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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근

(시론)트럼프와 현 정권의 블랙리스트

정주호 숭실대 법학과 초빙교수

2017-02-01 08:00

조회수 : 3,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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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몇 달째 대통령 탄핵정국으로 벌집 쑤셔놓은 듯 한 혼란에 빠져 있는 사이, 미국이 맞닥뜨린 현실도 우리 못지않아 보인다. 우리나라는 대통령과 비선실세가 지난 4년 동안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면, 미국은 재벌출신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아수라장이 돼 버렸다.
정주호 숭실대 법학과 초빙교수
  
미국은 모두가 알다시피 이민자의 나라로 불린다. 더욱이 미국은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탄 102명의 영국 청교도가 영국국교회의 종교박해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피난한 종교적 난민을 건국의 시조로 추앙한다.
 
미국의 시조로 신대륙에 도착한 102명은 약 400년 뒤 32000만명으로 늘어나면서 세계 4위의 인구를 자랑하는 세계 최강대국으로 성장했다. 이는 미국이 인종의 용광로로 불리며 전 세계인들이 모여 들었고, 자유와 평등 아래 오로지 능력만 있다면 성공할 수 있는 아메리칸 드림이 지켜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미국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반이민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반이민 행정명령의 주요 내용은 이라크, 시리아, 이란, 리비아, 소말리아, 예멘 등 무슬림테러 위험국가 국민의 비자발급 90일간 중단 그리고 대상국가 추가 확대, 테러위험국가출신 난민의 입국심사 대폭 강화, 난민입국프로그램 120일 간 중단 등을 골자로 한다.
 
전 세계는 미국의 안보를 내세우며 무슬림 국가들을 대상으로 오만과 편견이 가득한 행정명령을 내린 트럼프 행정부의 어리석은 만용에 아연실색하고 있다. 이제 미국은 자유와 인권을 지키는 세계경찰이라는 지위에서 도리어 자유와 인권을 추락시키는 민폐국가로 전락하고 있다.
 
자유와 인권은 '천부인권사상'에 기초한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한 기본적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 천부인권사상이다. '천부인권사상'은 미국의 건국이념을 나타낸 독립선언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이러한 기초 위에 세워진 트럼프 행정부는 도리어 특정 국가의 국적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일괄적으로 잠재적 테러위험분자라는 편견을 씌워 입국을 금지시키면서 자유와 인권을 탄압하고 있다. 국가와 개인을 동일시하는 연좌제로써 '천부인권사상'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반인권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제 전 세계는 오로지 트럼프식 미국의 이익만을 절대명제로 삼는 비즈니스 프랜들리 트럼프 행정부를 맞이하게 됐다. 이에 따라 형식적으로나마 다양성을 존중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지구촌이 아닌, 공식적으로 이익여부에 따라, 이해관계에 따라 친구가 될 수도 낙인을 찍어 짓밟을 수도 있는 '트럼프월드'에 휘말리게 됐다.
 
탄핵정국으로 혼란에 빠진 우리 코가 석자인데도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눈길이 가는 것은 왜일까? 현실적으로 미국이 기침하면 독감에 걸리는 우리나라의 처지도 그렇지만, 이제 지옥문이 열리는 미국에 비해 몇 년째 지옥문이 열린 채 고통당하는 우리 처지와 동병상련을 느껴져서인 것은 아닐까. 특히 최근 탄핵이슈로 주목받는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트럼프행정부의 반이민 행정명령을 비교해 보면 서로 일맥상통하는 면을 느낄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정권의 방향성과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1만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모두 좌파로 낙인찍고 모든 지원을 끊어버렸다. 트럼프 행정부는 테러리즘을 막겠다며 특정국가의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어 입국을 막았다. 서로 닮지 말아야 할 점을 닮은 꼴이다.
 
지난달 30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트럼프 대통령이 첫 통화를 하는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은 언제나 100% 한국과 함께 할 것이며, 한미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좋을 것이라는 발언을 해 화제가 됐다. 말 자체로만 보면 외교적 수사로서 한미관계를 확고히 하겠다는 의미로 읽혀진다. 하지만 100% 한국과 함께 한다는 주체가 트럼프 대통령이라면 트럼프식 미국의 이익에 부합할 때만 100% 한국과 함께할 것이란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이번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행정명령은 미국의 안보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이루어진 안보 블랙리스트다. 그러나 위대한 미국의 재건을 주창하는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는 안보와 더불어 미국 경제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언제든지 경제 블랙리스트를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따지면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안보 블랙리스트의 북한과 함께 대한민국이 경제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웃지 못 할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겐 망가지는 미국도 미국이지만 무엇보다 블랙리스트를 만든 정권으로 인해 한반도 전체가 블랙리스트의 암운에 빠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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