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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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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두산’ 이끈 박용곤 명예회장 별세…‘믿음의 경영’ 실천

경청의 리더십 보여준 ‘침묵의 거인’…“주변을 모두 아우른 큰 어른” 평가

2019-03-0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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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3일 저녁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7세. 고인은 사람을 중심에 둔 ‘믿음의 경영’으로 글로벌 두산의 기틀을 닦은 것으로 평가된다.
 
고인은 늘 인화를 강조했다고 알려졌다. 그는 평소 “인화로 뭉쳐 개개인의 능력을 집약할 때 자기실현의 발판이 마련되고, 여기에서 기업 성장의 원동력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또 “인화란 공평이 전제돼야 하고, 공평은 획일적 대우가 아닌 능력과 업적에 따라 신상필벌이 행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산의 미래를 만드는 것도 인재라고 생각했다. 고인이 생전에 한 발언들에는 사람에 대한 그의 생각의 잘 담겨있다. 그는 “두산의 간판은 두산인들입니다. 나야 두산에 잠시 머물다 갈 사람이지만 두산인은 영원합니다”, “나는 무엇보다 사람을 강조합니다. 사람들이 잘나고 못나면 얼마나 차이가 있겠습니까. 노력하는 사람, 그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능력을 발휘하도록 합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모든 사원이 일생을 걸어도 후회 없는 직장이 되도록 하겠다’는 그의 목표도 이같은 생각에서 왔다.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1996년 5월 두산그룹 신 CI 선포식에서 새로운 심벌이 새겨진 그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두산
 
새로운 시도, 부단한 혁신…‘글로벌 두산’ 기틀 닦아
 
박 명예회장은 1932년 고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의 6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동고등학교를 졸업했고,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자원해서 해군에 입대, 참전용사로 활약했다. 군 제대 후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귀국한 뒤 1960년 한국산업은행에 공채로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63년 동양맥주 평사원으로 두산그룹에 발을 들였고, 이후 한양식품 대표, 동양맥주 대표, 두산산업 대표 등을 거친 뒤 1981년 두산그룹 회장에 올랐다.
 
두산그룹 회장 재임 시 그는 국내 기업 처음으로 연봉제를 도입하고, 대단위 팀제를 시행하는 등 선진적인 경영을 적극 도입했다. 1994년에는 직원들에게 유럽 배낭여행 기회를 제공했고, 1996년 토요 격주휴무 제도를 시작했다.
 
앞서 동양맥주에 재직 중이던 1964년 당시 국내 기업에서는 생소하던 조사과라는 참모 조직을 신설해 회사 전반에 걸친 전략 수립, 예산 편성, 조사 업무 등을 수행하며 현대적 경영체계를 세웠다. 두산그룹 출신 한 원로 경영인은 “바꾸지 않으면 생존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계셨던 분”이라며 “새로운 경영기법이나 제도가 등장하면 남들보다 먼저 해보자고 하셨다”고 회고했다.
 
그는 부단한 혁신을 시도했다. 창업 100주년을 한 해 앞둔 1995년의 혁신이 대표적이다. 경영위기 타개를 위해 당시 주력이던 식음료 비중을 낮추면서 유사업종을 통폐합하는 조치를 단행해 33개에 이르던 계열사 수를 20개로 재편했다. 이어 당시 두산의 대표사업이던 OB맥주 매각을 추진하는 등 획기적인 체질 개선작업을 주도했다. 이런 선제적인 조치로 두산은 2000년대 한국중공업, 대우종합기계, 미국 밥캣 등을 인수하며 소비재 기업을 넘어서 산업재 중심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2010년 10월 선대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사진전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두산
 
경청의 리더십 보여준 ‘침묵의 거인’
 
고인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은 1960년 4월. 두산그룹이 아닌 한국산업은행에 공채 6기로 입행했다. “남의 밑에 가서 남의 밥을 먹어야 노고의 귀중함을 알 것이요, 장차 아랫사람의 심경을 이해할 것이다”라고 강조한 선친 박두병 초대회장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3년 동안 은행 생활을 한 고인은 1963년 4월 동양맥주에 말단 사원으로 입사했다.
 
1981년 그룹 회장을 맡은 이후 1985년 동아출판사와 백화양조, 베리나인 등의 회사를 인수하며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1990년대에는 시대 변화에 발맞춰 두산창업투자, 두산기술원, 두산렌탈, 두산정보통신 등의 회사를 잇따라 설립했다. 1974년 합동통신(연합뉴스 전신) 사장에 취임해 세계적인 통신사로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투자를 아끼지 않기도 했다.
 
고인은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모든 결정의 중심에 있었지만 좀처럼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상대의 말을 끝까지 경청한 뒤 자신의 뜻을 짧고 간결하게 전했다. 사업적 결단의 순간에도 실무진 의견을 먼저 경청했고 다 듣고 나서야 입을 열어 방향을 정했다.
 
재계에서 모든 사람이 인정할 정도로 과묵한 성품이었던 그는 생전에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됩니다. 또 내 위치에서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은 모두 약속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말을 줄이고 지키지 못할 말은 하지 말아야죠.”
 
한 번 일을 맡기면 상대방을 신뢰하고 오래도록 지켜보는 ‘믿음의 경영’을 실천한 고인에 대해 두산 직원들은 “세간의 평가보다 사람의 진심을 믿었고, 다른 이의 의견을 먼저 듣고 존중하고, 주변의 사람들을 넉넉하게 품어주는 큰 어른이셨다”고 말했다.
 
◆고인 약력
 
•박용곤(朴容昆)
•1932년 서울 생
•경동고등학교 졸, 미국 워싱턴 대 경영대학 졸업(1959)
•충남대학교 명예경영학 박사(1982), 연세대학교 명예법학 박사(1995)
 
1960     한국산업은행 입행
1963     동양맥주㈜ 입사
1966     한양식품㈜ 대표이사 사장
1973     동양맥주㈜ 대표이사 부사장
1974     두산산업 주식회사 대표이사 사장
1974     합동통신사 대표이사 사장
1974     한국신문협회 이사
1978     두산산업㈜ 대표이사 회장
1978     주한 볼리비아 명예영사
1981     두산그룹 회장
1981     한국능률협회 부회장
1981     국제상업회의소(ICC-KNC) 의장
1982     프로야구단 'OB BEARS' 구단주
1983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1985     주한 Ireland 명예영사
1996     두산그룹 명예회장
1998     두산건설㈜ 대표이사 회장
2008     학교법인 중앙대학교 이사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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