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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헌철

(토마토 칼럼)개, 돼지와 누진세

2016-08-09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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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째 한낮 온도가 35도를 넘기기 일쑤다. 체감 온도는 이보다 더 하다. 말 그대로 찜통 더위의 연속이다.
 
입추(7일)가 지났건만 폭염의 기세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기상청 예보대로 오는 17일까지 열대야가 지속될 경우 25일이라는 기록을 새우게 된다. 열대야 최장기록인 1994년 36일에 이어 역대 두 번째가 된다.
 
그나마 낮에는 에어컨디셔너(에어컨)가 있는 사무실에서 피할 수 있다지만 퇴근 후 사정은 180도 다르다. 밤마다 찜통 더위에도 땀을 줄줄 흘리며 참는다. 참 많이 참는다. 에어컨은 그냥 장식품일 뿐이다.
 
전기료 폭탄이 무섭기 때문이다. 주택용 전기요금에는 사용량이 많으면 높은 요금 단가가 적용되는 누진제가 적용되고 있다. 누진 요금은 6단계로 구분된다. 1단계인 100kw까지는 kw당 단가가 60.7원으로 부과되지만 그 다음 100kw 사용에 대해서는 120.9원, 가장 높은 6단계에서는 1단계보다 11.7배 높은 709.5원의 요금이 부과된다. 
 
주택용 누진제는 1차 석유파동으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경제가 어려워짐에 따라, 1974년에 가정에 높은 요금을 부과해서 절약을 유도하고 산업용은 저렴하게 해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도입됐다. 벌써 43년 전이다. 정부가 반세기 가까이 고수한 정책으로 인해 서민들은 요금 폭탄이 두려워 이처럼 더운 여름에도 마음껏 에어컨을 틀지도 못한다.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세'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한전을 상대로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인강에 따르면 최근 이틀만에 1200여명의 시민이 소송 참여 의사를 밝혔다. 2013년 8월 20명으로 시작한 이번 소송은 누적 신청 인원이 2400명을 넘어선 것이다. 그럼에도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누진제 제도 보완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 전력 과소비로 단전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0~2014년 가정용 전력소비는 0.5% 늘어나는 동안 산업용 전력소비량은 4.0%으로 크게 증가했다. 누진제의 취지가 전체 전기 사용량을 줄이자는 것인데, 오히려 누진제를 적용받지 않은 산업용 전력 소비량이 크게 증가한 것은 산자부의 해명에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국민들이 더위를 참으며 국가에 낸 세금으로 배부른 곳은 한국전력이다. 한전의 지난해 연결 기준 당기순이익은 13조4164억원에 달한다. 올 상반기에만 이미 영업이익 6조3098억원, 당기순이익 3조9306억원을 기록했다. 
 
“민중은 개, 돼지” 발언으로 온 국민을 분노에 빠트린 교육부 고위 공무원의 사고를 대다수의 정부 관계자들이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아무리 더워도 국가가 시키면 참고 그저 고분고분 받아들이라는 무언의 압력일까. 
 
미국의 전기료는 2단계로 적용되면서 1.1배 정도, 일본도 3단계로 적용되는데 1단계와 3단계의 단가는 1.4배 정도 차이에 불과하다. 대만 역시 최저와 최고단계의 단가 차이가 2.4배이며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등은 누진제를 적용하지 않고 단일요금체계로 부과하고 있다. 선진국 좋아하는 정부관계자들은 우리를 개, 돼지말고 선진국민처럼 대해주길 바란다. 
 
정헌철 생활부장 hunchu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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