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경제성장률이 2년 만에 다시 2%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취업자수 증가는 30만명 중반대로 지난해보다 20만명가량 줄어들고, 1인당 GDP도 작년보다 감소해 2만7000달러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도 3년 만에 전년 대비 감소하고, 연간 교역액 1조달러 시대도 5년 만에 막을 내릴 것 같다. 내년도 경제 전망도 밝지 못하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 경제의 경착륙이라는 불안요인이 있고, 대내적으로는 4년간 연 1% 정도로만 증가하는 소비 위축 문제도 해소될 것 같지 않다.
이런 암울한 현실과 전망은 한국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최근 몇 년간 전문가들 사이에 퍼지게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위기감조차 식상해져, 모두가 자포자기하고 각자도생하는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절망을 느낀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보다 경제 위기가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제2의 멕시코나 아르헨티나가 될 개연성이 더 높다.
상황이 이처럼 엄중함에도 경제 운영에 1차적 책임이 있는 정부와 여당의 인식과 태도는 안이하기 그지없다. 재정지출을 늘려 3%대 성장률을 인위적으로 유지하려는 정책 외에는,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으로 포장된 재벌 살리기라는 퇴행적 정책들뿐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조금씩 부어 자신의 임기 내에는 밑이 안 깨진 것처럼 보이게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아니라면, 현재 정부의 재정정책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단지 재정건전성만 축내는 정책이다.
핀테크 활성화와 무관한 인터넷전문은행 도입과, 이를 핑계로 은산분리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는 재벌들에게 손쉽게 국내 은행산업이라는 새로운 먹거리를 마련해 주려는 꼼수일 수 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너무나도 심각한 수준인데, 이제 은행산업마저 재벌에게 넘겨줘 이른바 ‘재벌공화국’을 완성하려는 의도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도 결국 최종재 생산을 주력품목으로 하고 있는 재벌들의 가격경쟁력을 노동비용 감소로 담보해 주려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최종재 경쟁력은 임금 수준에 의해 주로 결정되므로, 경제가 발전하고 임금과 소득이 상승하게 되면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최종재가 아닌 고부가 가치의 부품이나 중간재 생산에서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성장해야만 선진국형 산업구조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최종재 생산에 기반을 둔 한국 재벌체제 하에서 이런 강소 기업들이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경제 문제의 핵심 중 하나다.
관 주도의 재벌중심 경제 운용은 이제 한계에 왔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고 관 주도 경제 운용을 시장 중심으로 전환하는 근본적인 구조적 혁신 없이는 한국 경제가 활력을 되찾기 어렵다. 재벌의 과도한 내부거래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신생 기업들은 새로운 도전의 기회조차 가질 수 없다. 경쟁과 창조적 파괴를 통한 혁신으로 한국 경제가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 해소가 필요하다.
정부의 역할은 특정 산업이나 기업을 선택하여 육성하는 승자선택(winner picking)에서, 누구든지 능력이 있으면 성공할 수 있는 공정한 경쟁의 장과 성공한 기업가가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의 설계자로 바뀌어야 한다. 시내 면세점 사업자 선정 방식에 경매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이런 방향으로 정부 역할이 바뀌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경제에 대한 비전과 희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비단 정부와 여당만은 아니다. 야당 역시 정부와 여당의 프레임 속에서 파편적 반대의 소리만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야당식 각자도생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각자도생하는 무기력한 사회로의 퇴행을 막기 위해서는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 경쟁이 이뤄져야 한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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