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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권일

이해찬과 정동영

2018-12-07 11:40

조회수 : 1,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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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66)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정동영(65) 민주평화당 대표는 대학 동기다. 두 사람은 서울대문리대 72학번이다. 이해찬은 사회학과, 정동영은 국사학과였다. 두 사람은 대학 1학년때부터 친구였다. 정동영은 “대학 다닐 때 해찬이 따라다니며 돌 던지는 걸 배웠다”고 말한 바 있다. 운동권도 여러가지다. 이해찬은 주동자에 가까웠고, 정동영은 가담자에 가까웠다.
 
이해찬은 빼빼 말랐지만 강골이었다. 고향인 청양 고추처럼 매서웠다. 순창 산골 출신인 정동영은 전쟁통에 형들을 다 잃고 졸지에 장남이 된 고학생이었다. 순수하고 따뜻한 면이 있었다. 숙대 앞 기숙사에서 친구 황지우가 코치한대로 개나리 한 묶음을 꺾어 애인인 민해경씨에게 수줍게 선물했던 총각이었다.     
 
두 사람은 친했다.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서울대 72학번 모임 ‘마당’은 두 사람이 주동이 돼 결성했다. 1974년, 두 사람은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경찰서에 잡혀가 옥고를 치렀다. 이해찬은 유치장에서 관식(官食)이 형편없다고 경찰과 대판 싸웠다. 매를 벌었다. 정동영은 그런 이해찬의 기개를 좋아했다.  
 
이해찬은 졸업 후에 학교 앞 신림동에서 광장서적을 운영했다. 고생을 하다 80년대 유행하던 사회과학 책으로 재미를 봤다. 정동영은 당시 문화경향에 시험을 봐서 MBC기자가 됐다. 미국의 명 앵커로 이름을 날린 월터 크롱카이트를 존경해 한국의 크롱카이트가 되겠다는 다부진 꿈을 꾸었고, 실제 MBC 주말앵커로 이름을 날렸다. 정동영은 기자생활을 하며 틈틈이 어렵게 사는 운동권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의 아내가 피아노학원을 해서 그래도 가난한 운동권보다는 조금 여유가 있었다. 
 
1996년, 정동영은 당시 DJ의 ‘젊은피'로 국민회의에 수혈됐고, 전주에서 국회의원이 됐다. 정치 입문 과정에서 국민회의에서 자리잡고 있던 이해찬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지난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국회의장과 5당 대표의 초월회 모임에서 문희상 국회 의장이 당 대표들과 기념촬영을 마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이해찬 대표(왼쪽에서 세번째) 정동영 대표(오른쪽) 의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권력투쟁이다. 부자관계도, 형제도 적이 될 수 있다. 하물며 친구관계야.... 두 사람의 30여년 우정은 2007년 대선 경선을 즈음해 박살이 났다. 이해찬이 총리로 있던 시절,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이던 정동영은 “3.1절에 골프 친 이해찬은 사퇴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당연히 이해찬이 거세게 반발했다.
 
권력다툼이 시작됐다. 두 사람은 나란히 대선 경선에 나섰고, 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 2007년 정동영이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가 됐지만 친노들은 전력으로 그를 돕지 않았다. 결국 그는 이명박후보에 대패했다. 그 후 이해찬과  정동영은 소 닭보듯 하는 사이가 됐다. 
 
그로부터 세월이 10여년 흘렀다. 이해찬은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됐고, 정동영은 야당인 민주평화당 대표가 됐다. 2018년 12월, 정동영 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촉구하며 국회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해찬 대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또 격하게 충돌했다. 정동영 대표가 “예산안 처리와 선거제도 개혁은 동시에 처리해야한다”고 주장하자 이해찬 대표는 “내년도 예산안을 선거구제와 연계시켜 통과를 못 시키겠다는 얘기를 듣고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30년 정치를 했는데 선거구제를 예산안과 연계시켜 통과시키지 않는 것은 처음봤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비난했다. 다분히 정동영 대표를 겨냥한 발언이었다. 정동영도 가만 있지 않았다. YTN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이해찬 대표는 20년 장기집권론을 이야기하지만 국민들 눈살 찌푸린다. 국민은 겸손을 기대한다. 어떻게 해서 한국만 예외적으로 20년 집권, 민주개혁세력이 집권한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라며 몰아세웠다. 
 
두 사람의 우정은 완전히 파탄날 걸까. 7일, 마침내 이해찬 대표는 야 3당을 제쳐놓고 자유한국당과 손잡고 내년 예산안 처리를 확정지었다. 지금은 집권 여당의 대표인 이해찬이 정동영보다 힘이 세다. 
 
기자는 두 사람을 자세히는 몰라도 조금은 안다. 기자는 두 사람의 우정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큰 관심이 없다. 다만, 한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로서 제발 민생을 챙겨달라는 것 뿐이다.  그것이 이제는 올드보이이자 정치 원로급이 된 두 사람들이 할 일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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