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②레이쥔, '실패' 투성이었던 IT계의 엘리트
2016-01-26 09:00:01 2016-01-26 09:00:01
“창업은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구체적인 아이템 없이 열정과 충동으로 창업한다면 여지없이 참패합니다.”
 
레이쥔 샤오미 회장이 지난해 10월19일 컨퍼런스에
서 자사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신화
샤오미 레이쥔 회장은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냉혹하게 조언한다. 지금의 샤오미를 보면 그가 실패를 논한다는 것 자체에 큰 공감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레이쥔이 걸어온 행적을 보면 그의 조언은 충분히 수긍이 갈 수 있다.
 
1969년 출생인 레이쥔 회장은 중국 10대 명문대로 꼽히던 우한대 출신이다. 대학 시절에도 입학 2년만에 졸업학점을 모두 이수할 정도로 소문난 노력파 장학생이었다.
 
엘리트였던 그도 어릴 적부터 크고 작은 실패와 수없이 맞부딪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탄탄한 성공을 위한 내실을 다져나간다.
 
1990년 대학교 4학년 시절 그는 학과 동기, 선배들과 함께 컴퓨터 회사 ‘산써’를 창업한다. 든든한 투자금도 없었지만 레이쥔은 피나는 노력으로 중국어 입력이 가능한 PC 카드를 개발했다. 타 경쟁사보다 싼 가격에 산써의 제품은 날개 돋힌 듯 팔렸다.
 
하지만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산써는 문을 닫게 된다. 산써 제품이 잘 팔리자 더 싼 가격의 질 좋은 복제품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고 이에 산써의 매출은 급격하게 감소했다. 레이쥔은 회사에 있던 PC와 프린터만 건진 채 실패의 쓴 맛을 느끼게 된다.
 
1992년 킹소프트에 입사한 그는 3년 동안 밤낮 없이 ‘반고’라는 중국판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하지만 이 역시 실패였다. 당시 기술에만 치중해 마케팅에 약점이 있었고 이에 마이크로소프트사 등 글로벌 IT기업의 협공에 완전히 밀려나게 된다.
 
2010년 본인의 회사 샤오미를 세우고도 좌충우돌은 계속됐다. 모바일 분야에 대한 지식 부족, 2011년 첫 작품 ‘미1(Mi1)’ 출시 후 배터리 문제 등 불만 폭주, 애플의 짝퉁이란 불명예까지 계속됐다.
 
하지만 모든 실패 과정에서도 그는 꾸준히 배워갔다. 더 나은 발전 방향을 모색했다. 고객 맞춤 서비스를 개발했고, 아이폰을 넘어선 창조는 계속됐다. 그리고 지금은 화웨이와 함께 삼성, 애플을 넘보는 거대 기업이 됐다.
 
‘실패 투성이'였던 엘리트 레이쥔. 그는 지난해에도 특허 논란, 매출 목표 달성 실패 등 각종 악재에 시달렸다. 하지만 실패는 실패일 뿐. 그는 역시 오늘도 말한다. “실패는 죄가 아니고 목표가 없거나 낮은 것이 죄일 것”이라고.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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