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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다혜

살충제

오늘 부는 바람은 / 시선

2016-09-2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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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취방은 낡았다. 가끔 물이 나오지 않다거나, 보일러가 퍼져버리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 짜증은 나지만 절대 당황하지 않는다. 고향을 떠난 지도 어언 6년. 자취 내공이 쌓일 만큼 쌓인 나에게 이런 일쯤은 일상적인 것이기에.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바퀴벌레다. 먹을 것 하나 없는 꼭대기까지 도대체 무얼 바라고 오는 걸까. 외로움을 벗 삼아 지새우는 밤이기에 낯선 손님이 반가울 법도 하건만, 빌어먹을 이 녀석만큼은 도통 그렇지 않다. 제발 발걸음을 돌려주십사 빌고 어르고 달래보아도, 눈치 없이 불쑥 나타나는 불청객의 방문은 언제나 곤혹스럽다.
 
냉장고 위에 놓인 살충제를 집어 든다. 낌새를 눈치 챈 녀석의 더듬이가 바르르 떨린다. 살생유택(殺生有擇) 이라 하였는가. 원광 스님 죄송합니다. 저도 두 발은 뻗고 자야 되지 않겠습니까. 찰나의 망설임 없이 검지 끝에 힘을 준다. 필살의 일격을 맞은 녀석은 단발마의 비명을 남긴 채 바닥에 떨어진다. 극락왕생을 읊조리며 최고급 티슈를 뽑아 삼베옷을 입혀준다. 부디 다음 생은 인간으로 태어나시길.
 
평화를 찾은 집안은 고요하다. 텅 빈 냉장고 구석에 감춰둔 맥주를 꺼내 승리의 축배를 든다.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본다. 격한 전투 끝 긴장이 풀린 탓일까, 졸음이 쏟아진다. 처리해야할 조교 일이 태산이지만 세상만사 밀어둔 채 잠을 청한다.  몇 분이 지났을까, 예상과 달리 잠이 오질 않는다. 조금만 게으름을 피워도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 교수님이 떠올라 잠자리가 불편하다. 귀찮지만 이불을 걷고 노트북을 찾아 불을 켠다.
 
사진/바람아시아
 
세상에, 방안 가득 벌레가 북적거린다. 흉측스러운 모습에 등골이 오싹해 소리를 지른다. 날 지켜보던 벌레들이 흥미로운 듯 키득거린다. “전원 기립.”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벌레들이 역한 냄새를 풍기며 일어난다. 근엄한 표정의 판사가 방문을 열고 등장한다. 웅성거리던 소음이 일순간 정지한다.
 
정신차려보니 죄수복이 입혀져 있다. 금테 안경 너머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서류를 바라보던 판사가 이내 입을 연다. “피고, 최후의 항변 하세요.” 어릴 적부터 나는 눈치가 빨랐다.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이 어렴풋이 이해되었고, 내뱉어야 할 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바퀴벌레를 죽여 죄송합니다. 다시는 죽이지 않겠습니다.” 입을 떼기 무섭게 왁자지껄한 벌레들의 웃음소리가 장내를 채운다. 간간이 들리는 야유와 비난에 입이 바짝 마른다. 누군가 나의 등을 툭툭 치며 말을 건넨다. “미안하지만 자네는 이 재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구만 그래.” 맙소사, 매사 진지한 태도로 일관하여 ‘진지충’이라 불리던 교수님이 뒷자리에 앉아있다. 그러고 보니 벌레들의 모습이 어딘가 낯익다. 사람들을 붙잡고 장황한 설명 늘어놓기를 즐겨하는 과 선배는 ‘설명충’,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된 사촌누나는 ‘맘충’, 최근 과외를 받겠다며 찾아온 고등학생은 ‘급식충’. 이제야 불합리한 이 인민재판장의 섭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판사님, 죄송하지만 저는 일베를 하지 않습니다.” 다시금 법정을 가득 울리는 웃음소리. 한참을 침묵하던 판사의 입이 열린다. “피고는 평소 글을 쓴다는 자부심으로, ‘되’와 ‘돼’를 비롯한 문법 몇 개를 남보다 조금 더 안다는 것을 앞세워 주변인들을 지적했기에, ‘문법충’의 죄를 물어 벌레로 변신할 것을 명한다.” 판결이 끝나기 무섭게 주변으로 몰려드는 벌레들. 저항해보지만 온몸 가득 돋아나기 시작하는 비늘.
 
잠시 감았던 눈을 뜬다. 끔찍한 상상을 멈춘다. 모니터 속 자리한 학생들의 글 가운데 잘못된 문법이 거슬린다. “사람 참 피곤하게 사네.” 수정된 문서를 받아볼 이들의 비아냥거림이 귓가를 맴도는 듯하다. 자판 위의 손길이 잠시 머뭇거린다. 훌륭하게 잘 썼다는 코멘트를 황급히 남기고 노트북을 닫는다.
 
부디 다음 생은 벌레로 태어나길. 나의 행위가 누군가에게 손가락질 받을 수 있다는 어쭙잖은 죄책감 따위 접어두고, 불쑥 찾아오는 불청객이라도 좋으니 차라리 ‘충(蟲)’의 낙인이 거북하지 않을 저 바퀴벌레가 되길. 
 
“저것은 없어져야 해요.” 여동생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중략) 그레고르는 여동생은 물론 누구에게도 겁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만 자기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리기 시작했을 뿐이다. 물론 그 동작이 좀 유별나 보이기는 했다. 그는 동작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족들은 그의 선한 의도를 알아차린 것 같았다. 다만 순간적으로 놀랐을 뿐이다.”
 
- 프란츠 카프카 作. ‘변신’ 中 -
 
다음날 아침 등굣길. 친구를 마주했다. 신호가 바뀌기 전 버스카드를 충전하겠다며 헐레벌떡 편의점으로 뛰어가는 그를 바라보다 이내 소름이 돋는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했던가. 아무래도 나는 피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이 틀림없다. 참 피곤한 세상이다.
 
사진/바람아시아
 
 
 
김태경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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