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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시론)대법원은 법과 양심 앞에 떳떳한가

2015-08-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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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욱 변호사
대법원이 이상하다. 행정각부의 이상한 짓이야 어차피 권력에 굴종하는 ‘영혼 없는 공무원’들의 타락이라고 접어 줄 수도 있다. 상명하복을 강조하며 눈을 부라리는 권력 앞에 개인의 의지와 소신이 설 자리가 얼마나 되겠냐는 연민도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법부는 다르다. 특히 대법원은 진짜 달라야 한다.
 
과거 독재정권 치하에서도 “판사를 두들겨 패거나 직접 잡아가 협박하면서 판결을 강요한 적은 없었다”(한홍구). 시골로 좌천시키거나 재임용에서 탈락시킨 게 전부였다. 또 “권력자의 요구를 퇴짜 놓았다고 해서 판사를 끌어다 다그치고 고문하고 살해할 만큼 법조인에게 야박한 정권은 이 땅에 없었으며,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이 땅의 판사에게는 ‘죽느냐 사느냐’의 햄릿의 위험은 존재하지 않는다”(이재승). 그런데도 요즘 대법원의 행태를 보면 뭔가를 끊임없이 살핀다는 생각을 감추기 어렵다.
 
현재 대법원에 가장 중요한 일은 상고법원 신설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만든다는 게 대법원장의 생각이며, 그의 참모들은 법관의 신분으로 정치권에 고개 숙여 로비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지방 법관들이 변호사에게 전화하여 상고법원에 찬성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소식마저 있었으니 정말 갈 데 까지 갔다. 여러 수상한 판결의 배경에도 이를 관철시키려는 ‘정무적 판단’이 개입했다는 절망적인 소식마저 들린다. 대체 왜 이럴까? 과연 누구를 위해 이런 무리수를 두는 것일까?
 
요즘 이어지는 문제적 판결들을 보면 대법원이 가고자 하는 길이 소수자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쪽이 아닌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는 민주주의를 가장한 다수의 횡포로부터 소수자와 약자를 지켜내고 진실과 정의를 수호해야 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 이를 저버리면 그저 ‘권력의 흉기’나 ‘악마의 대리인’으로 타락할 수밖에 없다.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일영)는 지난 2월 서울고법 형사6부(재판장 김상환)가 원세훈의 선거법 위반을 꼼꼼히 짚어낸 판결을 ‘증거능력’에 관한 매우 애매하고 누추한 논리로 깨버렸다. 상식에 반하는 말장난으로 비춰지니 상고법원을 만들어 정책법원으로 가겠다는 대법원의 진의가 실은 ‘정치법원’이 되겠다는 것 아니냐는 질타가 이어진다. 대법원은 원세훈 측의 주장과 내세운 증거들에서 보이는 여러 불일치, 모순, 의문에는 애써 눈감으면서, 오히려 매우 상식적이고 치밀한 항소심의 판단과 논리에는 불신의 전제에서 현미경의 잣대를 들이대며 엄격한 증명을 요구한 것이다. 분명코 이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지켜내야 할 최고법원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희한한 일은 이번만이 아니었다. 2012년 12월 이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차례로 긴급조치 1·2·9호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금년 3월 대법원 민사3부(주심 박보영)는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이라며 국가배상을 봉쇄했다. 유신독재에 맞서 자유언론실천운동을 펼치다 해직당한 언론인들의 손해배상 청구도 기각하고(주심 신영철), 고문으로 용공조작을 했던 사건의 배상도 불법행위 당시가 아닌 민사소송 2심 변론종결일부터 이자 계산을 해야 한다는 희한한 판결(주심 차한성)로 수억원을 토해내도록 하여 피해자를 실로 두 번 죽였다. 유신시절, 국가의 책임과 잘못을 적극적으로 인정한 판사들에게 정권이 보복조치를 하자 판사들은 집단 사표를 내며 저항했다. 하지만 그 유신시절에 무고한 시민들이 당한 심각한 피해의 회복은 오늘 대법원 판결로 이렇게 거듭 저지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낸 정리해고 무효소송에서도 대법원(주심 박보영)은 사측의 거짓을 찾아 낸 항소심을 깼고, 지난 6월엔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 처분의 효력을 정지하라는 가처분 결정도 깨버리더니(주심 고영한), 그 유명한 MBC 권재홍의 ‘허리우드 액션’ 사건도 정정보도할 필요가 없다며 사실심을 뒤집었다(주심 이인복).
 
이러니 법학자들의 질타가 뼈아플 수밖에 없다. “양심을 팔고 정의와 인권을 조롱한 법관들이여, 지옥에 떨어질 지어다”(문병효), “사법부에 대한 미진한 과거 청산의 과오가 이제 양승태 대법원의 과거 회귀라는 또 다른 과거사를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우리의 민주주의는 시나브로 스러져가고 있다”(한상희). 이제 대법원 차례다. 그게 아니라고,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랐을 뿐이라고 떳떳이 국민 앞에 나설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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