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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필자는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아직 미약하던 2015년에 <나는 국가로부터 배당받을 권리가 있다>라는 책을 써서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한 바 있다. 그래서 기본소득이 뜨거운 화두가 된 것이 반가워야 할 텐데, 지금 논의를 보자면 오히려 답답한 느낌을 받는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기본소득은 재난으로 인한 손실보상과 구분해서 봐야 한다. 코로나19나 기후위기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는 자영업자나 농민들이 있다면 제대로 손실보상을 해주는 것이 마땅하다. 본인의 귀책사유가 아닌 재난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손실보상은 실손해에 비례해서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것 자체가 손실보상책은 아니다. 손실보상이 즉시 처방의 성격을 갖는다면, 기본소득은 중·장기적인 전환을 이뤄내기 위한 방안으로 논의되어야 할 문제다. 기본소득은 날로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을 줄여나가고 온실가스를 대량배출하지 않은 사회로 전환하기 위한 대안으로 검토되어야 할 의제이기 때문이다.
둘째 지금 우리는 기본소득에 관해 학술적인 논의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부동산 정책의 실패와 시중에 대량으로 풀린 자금, 수도권·대도시 집중화로 인해 부동산 가격이 사상 유례없이 뛰어오른 상황이다. 그렇다면 주거와 부동산 문제에 대해 치열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핵심은 조세정책과 기본소득을 연계할지 여부다. 부동산 보유세와 주택임대소득 등에 대한 과세 등을 대폭 강화하고 이렇게 마련된 재원을 보편적으로 지급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유재에서 나오는 이익을 고르게 나누자는 기본소득의 정신에 비춰봐도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해 재원으로 활용하는 연계성이 중요하다. 만약 여기에 반대한다면 합당한 견을 제시해 치열한 논쟁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일각에서 기본소득을 비판하면서 '알래스카' 운운하고 있는 건 참으로 한가한 소리다. 지금 대한민국의 절박한 현실을 본다면 알래스카가 아니라 지구 어디라도 뒤져서 대안으로 참고할 만한 사례를 찾고 한국적 현실에 적용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 아닌가.
셋째 예산개혁 등과 연계된 고민이 부족하다. 올해 국가예산이 558조원이 넘어섰다. 국가예산 구조를 개혁하지 않고 기본소득 정책을 부분적으로나마 도입할 수 있을까. 비단 기본소득 때문만이 아니라 지금 유력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복지정책들을 도입하려고 해도 국가예산 구조를 개혁하지 않고서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국가예산은 늘어났는데 금액 중 상당 부분은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다. 여전히 토건사업을 벌이는데 예산이 투입되고 있고, 별 효과도 없는 정책을 집행하느라 의미 없이 낭비되는 예산도 엄청나다. 코로나19로 힘든 국민들이 많지만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들의 씀씀이는 여전하다. 관변단체들에 대한 특혜성 지원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예산구조를 그대로 둔 채로는 기본소득이든 그 어떤 복지정책이든 제대로 도입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기본소득 논의에서는 예산구조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에 관한 진지한 고민을 찾아보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이제 기본소득은 담론수준이 아니라 정책수준에서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책의 수준에서 논의된다는 것은 종합적인 고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재정정책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정책으로도 논의되어야 한다. 부동산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서 거둬들이는 세수도 기본소득의 재원이 될 수 있지만, 온실가스·미세먼지·폐기물 배출에 대해 강력한 환경세를 거둬들여서 기본소득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에 관한 논의는 너무 더딘 수준이다.
또한 기본소득은 반부패정책, 투명성 강화 정책과도 연계해서 논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은 비밀로 되어 있는 개인·법인의 납세정보를 공개하는 것도 필요하다. 핀란드 같은 나라는 그렇게 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탈세와 조세회피를 줄여야 과세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래야 증세도 가능하다. 이처럼 기본소득은 동떨어진 의제가 아니라, 다른 개혁의제들과 함께 총체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앞으로는 논의가 보다 진전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