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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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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분단 이후 북한으로 간 대한민국 정상들

2018-09-19 17:25

조회수 : 3,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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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의 최종 휴전 협정이 체결됐습니다. 그리고 65년이 흘렀습니다. 북한 평양에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사실상 종전 선언에 해당하는 협의문을 채택했습니다. 온 국민이 환호하고 받아들여야 할 결과가 나왔습니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갈라진 한반도가 평화의 체재로 들어가기 위한 길목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이 시간 동안 남북 정상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있었던 남북 정상의 모습을 조명해 보겠습니다.

 
♦ 김일서-김구 남북 연석회의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김구 선생(19일 출발)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고 1948년 4월 중도파인 김규식 선생(21일 출발)과 함께 평양으로 출발한 바 있습니다. 두 분은 당시 북한의 최고 권력자 김일성(훗날 주석)의 뜻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4월 26일과 30일 4김 회담(김구 김규식 김일성 김두봉)이 열려 통일정부 수립, 단선단정 반대(단독선거와 단독정부, 즉 남과 북 어느 쪽만의 단독정부 수립 반대) 등을 일궈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내용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김구-김규식의 연석회의 성공했다면(한겨레21 보도) 
 
♦ 분단 이후 첫 남북 만남
 
1971년 9월 20일 판문점에서 1차 남북적십자 예비 회담이 열렸습니다. 한국전쟁 휴전으로 인한 분단 이후 첫 만남입니다. 이후 당시 대한적십자사가 ‘남북이산가족찾기운동’을 북한에 제의합니다. 북한이 이를 받아 들여서 남북한의 이산가족 상봉이 시작됐습니다. 남북한 적십자 예비 회담은 이듬해 8월 11일까지 25차례나 열렸습니다.
 
오늘은 1차 남북적십자 회담 있던 날(영남일보 보도) 
 
♦ 군사 대치 속 이뤄진 남북 오가던 만남
 
이후 가장 인상적인 만남은 1980년대 말 군사정부 시절 이뤄진 남북고위급 정치군사 회담이었습니다. 1988년 11월 북한의 연형묵 총리가 제의한 만남입니다. 2년 뒤인 1990년 9월 4일 서울에서 1차 회담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한 달여 뒤인 10월 16일 북한 평양에서 2차 회담이 열렸습니다. 결과는 큰 성과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대한민국을 방문한 연형묵 총리에게 꽃다발을 건낸 여자 어린이가 훗날 인기 탤런트인 박예진이었단 사실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당시 남북고위급 회담(로이슈 보도)
 
역대 방남 고위급 북한 인사 누구(통일뉴스 보도)
 
♦ 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전 세계가 주목한 만남이었습니다.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고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났습니다. 당시 공군 1호기를 타고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내리는 김 전 대통령의 모습이 전 세계를 전파를 탔습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예정에도 없던 김 위원장의 깜짝 등장이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김 전 국방위원장의 안내에 북한 인민군 의장대를 사열했습니다.
 
고 김 전 대통령에 이어 대통령에 취임한 고 노무현 대통령은 더욱 극적인 모습을 만들어 냈습니다. 고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2일 육로를 통해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군사분계선(MDL)을 걸어서 넘으며 1953년 정전협정 이후 MDL을 걸어서 넘은 최초의 대통령이 됐습니다. 이후 지난 4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제의에 군사분계선을 넘었다가 다시 오는 깜짝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습니다.
 
분단을 넘어 평양으로 간 대통령들(KBS 보도)
 
사진/뉴시스
  • 김재범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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