살 청소년기에 벼슬길에 이미 올라서, 이제현 선생은 칠십년 동안에 왕이 일곱 번[충렬(忠烈), 충선(忠宣), 충숙(忠肅), 충혜(忠惠), 충목(忠穆), 충정(忠定), 공민(恭愍) 등] 바뀝니다. 충렬왕에서 공민왕까지 고려시대의 마지막 일곱 임금을 섬긴 신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현 선생은 기록이 많은 분인데요. 신하로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는 문하시중(門下侍中) 자리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요즘말로 얘기하자면 ‘국왕 권한대행’이라고 할 수 있는, “국왕 권한대행”까지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전통시대에는 제가 본 기록상으로는 중국을 가장 넓게 여행한 분입니다. 연경(燕京)도 다녀왔고, 티베트까지 다 다녔습니다. 티베트를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라, 원나라에서 고려왕을 티베트로 유배를 보냈기 때문에 유배 길을 따라 갔던 분이기도 하죠.
 
고려의 원나라 편입을 막은 이제현의 초상화. 원의 유명한 화가인 진감여가 비단에 그린 채색화로 국보 제 110호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필자 제공
 
이제현은 열일곱 살 청소년기에 과거에 급제했는데, 과거에서 장원한 뒤에 이렇게 얘기했다고 <이제현 열전>에는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재주[小技]에 지나지 않는다.” 소기(小技)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발언을 한 겁니다. 과거에 급제했다는 얘기는, 오늘날 고시 패스했다는 얘기와 같은데, 출셋길이 보장되어 있지만, 과거에 급제했다고 해서, 고시 패스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세상을 경륜할 만한 마음그릇을 갖췄거나, 인품이 된다거나, 사람의 됨됨이가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제현은 과거에 급제한 뒤에 출셋길이 보장됐으니까 됐다고 하는 게 아니라, “이것은 소기(小技)에 지나지 않으니, 나의 덕을 더 넓혀 나가야 되겠다.”라고 원숙한 판단을 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는 몽골 침략기와 원(元) 간섭기에 살았는데요. 몽골은 이십칠 년 동안 아홉 차례에 걸쳐서 고려를 침략했습니다. 고려는 강화도로 왕실을 옮기고 피신해서 몽골에게 끝까지 굽히지 않았습니다. 제주도로 도망간 삼별초의 지도자 김통정이 죽임을 당한 (서기) 1273년에 42년에 걸친 대몽 항쟁이 막을 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삼별초가 붕괴되자 고려 조정은 강화도에서 나와서, 몽골과 강화조약을 맺습니다.
강화조약을 맺자, 몽골은 고려의 왕이 될 태자(太子)는 반드시 몽골에 들어와서 몽골식 교육을 받고, 몽골식(으로) 머리를 깎고, 몽골식 복장을 하라고 강요를 합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원나라에 항복한 원종의 아들인 충렬왕이 원나라에 들어가서 몽골식의 복장을 하고 몽골식으로 머리를 깎고 고려로 돌아와서 왕이 됩니다.
 
충렬왕 때 태어난 이제현은 충렬왕 때 과거에 급제해서 벼슬길에 나갔으며, 일곱 번 임금이 바뀔 동안에 조정을 지킵니다.
 
충렬왕의 부인인 몽골인 제국대장공주(몽골식 이름: 쿠틀룩 켈미쉬, 쿠빌라이 칸의 막내딸)는 불교를 너무 좋아해서 고려의 절에 가서 재물을 많이 낭비했는데, 불공을 드리러 가는데 수행원이 적게 따라왔다고 짜증을 내기도 하고, 자기 남편이 고려의 왕인데, 몽둥이로 때리기도 했다고 기록에 나와 있습니다.
충렬왕의 아들인 충선왕도 똑같이 충렬왕과 마찬가지로 원나라에 들어가서 몽골식의 교육을 받고 몽골식의 머리를 깎고 몽골식 복장을 하고 돌아왔는데, 그가 태자 시절 몽골에 가있을 때, 그의 생모인 몽골공주이죠.
 
몽골 공주, 몽골의 창업주인 쿠빌라이 칸의 막내딸이 충렬왕의 아내였습니다. 충선왕의 생모죠. 생모가 죽으니까, 이걸 조사해야 되겠다고 들어온 충선왕(忠宣王) 왕장(王璋)은 자기의 생모인 몽골의 제국대장공주가 후궁들의 시기와 질투 때문에 죽었다, 고 하면서 충선왕의 후궁인 무비와 그의 주변 인물들을 처형시켜 버립니다. 별다른 증거 없이 아버지(충렬왕)가 총애하던 후궁을 죽인 것이죠. 아내와 총애하던 후궁을 동시에 잃어버린 충렬왕은 이 충격 때문인지 왕위를 아들(충선왕)한테 넘겨버리고, 자신은 상왕(上王)이 됩니다.
 
(아버지는) 상왕이 되고, 충선왕은 고려 왕 자리에 올랐지만, 왕의 자리에 취미가 없었기 때문에 그가 좋아하던 원나라 연경으로 또 갑니다. 원나라 연경에서 그의 (외종) 사촌형제들 몽골 핏줄이기 때문에 몽골의 사촌형제들이 차례대로 몽골의 황제가 됩니다. 이 사람(충선왕)은 몽골 공주와 결혼했기 때문에 고려의 왕들은 몽골의 황제들과 처남매부 관계가 됩니다. 충선왕도 그런 관계에 있었는데요.
 
충선왕이 그때 카이산(海山)이라는 (외종) 사촌형제가 황제 무종(武宗)에 오르고, 그의 동생[아유르바르와다(愛育黎拔力八達)]이 인종(仁宗)에 오를 때, 지지해주는 머리수 구실을 합니다.
 
고려 충선왕과 외종사촌형제이면서 원나라 황제 무종(武宗)에 오르는 카이산(海山). 사진=필자 제공
 
(충선왕이) 나름 지지를 해주는 구실을 하기 때문에, 원나라에 가면 받는 대우가 굉장히 높습니다. 고려에 돌아오면 초라한 왕일 뿐이지만, 원나라의 연경에 들어가면 받는 대우가 다르죠. 황제의 핏줄로 대접을 받는 거죠. (충선왕은) 몽골의 쿠빌라이칸의 외손자입니다. 
 
충선왕이 어릴 때 쿠빌라이를 만나기도 했었죠. 쿠빌라이가 물어봅니다. 이 손주는 외손주죠. “외손주는 고려의 좋은 왕이 될 것이다”라고 얘기할 정도로 (쿠빌라이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쿠빌라이한테 그런데 충선왕은 좋은 왕이 되기는커녕 이제현, 젊은 이제현한테, 모든 인생의 고뇌를 안긴 왕이 되어버렸습니다.
 
충선왕이 연경에서 머물면서 돌아오지 않으니까, 고려에서 귀국운동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왕 자리가 비어있으니까, 왕이 들어와야 되지 않느냐, 충선왕은 고려에서 많은 물자를 갖다 쓰면서. 연경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면서 호의호식하면서 고려에는 쪽지를 보내서 정치하는 “전지 정치”라는 걸 했습니다. 쪽지를 보내서 고려를 통치하는 아주 최악의 왕이었죠. 고려로 귀국하는 게 자꾸 늦어지니까, 고려에서는 충선왕의 (맏)아들인 왕감(王鑑)을 왕으로 앉히려고 하는 추대운동이 벌어집니다. 이 소문을 들은 충선왕은 자기 친아들인 왕감과 그를 추종하던 무리들을 싹다 죽여버립니다.
 
충선왕은 제가 읽은 기록 중에서,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지도자 중에서 가장 패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아버지가 총애하던 후궁을 아무런 증거 없이 정황 증거만으로 몰살했고, 자기 친아들까지 죽인 사람입니다.
그런 뒤에 자신은 고려왕을 할 생각이 없고, 왕감의 동생인 왕도(王燾)를 후계자로 세우고, 자신은 상왕(上王)이 되어 연경으로 돌아갑니다. 연경으로 돌아가서 연경에 ‘제미기덕(濟美基德)’이라는 누각을 짓습니다. 이른바 “만권당(萬卷堂)”이라고 속칭 불리는데요. 책이 많아서 “만권당(萬卷堂)”이라고 불렀고, 당시 몽골에서 구할 수 있는, 연경에서 구할 수 있는 전적을 다 구합니다. 그래서 “만권당”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인데요. 여기서 몽골(원나라)의 최고 지식인들과 대화를 하면서 논 겁니다. 이런 돈이 어디서 나왔느냐, 고려에서 (보내온) 겁니다. 고려에서 재물을 자꾸 보내라고 해서 재물로 호의호식하면서 만권당을 지은 겁니다.
 
그래서 몽골(원나라)의 최고의 수준의 학자들과 토론을 하다 보니까 (충선왕이) 말이 딸리는 겁니다. 말발이 안 서죠. 그러니까 고려에서 가장 똑똑하던 신하인 이제현을 (연경으로) 불러들입니다. 이제현은 그때부터 연경에 간 거죠. 연경에 가서 만권당에서 당대 최고의 학자인 요수(姚燧), 원명선(元明善), 조맹부(趙孟?) 같은 사람들과 토론을 벌입니다.
 
<이제현 열전>을 보면 요수와 조맹부 같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고 그래요. 이제현이 나날이 발전하기 때문에 경사(經史)를 토론했는데, 이 사람들이 무엇을 토론했는지를 기록이 남아있으면, 오늘날 많이 재밌을 텐데,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아마도 당시 새로운 학문이었던 성리학(性理學) 같은 거를 토론하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제현이 만권당에서 요수, 엄명선, 조맹부 등과 충선왕을 대신해서 토론하고 있을 때, 고려에서는 원나라에 아부해서 한 자리 한 몫 챙겨보려는 자들[류청신, 오잠 등]에 의해서, 고려를 원나라의 내지와 똑같이 내성으로, 편입해 달라는 상소를 올리는 자들이 나옵니다.
 
이건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할 때도, 이런 일이 벌어진 적이 있는데요, 이승만, 정한경 같은 무리들이 주장한 ‘외교노선’이라는 게 뭐였냐면, 우리 조선을 미국의 하와이 다음 가는 51번째 주로 편입시켜 달라고, 청원을 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발각 되어서 단재 신채호 선생이 이승만, 정한경을 탄핵했습니다.
 
2016년에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는데, 이전에 임시정부 시절에 통령(統領, 오늘날의 대통령에 해당)이던 이승만이 탄핵당한 사건이 있었죠.
 
《고려사(高麗史)》의 <이제현 열전>에서 고려가 원나라의 내성으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를 막은 이제현의 상소문이 실려있는 대목. 사진=필자 제공
 
이승만 정한경 보다 800년 전에 이승만 정한경과 똑같은 무리들[류청신, 오잠 등]이 이미 고려에 있었죠. 이들이 고려를 원나라의 내성으로 편입해 달라는 상소를 올렸다는 소문을 들은 이제현은 만권당에 있으면서 원나라의 도성에 글을 올려서 고려를 원나라 내성으로 편입하는 게 부당함을 지적합니다. 뭐라고 주장하냐면, 원나라의 창업주인 세조(世祖) 쿠빌라이 칸의 조서(詔書)를 인용하고, 《중용(中庸)》을 인용하고, 고려라는 땅은 70%가 산지이거나 늪지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이득이 될 게 없다는 주장을 펴고, 역사적으로 중국에서 큰 나라가 소국을 보살펴준 사례를 들고. 고려가 원나라에 충성을 바쳤던 사례를 조목조목 거론하고, 고려가 70%가 산지거나 늪지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이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들고, 왜(倭)도 이 소식을 듣는다면. (자신들이) 원나라에 복속하지 않은 것을 잘했다고 할 것이라는 점 등을 들어서, 상소를 올립니다. 이 글은 《고려사》 <이제현 열전>에 전문이 남아있습니다. 명문장이죠. 이 글을 올리니까 “고려의 내성 편입 시도가, 잦아들었다“ 라고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이제현이 고려의 원나라 편입을 막은 것입니다.
 
지식인은 이렇게 무력이 장악하고 무력이 지배하는 시대에도, 글로써 중요하게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현이 그런 일을 해낸 거죠.
 
원나라 때 고려가 원나라의 내성으로 편입되었더라면, 우리나라가 지금 중국의 자치주가 되어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걸 막은 건 정말 큰일을 한 거죠. 이제현 선생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필자 소개 / 이상수 / 철학자·자유기고가
2003년 연세대학교 철학 박사(중국철학 전공),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 2003~2006년 베이징 주재 중국특파원 역임, 2014~2018년 서울시교육청 대변인 역임, 2018~2019년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대변인 역임. 지금은 중국과 한국 고전을 강독하고 강의하고 이 내용들을 글로 옮겨쓰는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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