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김재범

kjb517@etomato.com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고 이희호 여사에 대한 기억의 한 톨 흔적

2019-06-11 17:59

조회수 : 4,081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정치적인 생각과 의지를 완벽하게 배제하고 불혹을 훌쩍 넘긴 지금의 현실에서 보자면 가장 대통령다운 지도자는 누구였을까. 대부분의 많은 분들이 고 노무현 대통령을 꼽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에 앞서 기반을 다져 온 김대중 대통령이 아닐까 생각한다. 난 실제로 고 김대중 대통령을 아주 가까운 곳에서 본 어렴풋한 기억을 갖고 있다. 내가 자리했던 곳은 여의도 대선 유세장이었다. 그 당시 왜 그곳을 갔는지 전후 사정의 맥락을 기억하지도 또 부모님께 물어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정확한 것은 굉장히 가까운 발치에서 당시 3김 정치의 거두였던 고 김 전 대통령을 눈으로 봤었단 것이다. 거의 지근거리였다. 그리고 10일 밤 타계한 이희호 여사도 봤었다. 굉장히 깡마른 체구가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린 나이에도 잊지 못했던 것은 절대로 꺾이지 않을 힘을 느꼈단 것이다. 당시 그 자리에 함께 부모님에게 저 아줌마 누구야?”라고 물어봤던 것까진 기억 속 편린으로 남아 있었다.
 
사진/뉴시스
 
물론 기억의 모든 것은 이게 전부이다. 나 스스로는 정치 색도 정치권의 관심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또 흘러서 아마도 대학 시절이었던 것 같다. 시기상으론 군입대 직전 즈음이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계 은퇴 후 다시 복귀를 선언해 대선에 출마했던 그 시기이다. 대학 시절 유독 김 전 대통령을 싫어하던 선배 형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안타깝지만 유신 독재 시절의 잔재인 당시의 사회상이 만들어 버린 거짓과 허울에 교육된 부모 세대에게 다시 교육을 받아 그리 된 것이리라. 원색적인 단어를 써 김 전 대통령을 빨갱이로 싸잡아 욕을 했다. 결국 사단이 났다. 당시 그 장소는 술집이었다. 옆 테이블 손님들과 드잡이가 일어났고, 결국 경찰서까지 갔다. 물론 난 말리던 쪽이었지만 함께 경찰서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경찰서를 방문했던 경험이었다.
 
물론 그해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시 내 주변 지인들은 유독 영남 출신들이 많았다. “대한민국이 망했다는 소리를 정말 많이 들었다. 공교롭게도 김 전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되던 날은 내가 기자 생활을 사실상 첫 시작했던 한겨레 계열의 한 영화잡지사에서 마감을 하던 시기였다. 아직도 기억을 하지만 당선과 함께 한겨레 사옥이 순간 흔들릴 정도로 전직원이 환호를 하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내 직속 사수는 친구에게 전화를 하면서 이제 우리 나라 선진국된다라며 기쁘게 웃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얼마 후 대통령 취임식에서 이희호 여사의 얼굴을 봤다. 순간적으로 십 년도 훨씬 전 여의도에서 대선 유세장에서 지근거리로 바라봤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었다. 그때의 아우라는 아직도 여전했었다. 비록 TV화면을 통해 본 모습이었지만.
 
누구나 다 아는 얘기이고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또 누구나 다 알지 못하는 얘기이기도 하다. 한때 전두환 정권에 의해 사형수의 몸이 됐던 고 김 전 대통령의 옥바라지를 하기도 했었다는 고 이희호 여사의 고난이 예측조차 안됐다. 부유한 집안의 맏딸로 태어났지만 무일푼의 정치인이자 아들이 딸린 홀아비에게 자신의 인생을 선사한 고 이희호 여사의 선택의 힘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고 이희호 여사에 대한 나의 멀고 먼 기억 속 조각은 겨우 이 정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아주 약간은 아주 작게나마 무언가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애아를 자식으로 둔 부모로서 세상의 편견에 부딪쳐 살아오고 그 편견을 또 다시 오롯이 온 몸으로 받아내며 살아갈 아들의 삶에 대한 앞날을 막연히 상상해 보니 지난 밤 타계한 고 이희호 여사의 삶의 흔적이 담긴 텍스트 속에서 무언가 부모로서 아직은 세상의 해맑음 만을 기억하고 바라보는 아들에게 앞으로 남은 시간 속에 전해 줄 무언가가 있음을 느끼게 된 것 같기는 하다.
 
그 어린 시절 여의도 유세장에서 아무것도 모르던 소년 김재범의 눈에 들어왔던 고 이희호 여사의 모습. 그리고 한 나라의 퍼스트 레이디로서의 이희호 여사, 이어진 인간 이희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간 텍스트의 흔적들.
 
영면하십시오.
  • 김재범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 뉴스카페
  • email
  • 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