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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율

melody@etomato.com

사소한 것, 알려진 것도 꼼꼼히 살피겠습니다.
BBC 보도가 주는 교훈

2022-11-01 17:42

조회수 :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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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이태원에서 벌어진 참사 소식은 전국민, 전세계인에게 큰 슬픔을 안긴 사건이었다. 즐거운 감정을 교류하는 핼러윈 축제에 벌어진 비극인 데다, 희생자 대다수가 20대 청년이라는 점에서 더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슬픔이 채 가지지 않은 상황에서 각종 언론들의 자극적인 보도와 희생자들을 조롱하는 비난 댓글이 쇄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분노가 함께 올라왔다. 희생자들에 대한 장례조차 아직 다 치르지 못한 상황에서 이러한 공격적인 모습들이 남아있는 유가족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길 것만 같아 괴로웠다.
 
지난 31일자 조선일보에서는 '가면, 화려한 의상, 밤샘파티…MZ세대엔 크리스마스보다 큰 축제'라는 제목과 부정적 인상을 풍기는 사진들을 크게 배치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희생자들이 핼러윈이라는 근본없는 축제에 빠져 사태가 커졌고, 기업들도 마케팅으로 이를 부추긴 점이 문제라는 취지의 글이었다. 30일자 한국경제에서는 '지금까지 운이 좋아 사고 없었던 것뿐. 지난해도 인파 몰렸다'는 제목의 기사를 달며 논점을 흐리는 듯한 취지의 제목을 뽑기도 했다. '밀어!'를 외친 일명 '토끼머리띠남'이 문제를 키웠다느니 경찰관이 처절한 외침이라는 제목으로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경찰의 모습을 담은 기사도 참사의 일부 내용일 순 있지만 핵심을 짚지 못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앙일보, 서울신문, 조선비즈 등에서도 골목길 도로 폭이 좁아 군중 통제가 어려웠다면서도 불법적인 건축물 허가가 근본원인이라고 짚는 기사도 있었다. 참사 당일 인파가 너무 많이 몰려 경찰이 대응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주최자 없는 행사라 책임 소지를 따지기 어렵다는 멘트도 주요 방송 에서 연신 흘러나왔다. 반대로 인파가 몰릴 것을 알았는데 왜 대비하지 않았는가를 문제삼는 언론보도도 꽤 보였다.
 
그 와중에 유튜브에서 접한 영국의 BBC보도는 먹먹한 울림을 전해준다. 한 여성 기자는 담담한 목소리로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었던 외국인을 인터뷰하며 현장의 상황을 전했다. 추측성 내용과 수식어는 최대한 생략하면서 현장의 외국인 생존자들의 증언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유가족들의 모습도 함께 비추며 작년엔 통제가 있어 이러한 비극적인 일이 생기지 않았는데 올해엔 통제가 왜 없었는가, 관련 당국에 의문이 생긴다라며 보도를 마무리했다. CNN,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등도 현장의 생존자를 인터뷰하며 현장증언, 피해규모, 당국의 대비 부족 등을 다뤘다. 심지어 생존자들에 대한 이름도 익명이 아닌 실명을 거론하면서 말이다. 여과없이 사고 당시 현장 영상과 사진을 보도하는 부분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외신을 통해 국내 뉴스를 접하니 언론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참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 생존자, 목격자, 유가족을 중심으로 당시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 왜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는 어려울까 한편으론 답답함이 밀려왔다. 보도 전부가 거짓이라고 단정지을 순 없지만 굳이 필터를 끼고 우리식으로 해석을 넣어야만 했을까. 필터를 끼는 순간 팩트는 흐려질 수도 있는 만큼 우리 언론은 좀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필터를 끼고 보도를 하다보니 여론도 분열돼 서로 헐뜯고 비난하며 갈등이 커지고 있는 중이다. 
 
더욱이 사전에는 그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을 알았으면서도 참사 직전까지 주의성을 환기시키는 기사가 단 한건도 없었다는 점에서도 슬픔을 금할 수 없다. 현장의 목소리에만 집중해 보도했다면 국민들의 분열된 목소리가 조금은 덜했을 것이고, 유가족들도 희생의 원인을 알고 고인의 넋을 더욱 잘 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 강남역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희생자 합동 분양소. (사진=이선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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