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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연

"기아차 재정부담 가능성 인정되지만 충분히 감당"

법원, 신의칙 위반 주장 일축…"근로자들, 예상 외 이익 추구도 아니야"

2017-08-3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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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법원이 경제계 이목이 쏠렸던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 관련해 사측은 노동조합에 4223억원을 배상하라고 31일 판결했다. 상여금 및 중식대는 통상임금으로 봤고 일비는 고정성이 없다며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특히 중요 쟁점이었던 "노조의 임금 소급 청구는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사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에 쟁점이 된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이란 '인간이 신의와 성실을 가지고 행동해 상대방 신뢰와 기대를 배반해서는 안 된다'는 법 원리로 현행 민법 제2조 1항은 '권리 행사와 의무 이행은 신의를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측은 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설령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노조와 사측이 소송 이전부터 수년간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는다고 합의했기 때문에 이를 번복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이 신의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해왔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13년 12월 대법원 판례가 기준이 됐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신의칙 적용 요건으로 ▲노사합의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 산정 기준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전제로 임금수준을 정한 경우▲근로자가 추가 수당 지급을 요구하면서 노사가 합의한 임금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예상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사용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를 꼽았다. 이에 해당하면 근로자의 주장은 신의칙에 어긋나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요지였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재판장 권혁중)는 "원고들은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에 의해 인정되는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고, 당해 법정수당의 근거가 되는 과거의 연장·야간 및 휴일근로로 생산한 부분의 이득은 이미 피고가 향유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원고들의 청구가 정의와 형평 관념에 위배되는 정도가 중하고 명확하다고 인정되는 정도에 이르러 신의칙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원고들이 노사가 합의한 임금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예상외 이익을 추구한다고 볼 수 없다는 의미다. 
 
다만 법원은 노조와 사측이 임금 협상 과정에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해 기본급과 각종 수당의 증액 규모 및 임금 총액의 규모 등을 정하는 실무가 장기간 계속돼 정착된 관행은 인정했다. 이로 인해 기아차가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게 될 가능성은 있다고 봤지만, 그 정도가 사측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정도라고 해석했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기아차가 2008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지속해서 상당한 당기순이익을 거둬왔고,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적이 없는 점을 꼽았다. 또 같은 기간 매년 약 1조에서 16조원의 이익잉여금을 보유했고, 자본 대비 부채비율이 169.14%에서 63.70%로 낮아지는 등 사측 재정 및 경영상태와 매출실적 등이 나쁘지 않은 점과 앞으로 분할상환의 가능성도 들었다. 이외에도 사측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근로자 모두에게 경영성과급을 지급했고, 그 규모는 2008년 3291억원, 2009년 3794억원, 2010년 5783억원, 2011년 6583억원, 2012년 7467억원, 2013년 7871억원, 2014년 7703억원, 2015년 6578억원, 지난해 5609억원에 이르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또 사측이 이번 소송이 인용될 경우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나 '기업 존립의 위태'라는 문제가 발생해 공장 해외 이전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는 "모두 모호하고 불확정적인 내용으로서, 추가 부담액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그러한 요건을 충족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으므로 보다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한다"고 일축했다.
 
다만, 법원마다 신의칙 적용에 대한 판단이 다르다는 비판도 나온다. 광주지법 제1민사부(재판장 구회근)는 18일 조모씨 등 5명이 금호타이어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소송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들어가면 기업으로서는 예측하지 못한 재정 부담으로 존립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사측의 신의칙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와 관련해 노조 측 변호인인 김기덕 변호사는 최근 광주지법 항소심 재판부가 1심과 달리 신의칙을 인정한 것처럼 앞으로 2심에서 신의칙 관련 판단이 바뀔 가능성에 대해 "그런 점이 우려되지만, 기아차 경영상태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을 고려하면 이번 소송건은 (판결이 뒤집히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자동차지부 노동자들이 31일 통상임금 소송 1심에서 일부 승소한 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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