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병남 기자] 시중은행들이 유연한 조직문화 정착과 업무효율성 향상을 위한 직급파괴를 시도 중이나, 내부 분위기는 냉랭하다. 직원들 사이에선 기존 호칭에 더해 영어이름까지 섞인 데 따른 불평이 나오는가 하면, 일부 은행은 노조 반발로 도입안을 일부 철회하기도 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작년 10월말부터 영어 닉네임을 그룹 포털에 등록 후 사용하고 있다. 본점은 상시로, 영업점은 회의시간에 영어 닉네임을 사용하는 것을 독려한다. 예컨대 박성호 하나은행장은 '라울'로 불린다. 외부와 소통할 때는 기존 '김 차장'과 같이 이름과 직금을 그대로 사용한다.
문제는 임원들마다 요구하는 호칭법이 다르다는 점이다. 일부 임원은 직원들의 영어이름을 일일이 표로 정리해가며 제도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기업영업 등 외부 업무가 많은 부서에서는 호칭법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후문이다. 업무간 연락이 필요한 부서마다 내부에서 정한 호칭법이 조금씩 달라 재차 호칭을 정리하는 번거로움도 있다는 설명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영어이름이 '피터'라면 '피터님'이라고 ~님자를 붙여 마치 콩글리시처럼 부르고 있다"면서 "대외부서에 친한 동료들과의 소통 차원에서 사용되지 부서 내부에선 호칭 도입 전후로 직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국민은행도 1월 조직구조 슬림화를 통해 본부장급 부서장을 확대하고, 업무 중간 단계에 있던 팀장직을 축소하는 개편안은 도입했다. 이 과정에서 과장, 차장 등 호칭을 삭제했는데, 노조 반발로 즉시 원상태로 복귀했다. 직급 명칭이 사라지면서 급여체계가 조정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는 게 국민은행 관계자의 설명이다.
은행들이 조직 유연화 정책을 시도하는 것은 인터넷전문은행, 핀테크 등 정보통신기술을 기반한 기업들과의 경쟁이 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카카오뱅크는 전 직원이 서로 영어 닉네임을 부르면서 수평적 조직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구체적인 성과로도 이어져, 카카오뱅크의 가계자금 신용대출 잔액은 전년말 기준 15조8000억원으로 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과 케이뱅크를 포함한 점유율 비중에서 9.2%를 차지하고 있다. 2년 전보다 3.2%p 올랐다.
그러나 경영진이 조직변화를 위한 피상적인 전략만을 시도하면서 내부 반발만을 이끄는 양상이다. 2000년대 초부터 타업권에서 호칭을 없앤 시도를 이었지만, 실제 이렇다할 효과를 내지 못했다. 한화그룹, KT, 포스코 등은 되레 다시 기존 호칭법을 부활시키기도 했다. 다른 기업들보다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는 은행 조직을 감안할 때 분위기를 쇄신을 위해서는 보다 큰 틀의 개편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호칭 변화만으로 조직이 바뀔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있었다면 2000년 초반에 관련 기업문화가 확산될 때 은행들도 시도했을 것"이라면서 "늦게나마 시도하는 것은 변화에 따라가야 한다는 경영진의 조급함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시중은행들이 유연한 조직문화 정착 위해 시도 중인 직급파괴 전략이 애를 먹고 있는 가운데 하나은행 광화문역지점에서 직원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신병남 기자 fellsic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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