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0년 동안 매일 실패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살아남을 수 있었나 봅니다.”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 사진/위키피디아
화웨이 설립 10주년이 되던 해에 런정페이는 ‘성공’이 아닌 ‘실패’를 논했다. 그도 그럴 것이 런정페이 회장과 화웨이엔 언제든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런정페이 회장은 1987년 2만1000위안, 동업자 5명과 함께 화웨이를 창업한다. 당시 그의 나이 44세. 장교 출신이었던 런 회장은 든든한 배경도, 사업 지식도 없었지만 패기와 뚝심만은 남달랐다.
초창기 화웨이는 전화교환기 제품을 판매하는 유통업체로 시작한다. 당시 중국 최초 경제특구였던 선전에 둥지를 틀었지만 전화교환기 판매가 신통치 않자 런정페이 회장은 지게에 제품을 싣고 중국 내륙을 곳곳으로 떠돌며 팔기 시작했다. 여기서 얻은 소규모 수익금은 직원들과 나누며 화웨이의 내일을 기약했다. 이때 그가 보여줬던 집념과 끈기의 ‘불씨’는 이후 몸과 마음을 던져 일하는 화웨이 문화를 불 지피게 된다.
‘야전침대 문화’도 유명하다. 1993년 기술적 우위가 없던 화웨이는 통신 핵심기술 선점을 기치로 내걸었다. 당시 런정페이 회장은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나면 건물에서 뛰어내리겠다는 의지까지 보인다.
회장의 열정은 회사 전체에 퍼졌다. 직원들은 일하다가 지치면 사무실에 야전침대를 펴고 쪽잠을 자면서 업무에 몰두했고 이는 오늘날 화웨이의 뿌리가 됐다.
자금 상황이 좋지 않던 위기 상황에서도 런정페이는 대단한 집념을 보여준다. 세계 통신업계가 위축됐던 2000년 그는 다국적 기업 AT&T의 기술 수준을 목표로 R&D에 30억위안을 투자한다.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8년에도 100억위안이 넘는 돈을 투자했다. 크고 작은 위기상황에서도 매년 매출의 10%를 R&D 분야에 투자한다.
이에 오늘날 ‘특허공룡’ 화웨이가 탄생하게 된다. 유엔 산하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의 지난해 3월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화웨이의 국제특허 출원건수는 3442건으로 세계 1위 업체로 도약했다.
실패에 대한 우려가 커질수록 런정페이는 이처럼 늘 무모하고 높은 목표를 설정했다. 그리고 차근차근 뚝심있게 이뤄갔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실패’를 찬양한다. 최근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실패를 회고하면 복합적인 관점으로 정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고.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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