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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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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람들

2024-03-19 16:58

조회수 :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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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 하안주공 6단지 아파트. (사진-하안주공6단지 재건축 추진위)
 
[뉴스토마토 송정은 기자] 얼마 전 경기도 광명시내 한 재건축 추진 아파트단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방문했던 날은 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가 각 가구들을 대상으로 재건축 안전진단 항목들을 측정하는 날이었습니다. 
 
실제 안전진단을 실시하는 것은 처음 보는 날이었기에 양해를 구하고 해당 과정을 함께 했습니다. 최근 광명시는 광명 하안택지지구 지구단위계획안을 확정한 뒤 하안주공 아파트 등 구축 대단지 아파트 재건축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이죠. 때문에 이 날 동석한 추진위 관계자들은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안전진단에 속도를 내고 있었습니다. 
 
안전진단은 층간소음 크기 측정을 비롯해 콘크리트 강도량, 철근간격 등을 측정해 적정성을 검토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세대주들은 낯선 이들의 방문에 다소 놀라면서도 취지를 설명하니 이에 동의하고 적극 협조하며 작업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최근 정부가 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에서 '안전' 항목을 최대한 완화하고 있습니다. 30년 지난 아파트의 경우 안전 진단 평가를 통과하지 않더라도 재건축 착수를 가능하게 하고, '안전 진단' 명칭도 '재건축 진단'으로 바꾸는 내용의 도시정비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죠. 
 
이 날 안전진단을 진행한 업체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정부의 안전진단 완화 움직임이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고 합니다. 작업시간도 다소 빨라졌고 그만큼 의뢰도 더 많이 들어온다는 것이었죠. 
 
안전진단 전문업체 관계자가 아파트 단지 내 철근간격을 측정하는 모습. (사진=하안주공6단지 재건축 추진위)
 
작업하는 과정에서 애로사항은 없냐는 질문을 했는데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이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방문을 꺼리는 가구가 많다는 겁니다. 이유를 물으니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내 집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라고 합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하니 '초라한 내 집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합니다. 
 
30년 이상 오래 된 구축 아파트, 특히 복도식 아파트 같은 경우 홀로 사는 중년·노년층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들은 15평 남짓한 넓지 않은 공간에 별다른 가구도 장만하지 않고 최소한의 생활도구로 살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죠. 
 
이런 분들에게 재건축이니 안전진단이니 하는 이야기는 어쩌면 너무 먼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조금은 초라해도 편하게 두 발 뻗고 지내는 내 집을 뺏어가는거냐며 역정을 내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제 아무리 좋은 취지를 설명하고 방문하려고 해도 문전박대를 하거나, 허락을 받고 안으로 들어가더라도 제대로 된 측정을 못하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합니다. 내 소중하고 프라이빗(Private)한 공간을 보여주는 게 싫은게 아닌, 볼품없고 초라한 내 집을 남에게 들켜버리는 게 싫다는 이야기가 다소 무겁게 들렸습니다.
 
혹자는 그들을 향해 누가 그런데서 살라고 등이라도 떠밀었냐고 윽박지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일견 맞는 이야기죠. 그런데 단순한 동정심의 발로가 아니라 정말 몇십년 후에는 초라한 내 집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이든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진짜로 등 떠밀려지기 전에 조금은 대책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송정은 기자 johnnys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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