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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윤

(피플)조선 '위험의 외주화' "원·하청 구조적 원인 진단하겠다"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조사위원회 출범…배규식 위원장이 말하는 활동 방향

2017-11-15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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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러. 15일 기준 1115.70원. 현대중공업이 2002년 매입한 골리앗 크레인 가격이다. 스웨덴 말뫼의 세계적 조선소 코쿰스는 문을 닫으며 크레인 1기를 내놓는다. 높이 128m, 폭 164m, 인양능력 1500t급, 자체중량 7560t으로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인 이 크레인은 단돈 1달러에 현대중공업에 팔린다. 말뫼 주민들은 운송선에 실려 사라지는 크레인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현지 언론은 "말뫼가 울었다"고 보도했다. 이후 '말뫼의 눈물'은 이 골리앗 크레인의 별칭이자, 조선업의 몰락을 상징하는 표현이 된다. 최근 이 말뫼의 눈물과 같은 이름의 연극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연극은 조선업 호황기 경제발전과 부를 누린 부모 세대, 이후 조선업의 짙은 불황 속에 하청 노동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젊은 세대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작품 속 조선업 노동자들은 사망사고와 부상 등 산업재해의 공포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그럼에도 원청과 언론, 대중의 관심은 차갑다. 작품 밖 현실도 다르지 않다. 올해에만 삼성중공업과 STX조선해양 등 조선소에서 10여명이 넘는 노동자가 죽거나 다쳤다.
지난 2일 고용노동부는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조사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업계에 만연한 다단계 하청구조가 죽음의 외주화를 불러온다고 진단했다. 17명 민간 위원이 위촉됐다. 위원회는 안전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근원적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요청받았다. 위원장으로 위촉된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을 만나 조선업 안전 시스템의 문제점과 조사위원회의 활동 계획 등을 들어봤다.
 
조선업이 직면한 안전 문제를 진단한다면. 
조선업은 제조업 평균보다 재해율이나 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사망자수)이 높은 대표적인 위험 업종이다. 조선업 사망만인율은 1.39로, 제조업 평균 0.96에 비해 높다. 2000년 이후 조선소 노동자들은 대부분 사내 협력업체 소속이다. 그 결과 원청의 작업장 안전보건 관리에 제도적 공백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와 관련 당국은 산재 사고에 대한 기술적 원인을 밝히고, 관련 법을 위반한 사항에 대해 지속적인 처벌을 해왔다. 하지만 추락이나 충돌, 폭발 등 후진적 재해가 반복되고 있다. 기존의 기술적 원인 분석과 처벌도 필요하지만, 산재를 예방하는 데 일정한 한계에 직면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반복되는 사고와 대책, 악순환의 이유는.
지금까지 대책은 기술적, 공학적 접근이 대부분이었다. 기술적 처방은 고용주와 노동자의 관계, 즉 직접고용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오늘날 하청 계열화의 확산과 더불어 다양한 고용 형태가 등장했다. 과거와 같은 방식의 산재 예방 대책과 사후책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조선소의 사내 협력업체가 많게는 300개가 넘는다. 원청은 과거의 평면적 산업안전보건 제도와 시스템에 머물러 있다. 정부나 원청이 적용하고 있는 안전보건 활동이 생산 현장의 가장 밑바닥까지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사내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 산업재해가 집중되는 것도 기존의 안전 제도와 시스템이 변화한 산업구조와 고용구조에 맞지 않게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이유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단계 하청 구조가 '위험의 외주화'를 낳는다.
조선업은 수주산업이면서, 제품 생산기간이 다른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다. 또 경기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런 산업적 특성으로 인해 다른 제조업보다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단위로 사내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작업에 탄력적으로 투입되고 있다. 조선소 입장에서는 정규직 고용으로 인한 부담을 줄일 수 있어 효율적이다. 그러나 300개 가까운 사내 협력업체들이 존재하면서 소통과 관리의 문제점들이 노출된다. 특히 조선소는 숙련된 인력을 제때 확보하지 못하면 작업 기간이 지연되거나, 산업재해가 발생할 위험도 비례한다. 
 
배규식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조사위원회 위원장. 사진/뉴스토마토
 
조사위원회 구성과 역할은.
조사위원회는 산업재해의 기술적 측면 뿐 아니라 조선소 내 원하청 관계나 고용형태 등을 비롯해 구조적 요인들을 검토할 수 있는 인력으로 구성됐다. 특히 원·하청 실무자가 함께 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산업재해 조사위원회 구성과는 큰 차별점을 갖고 있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 등 4명은 산업안전보건 전문가로, 강문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총장 등 5명은 산업구조와 제도 전문가로 위촉됐다. 조선업계에서는 최수찬 전 현대중공업 노동자 등 4명이 참여한다. 이김춘택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남지부 사무국장과 문창숙 한국노총 부산지역본부 국장, 전승태 경영자총협회 산업안전보건팀장 등 3명은 노사단체 추천 전문가로 위촉됐다. 조사위원회는 기술분과와 제도1분과(원·하청 구조), 제도2분과(안전보건), 조사기획분과 등 모두 4개 분과별로 활동을 진행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기존 활동 경력을 중심으로 추천받았다. 현장 실무자들은 이해관계 배제를 위해 사고 당사자인 삼성중공업과 STX조선해양 출신이 아닌 조선업체의 전직 원·하청 관리자와 노동자를 추천받아 구성했다. 또 각 위원은 2개 분과씩 참여해 다양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장 방문에서 중점적으로 살펴볼 부분은.
삼성중공업과 STX조선해양 등 산재가 발생했던 조선소를 직접 방문할 계획이다. 늦어도 다음달 초에는 현장에서 면접조사와 설문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조사기획분과를 중심으로 현장 방문과 설문조사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중이다. 우선, 현장에선 기존 안전보건공단의 사고조사를 바탕으로 사고의 기술적 원인을 살펴볼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원청의 산업안전보건 관리 현황과 함께 사내 협력업체 관리 실태를 점검할 계획이다. 올해 두 조선소에서 목숨을 잃은 10명의 노동자 모두 사내 협력업체 소속이다. 원청의 사내 협력업체 관리 실태를 중점적으로 살펴볼 수밖에 없다. 또 원청과 협력업체 관계를 기본으로 사내 협력업체에서 파생되는 소위 '물량팀'의 실태와 재하청 구조도 확인할 계획이다. 여러 단계의 재하청 구조가 산재 발생의 한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사할 방침이다. 아울러 사내 협력업체들의 일상적인 작업 진행 과정의 적절성과 안전보건 관리 실태로 들여다 본다. 원청의 무리한 작업일정 진행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거나, 이로 인해 사고 발생 위험이 더욱 커지는 것은 아닌지 여부 등을 조사할 것이다. 원청과 사내 협력업체의 안전보건 관리가 다르다면, 그 이유와 구조적 원인을 밝혀낼 방침이다. 마지막으로 현장 노동자들에 대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그들의 일상적인 작업과 사고, 질병과의 연관성, 원청과 협력업체의 산업안전보건 관리 현황에 대한 의견 등을 수렴할 계획이다.
 
지난 2일 17명의 민간 위원이 참여하는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가 출범했다. 김영주(뒷줄 왼쪽에서 5번째) 고용노동부 장관과 배규식 위원장(뒷줄 왼쪽에서 4번째) 등 조사위원들이 위촉장을 받고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사위원회가 생각하는 개선 방향은.
조사위원회는 삼성중공업과 STX조선해양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한 원인을 찾기 위해 출범했다. 일정상 다른 조선소의 산재 사고를 살펴볼 시간은 안 되지만, 조선업계 전반의 산재와 원·하청 관계, 고용 형태 등 구조적 원인을 진단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특히 고용구조와 형태가 복잡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고의 기술적 원인 분석 방식은 한계가 있다. 기술적 원인 분석을 토대로, 고용 특성을 반영한 산재 원인 조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 나아가 변화하는 노동시장의 특성을 반영해 산업안전보건법도 개정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아쉬운 점은 활동기한이 4개월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한 차례 연장할 수 있지만 조사위원회가 큰 변화를 도출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이번 활동이 산재 사고와 산업안전보건 문제에서 사회·환경적 요인을 찾는 데 출발점 역할을 하길 바란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사회적 논의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신상윤 기자 newm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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