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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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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 '실종'된 20대 대선…이재명·윤석열 모두 '성장'

이재명, 재벌개혁 대신 '친기업 1등' 내세워…TK에선 박정희·전두환 경제성과 재평가

2021-12-13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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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대선 단골메뉴였던 '재벌개혁'이 사라졌다. 20대 대선이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간 맞대결로 압축된 가운데 여야 모두 코로나위기 극복과 경제성장에 집중하면서 재벌개혁은 실종됐다는 평가다. 이 후보는 기존 '공정'에서 '공정성장'으로 선회, 성장전략에 방점을 찍었다. '박정희 고속도로', '전두환 경제성과' 등을 언급할 정도다. 윤 후보는 '실용주의 정당론'을 내세운 데 이어 '기업하기 좋은 환경' 등 규제 혁파를 강조했다.
 
이 후보는 10일부터 3박4일간 진행한 대구·경북 순회 일정의 상당 부분을 '산업화 성과' 재평가에 집중했다. 11일엔 산업화 인재들을 배출한 구미 금오공대를 찾았고, 12일엔 김천 경부고속도로 추풍령휴게소 기념탑을 찾아 고속도로를 만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렸다. 13일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10주기 추모식에 참석했다. 특히 11일에는 "전두환이 '3저 호황'을 잘 활용해서 경제가 망가지지 않도록, 경제가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건 성과인 게 맞다"고 말해 논란을 낳았다. 
 
2017년 대선 경선 때부터 이 후보를 지켜본 이라면 지금과 같은 입장 표명은 다소 낯설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2017년 경선에서 재벌을 적폐로 규정했고, 재벌개혁을 적폐청산의 과제로 삼았다. 문재인·안희정·최성 후보 등과 비교해 가장 적극적으로 재벌개혁을 설파했다. 당시 이 후보는 강연과 토론 등에서 "노동존중, 재벌개혁, 부자증세, 이재용·박근혜 구속과 사면금지" 등을 강조하고 "소위 재벌 가문이 부당하게 기업을 지배하고 거기에서 생기는 온갖 문제들을 없애야 된다"고 역설했다. "기업이 사회 요구에 맞게 변화하길 바란다"고도 했다.
 
1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경북 김천시 경부고속도로 추풍령휴게소 기념탑을 방문하고 있다. 기념탑은 경부고속도로 완공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 고속도로 건설 중 희생된 77인을 추념하기 위해 1970년 건립됐다. 사진/뉴시스
 
그랬던 이 후보가 5년 만에 기조를 바꿨다. 지난달 10일 대한상공회의소를 찾아 최태원 회장 등을 만나선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기업의 역할은 경제 그 자체"라며 "성장을 회복해야 불평등, 전쟁 같은 경쟁에서 벗어나서 효율성이 높은 국가로 갈 수 있고, 그 중심엔 기업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언론에서 광역자치단체장 이미지 조사를 하면서 가장 친기업적인 단체장이 누구인지를 물었더니 제가 압도적 1등을 했다"며 "노동존중과 친기업적 정치행정은 양립될 수 없는 대치적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후보는 지난 3일에도 삼성경제연구소를 방문해 "친기업과 친노동이 양립 불가능한 게 아니다"면서 "사실 가장 친노동, 친기업적인 게 가장 친경제적"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발표한 공약들을 추려보면 △대·중소기업 상생 △대기업 기술탈취 등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대전환시대의 위기를 극복할 공정성장 △노동이사제 도입 등이 있다. 또 지난 10일엔 '재벌 저격수'로 불렸던 채이배 전 바른미래당 의원을 선거대책위원회 공정성장위원장으로 영입했다. 하지만 재벌 지배구조 개선, 사익편취 금지 등을 핵심으로 한 재벌개혁 정책은 없다시피 한 게 사실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표면적으로 가장 기업 친화적이다. 윤 후보는 9일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수출기업으로서 글로벌 경쟁에 참여하는 기업에 대해 규제를 풀고, 기업들이 해외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또 "대부분의 후보들은 선거 때마다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해놓고 막상 집권하면 많은 기업인을 범죄자 취급하거나 기를 많이 죽였다"며 "기업이 성장해야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근로자가 행복한 사회가 된다는 건 초등학생도 아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윤 후보가 실용주의 정당론을 공언한 것과도 맥락이 닿았다. 윤 후보는 12일 여의도 대하빌딩에 꾸려진 새시대준비위원회 현판식에 참석해 "국민의힘도 실사구시 실용주의 정당으로 확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12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김한길 국민의힘 새시대준비위원장이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새시대준비위원회에서 현판식 시작에 앞서 차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두 후보가 재벌개혁 대신 성장론을 들고나온 건 코로나 장기화에 따른 경기침체와 경제양극화 심화로 내년 대선에는 경제해법이 최우선 과제로 부상해서다. 두 후보가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자영업자 손실보상액 등을 놓고 다투는 게 대표적이다. 두 후보의 성장론 역시 각론에선 차이가 있지만 총론에선 "성장이 시급하니 규제 철폐와 기업에 대한 대대적 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선순환시키겠다"는 것으로 닿아 있다. 지난 18대·19대 대선에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등이 '지상과제'로 다뤄진 것과 대비된다.
 
전문가들은 재벌에 집중된 경제 체질을 개선하지 않는 이상 경기침체와 경제양극화 해소는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삼성 전문가인 심정택 경제평론가는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의 정책에선 재벌개혁이라고 부를 만한 게 전무하다"며 "87년 민주화 이후 정치적 민주화는 달성됐지만 경제적 민주화, 특히 재벌개혁을 핵심 의제로 삼은 대선후보는 한 명도 없었고 모두 재벌체제 공고화에 일조했다"고 꼬집었다.
 
재벌개혁론자인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도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재벌개혁에 대한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며 "개인끼리의 공정과 불평등 해소만 주장하지, 경제체질의 '불평등 주범'에 대해선 눈을 감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등판했다고 하지만 그가 경제민주화라는 말을 처음 꺼낸 것 외에 실질적으로 재벌개혁에 이바지한 건 전혀 없다"면서 "이 후보도 원론적으로만 재벌개혁을 언급했을 뿐 정책적으로 지배구조 개선이나 사익편취 금지 등을 공약한 건 없었다"고 지적했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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