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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주아

(기고)설악산에 케이블카라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김영도 한국등산연구소 소장, 제9대 국회의원

2019-10-29 18:00

조회수 : 2,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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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케이블카 문제를 논하기 전에 설악(雪嶽)이 어떤 곳인가를 먼저 말하고 싶다. 그곳에서 가장 높은 대청봉이 해발 1708미터이니 에베레스트에 비하면 산도 아니라 보는 이도 있겠으나, 우리에게는 다시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영국의 등산백과사전을 보면, 알피니즘이란 해발 3000~4000미터 정도의 빙설지대에서 행하는 등산이라고 나와 있다. 그렇게 볼 때 우리 한국에는 등산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에베레스트를 오른 나라가 되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설악산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설악산에서 자랐고, 설악산을 거쳐 해외 원정에 도전했다.
 
1977년 에베레스트 원정등반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돌아오던 도중 네팔 카트만두에서 많은 서양인들의 질문을 받은 기억이 난다. 그들은 한국 원정대의 세계 최고봉 등정에 놀라며, 한국의 산이 얼마나 높은지 물었다. 내가 2,000미터도 안 된다고 하자, 그것은 '마운틴(mountain)'아 아니고 '(hill)'이라며, 전지훈련이라도 했는지 다시 물었다. 나는 한국의 산은 낮아도 겨울철은 준엄하다고 대꾸했다. 나는 대원들을 훈련시키며 설악에서 젊은이 셋을 잃었으니 설악은 무서운 곳이다.
 
근자에 오랫동안 논란이 됐던 설악산 케이블카 문제가 드디어 잘 마무리됐다 싶었더니, 여전이 불만이 있는 모양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놀란 것은 우리 사회 지식층의 일부 사람들이 지구상 유명한 산군의 케이블카 실태를 낱낱이 내세우며, 마치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있고도 남을 만하다고 주장하는 듯해서 나는 불쾌하다 못해 분노가 치솟았다. 나는 그가 말하는 산군을 잘 아는데, 거기는 산세가 장대해서 케이블카가 눈에 띄지 않는다. 긴 말이 필요 없다. 프랑스 샤모니의 그 유명한 에귀 뒤 미디 첨봉에 케이블카가 있지만, 거기서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까지는 1,000미터를 더 올라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유명한 돌로미티 산군은 세계적인 등반의 메카로, 그 최고봉 마르몰라다나 세 자매봉으로 유명한 드라이 친넨에는 케이블카가 없어 장대하고 고고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은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볼 뿐이다.
 
설악(雪嶽)은 이름부터 다르며,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산격(山格)을 가지고 있다. 대청봉에 올랐을 때 눈앞에 펼쳐지는 웅대하고 준엄하고 고고한 대자연의 신비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런 감격과 감동은 땀을 흘리며 힘들게 올랐을 때 비로소 내 것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설악산 대청봉에 오르면 누구나 만세를 부르고, 때로는 약속이나 한 듯 애국가를 제창한다. 전 세계 어느 산에서도 볼 수 없는 일이다. 외국의 유명한 등반기를 많이 읽고 옮겼지만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만약 케이블카로 오른다면 그런 환호성이 터져 나올까. 환호성이란 어려움을 극복하고 얻는 감동이다.
 
한국에는 해발 1,500미터 이상 되는 산이 10개도 안 되지만 일본은 450개에 가깝고, 3,000미터가 넘는 산도 여럿 있다. 이런 현실에도 우리의 소중한 산마저 유원지나 행락지로 만들겠다는 말이 나오는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설악산에 노약자와 지방 경제를 핑계로 케이블카나 설치하려는 생각은 한심스럽다. 등산 인파로 산이 망가진다고 그들을 걷지 못하게 만들며 케이블카로 흡수하려는 아이디어 앞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지금이라도 내일의 우리 주인공들을 생각한다면 설악산의 훼손을 최소화하고, 대자연의 품으로 돌려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영도 한국등산연구소 소장, 제9대 국회의원
지난 1977년 에베레스트 원정 등반에 나섰던 김영도 대장은 평생을 산악인으로 살아왔다. 올해 96세의 김영도 선생은 여전히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산에 대한 글을 쓰고 번역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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