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명정선기자]한국은행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는 국내 통화신용정책을 수립·심의·의결하고 국내 거시경제의 흐름을 조절하는 막중한 역할을 담당한다. 한은 금통위는 독립적 금리결정을 통해 '자본주의의 최대 적(敵)'으로 불리는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예방·관리하고 국내 금융시장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국가 기구다. 그러나 최근 몇년간 물가가 치솟고 금융불안이 높아지면서 한은의 독립적 역할 수행이 사실상 실패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여기에는 1년이 넘도록 금통위원을 공석(空席)으로 방치해 놓은 한은과 청와대 등 관계 당국의 무책임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은 금통위원 공석에 따른 문제를 짚어본다. [편집자] ③
◇ 열석발언권 행사하는 기재부 차관이 '7번째 금통위원'?
금통위원 1인 공석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열석발언권을 행사하고 있는 기재부 차관이 사실상 7번째 금통위원 역할을 해온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열석발언권은 기획재정부 차관이나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정부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권한으로 실제로 행사된 적은 거의 없었다. 한은 통화정책의 중립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러나 2010년부터 재정부 차관의 열석발언권 행사가 시작됐다. 김중수 총재는 2010년 4월 취임했다. 김 총재 취임 이후에는 한은과 재정부의 정례회의도 시작됐다. 한은-재정부의 정례회의에 대해 시장에서는 '잘못된 만남'이란 비판이 일고 있다.
김태동(전 금통위원) 성균관대 교수는 "돌이켜보면 작년부터 금통위원 1인 공석과 함께 기재부 차관이 참석해서 열석발언권을 행사해왔다"며 "여러 정황을 미뤄볼때 금통위는 공석체제를 유지하면서 기재부 차관이 사실상 금통위원의 역할을 대신해온 것이나 마찬가지다"고 꼬집었다.
의결과정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이전까지 어느 금통위원이 어떤 발언을 하는지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고 또 자기 발언도 하고 나가간다는 점에서 사실상 공석인 금통위원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열석발언권은 한은법상에 있지만 실제로 행사된 적은 거의 없다"며"기재부 차관이 명실공히 정부의 총독처럼 와서 한은을 종속시키고 한은과 금통위를 폄훼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은관계자는 "열석발언권 행사가 시작된 초기에는 한 두 차례 기재부 차관이 자리에 앉아있다가 간 적은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회의에 앞서 기재부 차관이 모두 발언만 하고 바로 나가기때문에 금통위원의 의견 등을 들을 수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열석발언권 행사 자체가 한은의 중립성을 저해하는 사안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며 금통위 의결과정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보기도 어렵다.
일례로 금통위 회의 의사록을 보면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금통위가 금리를 동결했던 지난해 9월 당시 임종룡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대외 변수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데다 8.29 대책이 아직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금리를 동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우회적으로 내비친 적도 있다.
◇ 총재답지 못한 발언 잇따라.."금통위원 장기공석 의도적인 것 아니냐"
한은이 금통위원 1인 공석을 장기간 방치하고 있는 것이 '의도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에는 그간 김중수 총재의 발언과 행보가 결정적인 배경이 됐다.
김 총재는 통화신용정책에서 한은의 독립성을 지키기 보다는 청와대와 정부 눈치를 보는 듯한 모습을 더 많이 보여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는 금통위원 공석에 대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고, 중앙은행 독립성 훼손사안인 열석발언권에 대해서는 "정보 교류차원에서 유익하다"고 언급한 적도 있다.
김 총재는 취임 당시부터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를 낳았다.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이라는 그의 이력에다 총재 내정 직후 나온 "성장도 해야하고 물가도 걱정해야 하는데 이를 최종적으로 정하는 건 대통령의 몫"이라는 발언 때문이기도 하다.
정부의 과도한 성장 드라이브를 적절히 제어해 인플레이션을 예방하는 등 독립적 통화신용정책을 펴야 할 중앙은행 총재로 적절한 인물도, 적절한 발언도 아니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한은 노조가 이례적으로 성명을 발표하고 정치권에서도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지만 총재답지 못한 발언은 계속됐다.
특히, 총재 지시로 한은이 지난해부터 청와대에 정례적으로 보고한 'VIP보고서'는 한은 독립성을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비난을 사기에 충분했다.
일각에서는 한은이 '재정부 남대문 출장소'로, 김 총재는 '청와대 물가정책 비서관'이라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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