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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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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팔리게 쓰지 않겠습니다.
대통령의 품격

2024-05-01 10:30

조회수 : 2,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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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최악의 순간'이란 말은 무색해지기 마련입니다. 가장 밑바닥에 있다고 여겼을 때 그보다 더 깊은 심연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곤 하니까요. 이명박·박근혜정권 치하에서 10대와 20대를 보냈습니다. 그보다 더 권위적인 정권은 없을 거라 여겼는데, 윤석열정권을 만났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미리 준비한 메시지를 꺼내고 있다. (사진=뉴시스)
 
저는 민주당 지지자도 아니고 이 대표 지지자는 더더욱 아닙니다. 굳이 이렇게 밝히는 이유는 영수회담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대표 강성 지지자라면 무의미해질 이야기입니다.
 
이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최소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영수회담 자체가 이 대표의 양보로 성사된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의제부터 먼저 조율해야 회담에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기존 입장에서 물러나 대통령실이 제안한 '사전 조율 없는 자율형식 회담'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였으니까요.
 
이 대표는 대통령을 배려하는 모습도 보여줬습니다. 김건희 여사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가족 등 주변 인사"라고 우회적으로 지적했는데 이를 두고 '배려가 아니다'라고 해석할 여지가 있을까요? 
 
반면 대통령은 시종일관 '벽' 같았습니다. 영수회담이 급한 쪽은 정작 윤 대통령이었는데 말이죠. 대통령은 지난 2년간 일관되게 이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에 '거부' 입장을 취해왔습니다. 그가 전향적인 자세를 보인 데엔 "총선 참패 후 악화일로인 민심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지지율이 최저치를 찍자고 나서, 먼저 전화를 걸었으면 몸을 낮춰야 했습니다. 당초 회담의 성패는 이 대표의 국정 쇄신 요구에 '윤 대통령이 얼마나 진정성 있게 답할지'에 달려있었는데, 대통령만 몰랐던 모양입니다. 
 
길지만 간곡한 이 대표의 모두발언을 접하고, 내심 기대했습니다. 제1야당의 대표와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 사이에 상호작용이 이뤄지는 모습을 그리는 게 그리 잘못된 일은 아닐 겁니다. 지지 정당을 떠나서요. 
 
대화의 기본 전제가 충분히 마련돼 있었거든요.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발언 비율이 '85대 15'였다는 걸 전해 듣고 경악스러웠습니다. 회담을 끝내고 국회로 돌아온 민주당 의원의 성토는 그 현장을 충분히 짐작게 했습니다. 이 대표가 안쓰러울 정도였습니다. 대통령은 소통 방식에 문제가 많은 모양입니다. 
 
앞으로의 3년이 너무 길게 느껴집니다. 묻고 싶습니다. 대통령님께선 왜 대통령이 되셨습니까?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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