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우주 왕복비행선 안을 둥둥 떠다니며, 변화하는 행성의 색깔을 바라보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눈 앞에서 목도하는 ‘환상의 미술관’ 같은 정경을.
"그런데, 제가 단순히 바라본다고 해서 그 별들의 마음 상태까지 아는 것은 아니잖아요. 제 각기 빛을 뿜어내는 행성들 각각의 다양한 모습들을, 저는 그저 받아들이면 되는 것 아닐까요."
최근 서울 마포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싱어송라이터 이승윤(35)이 말했습니다. 올해 초 정규 2집 '꿈의 거처'와 관련 "(음반이나 공연 콘셉트적 면에서) 이미지적으로 우주를 많이 차용했다"는 그는 "모두가 아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사적인 공간, 무중력 같은 앨범"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올해 초 정규 2집 '꿈의 거처'를 낸 싱어송라이터 이승윤. 사진=마름모
2011년 MBC 대학가요제 출신이자 JTBC '싱어게인(2020~2021)' 우승자. 재작년 11월 정규 1집 '폐허가 된다 해도'에 이은 이번 '꿈의 거처'는 개별 사건이나 기억의 편린들로부터 차오른 서사를 혜성 같은 선율들로 쏘아올린 음반입니다. 2022년 4월부터 올해 1월 1일까지, 약 9개월 정도 '내면의 우주'를 여행했다고.
"고민을 아우를 수 있는 완전한 문장이나 완벽한 문장을 만든다기 보다는, 각각의 고유의 마음이나 문장을 묶어서 내는데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약간의 맥락이라는 게 있다면, 그건 저 자신의 저 스스로의 맥락일 겁니다."
퀸이나 비틀스처럼 애비로드는 아니어도, 사운드적인 탐험에는 시간 제약을 두지 않았습니다. 드럼이나 스트링 세션만 녹음실을 쓰고, 보컬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머지 악기들은 개인 작업실에서 녹음을 진행한 이유입니다. 가상악기 연결('플러그인') 때 실수로 나온 리버스(소리 파형을 반전시키는 효과)를 넣는다든지, 스피커의 왜곡된 울림 현상까지도 하나의 소리로써 앨범에 투영시켰습니다.
타이틀 곡 '꿈의 거처' 역시 'E코드'를 잘못 짚다 생긴 음가로부터 만들어진 곡. 속으로는 꿈의 거처란 것을 확언하더라도, 결코 그게 아닐 수 있기에, 그는 "실수로 짚은 코드가 어지러운 마음을 표현하기 제격이었다"고 합니다. 앞서 그가 말했던 것처럼 별들의 마음 상태까지는 우리가 모르듯.
올해 초 정규 2집 '꿈의 거처'를 낸 싱어송라이터 이승윤. 사진=마름모
꿈의 거처를 곧 '너'라고 2인칭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왜 일까. "방구석에서 생각했을 때 보잘 것 없고 부끄러운 단어일지 몰라도, 그런 것들이 꿈을 꿈답게 해준다고 생각했거든요. 나혼자 간직하고 있는 단어들을 '너'라고 생각하며 썼습니다. 여러 마음 상태나 고민이나, 방향성을 퉁쳐서 꿈이라고 얘기를 하는 편인데, 그 꿈을 내가 왜 꾸고 싶어하는가, 결국은 어디로 가고 싶어하는가, 어디에 머무르고 싶어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우연적으로 얻어지는 찰나의 요소들을 우주 마법 같은 공명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에어컨 물 떨어지는 소리,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 실수로 발생한 노이즈... 스트레이트한 드럼의 '퍽퍽' 대는 소리와 트래비스 바커나 레드 제플린이 쓰는 스네어 모델들의 공간 타격감, 세련되거나(듀젠버그), 깽깽대거나(펜더), 묵직한(깁슨) 기타들을 변용하고, 여기에 군데 군데 보물찾기처럼 앰비언트나 노이즈를 숨겨둔 식.
포스트 록밴드 '잠비나이'의 이일우(기타·피리·태평소)가 참여한 곡 '야생마'는 중후반 메탈식의 변주로 넘어가며 카타르시스까지 느껴지게 합니다. 기타 언어를 아는 이일우가 피리와 태평소로 불어낸 메탈 변주인 셈. 이승윤이라는 음악가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든 곡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야생마가 날 뛰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 무조건 후주는 태평소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고요. 일우씨께서 제가 연주한 기타 파트를 듣고 피리와 태평소로 재해석해주셨습니다."
올해 초 정규 2집 '꿈의 거처'를 낸 싱어송라이터 이승윤. 최근 2월 18일(토) 19일(일) 양일간 올림픽공원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진행된 2023 이승윤 전국투어 콘서트 도킹(DOCKING)을 열고 7000여관객과 만났다. 3월 4일(토) 대구, 3월 11일(토) 부산, 3월 18일(토) 대전 3월 25일(토) 용인, 4월 1일(토) 광주로 이어간다. 사진=마름모
'말로장생' 사운드 뒷부분에 스페이스 록적인 효과들이 반짝이는 구간도 흥미롭게 들립니다. 다른 수록곡 '1995년 여름'은 최지인 시인 동명의 시를 서사적으로 재배열하고 멜로디를 입힌 노래. "제 95년 여름의 상징적 마음이 투영돼 서사의 구조를 바꾼 것은 맞아요. 그때의 저는 슬프다라고 말하지 않는, 어른들을 마주한 경험이 있거든요. 슬프다라고 이야기를 하면 인생이 전부 부정이 돼 버리는."
지금의 그는 그때 그 어른들과 달리, "슬프다고 자주 얘기할 줄 아는 어른"이 됐다고 합니다.
"기뻤던 사실도 덮을 만큼 슬펐다고 하진 않아요. 딱 어제 슬펐던 만큼, 그 만큼 얘기할 수 있는 오늘을 살고 싶어요."
또 다른 수록곡의 제목 '시적 허용'처럼 이승윤은 정해진 틀이나 한계를 깨가며 꿈을 이루고 있는 걸까. "그런 것 같습니다. 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살아가는 그 마음이 제 개인적으로는 발전적이고 유의미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사람들에게 '꿈을 가지세요' 하는 것은 때론 폭력적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운이란 것도 꿈을 이루는 데는 상당히 중요한 요소니까요. 그럼에도 꿈을 꾼다고 말하시는 분들을 위해 함께 응원하는 마음이에요. '꿈을 꾸세요, 될 겁니다' 아니고요. '꿈을 꾸시겠다고요? 그럼 화이팅입니다.'"
총 12곡이 실린 음반의 수록곡들을 녹음하며 그는 "메인 보컬의 볼륨을 1-2DB 줄여야 한다"며 엔지니어를 의아하게 했다고 합니다. 보통의 음반들에서 보컬이 두드러지는 것과는 반대인데, 보컬 역시 다른 악기와 동등한 위치에서 악기처럼 들리게 하고 싶었다고.
어릴 적부터 오아시스와 이적을 즐겨듣고 이승환의 5, 6, 7집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그가 속한 소속사 이름은 마름모. "아직 경계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창작자로서 제 마인드는 씨앗을 심는 사람이고, 가지나 열매의 과실은 함께 나누자란 생각은 분명합니다. 제 의견만 드린 것일 뿐, 본인의 자아를 담아 다양하게 해석해주셨으면 합니다. 다만, 작위적이지는 않는 선에서."
올해 초 정규 2집 '꿈의 거처'를 낸 싱어송라이터 이승윤. 최근 2월 18일(토) 19일(일) 양일간 올림픽공원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진행된 2023 이승윤 전국투어 콘서트 도킹(DOCKING)을 열고 7000여관객과 만났다. 3월 4일(토) 대구, 3월 11일(토) 부산, 3월 18일(토) 대전 3월 25일(토) 용인, 4월 1일(토) 광주로 이어간다. 사진=마름모
이번 앨범의 컬러를 "블랙 앤 골드"라고 표현한 그는 "'공허, 그럼에도 꿈'의 얘기를 계속 왔다갔다 하기 때문"이라며 "골드가 공허가 될 수도 있고 꿈이 블랙이 될 수도 있고 중의적으로 해석해주셨음 좋겠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사 쓰듯 영화적인 상상으로 대답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이번 앨범을 ‘여행지’나 특정 공간에 빗대달라니 여러 단어들이 열거됩니다.
"지하철, 버스, 삼겹살집, 맥도날드, 자동차, 기차, 산, 바다...지구의 어느 곳에서나 들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살아갈 곳은 지구니까요."
"(익도)앞에서부터 계속 우주를 얘기했는데 마무리는 지구요?"
"우주를 꿈꾸면서도, 어쨌든 현실 안에서 현실을 살아가면서 듣는 음악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초 정규 2집 '꿈의 거처'를 낸 싱어송라이터 이승윤. 사진=마름모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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