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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기억과 기록의 다름에 대한 유감
국립극단 삼국유사 연극만발 <유사유감>
2014-10-15 07:46:40 2014-10-15 07:46:40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국립극단의 삼국유사 연극만발 프로젝트의 네번째 공연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이름하여 <유사유감>. 박춘근 작가와 박해성 연출가를 비롯해 유승일, 선명균, 신안진, 유영욱, 김훈만, 금정원, 김모은 배우 등 젊은 연극인들이 힘을 모아 만든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올해 발표된 국립극단의 삼국유사 시리즈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으며 공연계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유사유감>이라는 제목이 붙었을까요? 직역을 하자면 ‘남겨진 기록에 대해 어떤 감정이 남다’라는 뜻일텐데요. 그 속뜻은 이중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일차적으로는 ‘삼국사기’와 달리 정식 사서로 인정 받지 못해 유사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삼국유사’에 대한 일종의 애정 표현일 수 있겠고요. 동시에 극의 내용상 보자면 승자와 패자로 갈리는 냉혹한 세상 논리 속에서 기억과 기록이 때때로 다르게 남기도 한다는 것에 대한 유감을 표시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사진제공=국립극단)
 
◇ 상상과 역사, 연극과 현실의 경계 허물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과연 ‘삼국유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요? 일반적으로 ‘삼국유사’에 대해 널리 알려진 바는 승려 일연이 저술했으며 백제 의자왕의 삼천궁녀, 원효대사의 해골물, 신라 김유신의 삼국통일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는 것 정도일텐데요. 이처럼 ‘삼국유사’는 제목은 무척 익숙하지만 막상 책을 직접 읽어본 경우가 드문, 가깝고도 먼 텍스트입니다.
 
작가는 이러한 ‘삼국유사’의 상황을 영리하게 이용합니다. 극에서 삼국유사는 모두가 알 법한 그 수준으로만 언급되는데요. 대신 작가는 역사를 활자로 남기려는 사람들의 입장과 다툼에 주목합니다.
 
극은 일연이 삼국유사를 혼자 쓴 게 아니라 세 명의 스님, 즉 일연과 견명, 회연과 함께 썼다는 상상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견명은 일연 스님의 부모가 일연에게 지어준 이름, 회연은 일연이 승려가 된 이후 불린 이름이니만큼 전혀 엉뚱한 상상이라고만은 볼 수 없겠네요. 또 실제로 일연 스님은 밝음(明)을 뜻하는 견명과 어둠(晦)을 뜻하는 회연이라는 이름을 거쳐 종국에 밝음과 어둠을 하나로 보겠다는 뜻으로 새 이름에 일(一)자를 넣었다고 전해집니다.
 
(사진제공=국립극단)
 
인물의 이름에서 미리 힌트를 얻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 극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서로 달라 끊임 없이 다투는 견명과 회연, 그리고 그 다툼을 중재하는 일연이 일차적으로 삼각구도를 이룹니다. 일연의 대표적 제자로 꼽히는 혼구와 죽허도 등장하는데요. 이들은 세 스님들의 역사에 대한 엇갈리는 기억과 역사를 온전히 기록해내려는 욕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캐릭터로, 극의 완급을 조절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 삼국유사 편찬기의 픽션에다가 하나의 이야기가 더 더해집니다. 바로 고서연구가와 기자가 펼쳐보이는 현재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사실을 기록하려는 기자, 이를 방해하는 외부의 압력 등 익숙한 이야기가 작가의 상상력을 빌어 무대에 불쑥불쑥 끼어듭니다. 삼국시대와 현대의 이야기가 처음에는 병치되다가 나중에는 몇 백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 넘어 합쳐지는데 어색함이 없다는 게 왠지 서글프기도 합니다. 
 
◇ 기억과 기록의 문제
 
견명과 회연, 일연으로 대변되는 변증법적 구조를 토대로 극은 거듭 ‘끝장 토론’으로 흘러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억과 기록의 문제입니다.
 
‘승자의 기록은 역사가 되고 패자의 기록은 유사가 된다’는 작가의 ‘화두’가 인상적입니다. 삼국유사를 집필하는 일연의 중재 아래, 말 그대로 패자의 기록을 어떻게든 이야기로 담아내기 위한 한바탕 입씨름이 벌어집니다. 당나라에 대한 입장을 두고 신라와 백제의 대립각이 자못 크게 그려지는데요. 혼구와 죽허가 반복적으로 시연해 보이는 당대의 여러 인물들이 극에 유머를 더합니다. 
 
이처럼 작품은 당대에 치열하게 싸우고 고뇌하며 삶을 살다간 이들에 대해 기억하는 과정을 차근히 밟아 나갑니다. 이 가운데 승자의 기록은 역사가 되고 패자의 기록은 유사로 남게 되지요. 과거와 현재가 이렇게 데칼코마니처럼 비슷하게 흘러갑니다. 이 가운데 '생계불멸 불계부증(生界不滅 不界不增)', 즉 현상세계는 줄지 아니하고 본질세계는 늘지 아니한다는 일연의 화두가 한줄기 섬광처럼 다가옵니다. 
 
(사진제공=국립극단)
 
재미 있는 것은 연극 <유사유감>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경우 결국에는 왕이건 백성이건 관계 없이 모두가 같은 입장에 서게 된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마냥 분탕질로 치닫는 듯 보이던 극은 결국 한 방향으로 수렴되는데요. 진실에 대한 간절한 열망, 이것이 극중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도달하는 지점입니다. 그리고 이런 기억과 기록의 일치에 대한 열망이 결국 희망의 실마리로 남습니다. 비록 현재 모습은 그리 아니할 지라도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길을 걷는 자의 모습이 깊은 잔상을 남기는 연극입니다. 
  
-시간 : 2014년 10월7~19일
-장소 : 국립극단 소극장 판
-작 : 박춘근
-연출 : 박해성
-출연 : 유승일, 선명균, 신안진, 유영욱, 김훈만, 금정원, 김모은
-무대 : 박상봉
-조명 : 김형연
-의상 : 김지연
-음향 : 정혜수
-분장 : 이지연
-드라마투르그 : 우수진
-문의 : 1688-5966
 
이 뉴스는 2014년 10월 11일 ( 16:50:52 ) 토마토프라임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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