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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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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현의 바위그림)시원(始原)의 숨결, 오네가호수의 주재자들

(백야의 땅, 박성현의 바위그림 시간여행-⑥)

2023-12-26 06:00

조회수 :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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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아래에 위치한 페노스칸디아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핀란드, 러시아의 콜라반도와 카렐리아 지역을 가리킵니다. 세계 곳곳에서 선사 인류의 바위그림이 발견된 것처럼, 이곳에도 수천 년 전 신석기인들이 남긴 바위그림이 있습니다. 그들은 물가의 돌에 무엇을, 왜, 새겼을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질문을 품은 채 떠난 여정, 러시아 카렐리야의 오네가호수와 비그강, 콜라반도의 카노제로호수에 새겨진 바위그림과 노르웨이 알타 암각화를 향해 가는 시간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늦은 귀가 에피소드
 
석양에 빛나는 암각화에 취해 있다가 금세 어두워지기 시작한 숲속으로 발길을 서둘렀다. 한참을 걸어 나가야 하는데 빽빽한 소나무 사이로 사람들이 점점 눈에 띄지 않는다. 길이 복잡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워낙 길치인 데다가 어두워져서인지 더욱 헷갈린다. 인터넷은 물론 휴대폰 통화도 안 되는 곳이라 길을 물어볼 사람이 나타나길 기대하며 걷는데 드디어 한 사람이 보였다. “어딜 찾으세요?” 관광객은 아니고 근처 주민인 듯하다. “배 타는 곳이요. 강 건너 캠프에서 왔는데요...” 술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조금 경계심이 들었지만 좀 더 얘기를 나누면서 곧 내 선입견을 반성했다. 그는 단지 갑자기 튀어나온 낯선 외국인이 신기해 질문을 던지고 대화하고 싶어 했을 뿐인데… 미안했다. 도와주려는 친절에 감사를 표하고 그가 가르쳐 준대로 길을 가려는 순간 암각화 임시 가이드인 게르만이 내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 돌아오지 않아 모두들 걱정했어요.” 야영장에서 나를 찾으러 배를 타고 건너온 그가 말했다. “미안합니다. 아까 내가 있고 싶은 만큼 있어도 된다고 말해서...” 사실, 낮에 그와 헤어질 때 나는 오랫동안 암각화를 보다가 갈 거라고 예고했고 그 역시 내가 있고 싶은 만큼 있다가 소리쳐 배를 부르라고 했기 때문에 변명처럼 얘기했지만 본의 아니게 걱정을 끼쳐 많이 미안했다.
 
암각화 지점으로 가는 도중 만나게 되는 빽빽한 소나무숲. 사진=박성현
 
어둠에 잠긴 캠프로 돌아오니 야영장 주인이자 안톤 선장이 아르바이트 직원들 모두에게 야단을 치고 있다. 아뿔싸, 나 때문이다. 늦게 돌아온 내 잘못이니 미안하다고 여러 번 사과하면서 직원들한테 뭐라 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있고 싶은 만큼 있어도 된다고 게르만이 말했지만 그들은 내가 그렇게까지 오래 머물 거라곤 생각지 못한 것이다. 기강을 잡는 안톤 선장의 말 내용을 들어보니 내가 외국인이라서 더 신경이 쓰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자국인보다 주위환경이 낯설 수 있고 게다가 단독으로 온 외국인이라 사라져서 문제라도 생길까봐 걱정했을 걸 생각하니 더 미안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해군 출신인 데다 직원뿐 아니라 손님들에게도 자기주장이 매우 강한 ‘군기 반장’ 스타일이라 모두가 그런 상황에 이미 익숙해 보였는데, 그만큼 통솔자로서의 책임감도 강했다. 어쨌거나 민폐를 끼쳤으니 조심하기로 마음먹고 다음날은 더 일찍 돌아왔지만, 어차피 오락가락하는 비 때문에 야영장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점차 많아졌다.
 
암각화 근처의 숲이 어두워지고 있다. 사진=박성현
 
오네가호수의 옛 주민들 ― 식물과 동물과 인간의 공존
 
도착한 날과 떠나는 날을 제외하고 머무는 내내 비가 내렸다. 야영장 사람들은 빗속에서도 낚시를 한다. 첫날엔 이웃 텐트 젊은이들이 다른 텐트 손님들과 낚시한 물고기로 식사하는 걸 지나가면서 보기만 했는데, 다음날 저녁에는 그들의 초대를 받아 오네가호수와 만나는 강인 초르나야 레치카에서 낚은 물고기 맛을 보게 됐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온 젊은이들은 매번 직접 요리를 해 먹었는데 그들의 친절 덕분에 담소를 나누면서 생선구이를 먹다 보니, 언젠가 호숫가의 고대 주민들이 이렇게 살았겠구나 싶다.
 
초르나야 레치카 하구와 오네가호수에서 직접 잡은 물고기로 식사하는 텐트 이웃들. 사진=박성현
 
암각화 지점으로 가는 길목에는 여러 안내 표지판을 볼 수 있는데, 그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중석기 시대의 주거지’라는 제목이다. 표지판의 설명에 따르면, 오네가호수 암각화 근처 몇 미터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60개 이상의 고고학 유적이 있는데, 계절에 따른 작은 거주 공간들과 대규모 정착지 그리고 묘지가 그것이다. 암각화 바로 근처에서는 약 50개의 선사시대 기념물이 확인되었다. 유적과 유물의 연대는 중석기 시대(9~8,000년 전)와 신석기 시대(7~6,000년 전), 그리고 초기 금속 및 청동기 시대(5~2,000년 전)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네가호수 암각화 근처의 고고학 유적을 설명하는 안내 표지판. '중석기 시대의 주거지'라는 제목이 보인다. 사진=박성현
 
일부 정착지에서는 신석기 시대의 특이한 석조 구조물과 살림살이 또는 일상생활을 위한 유물들이 발굴됐는데, 암각화 지점인 여러 곶과 섬들, 곶과 곶 사이 그리고 초르나야강과 보들라강 유역에 위치한다. 표지판에는 구멍·빗살무늬토기, 부싯돌과 슬레이트로 만든 도구, 불에 탄 동물 뼛조각(순록, 엘크, 물범)과 많은 물고기 척추뼈가 발견됐다고 쓰여 있다. 페트로자보츠크 박물관에서 보았던 신석기 시대의 구멍·빗살무늬토기와 청동기로의 이행기인 금석병용시대의 마름모꼴·구멍토기가 생각난다. 아마도 이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일 것이다. 이곳의 빗살무늬토기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보던 한반도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와는 달리 구멍들이 가지런히 있는 게 특징이다. 숲길에서 본 나무와 풀도(나무 모양의 바위그림도 여기 있다), 뼛조각으로 발견된 동물도, 그릇으로 생활 흔적을 남긴 인간도 수천 년 전 이곳에서 어우러져 살던 오네가호수의 옛 주민들이다.
 
오네가호수 주변 신석기 유물인 구멍-빗살무늬토기. 카렐리야공화국 국립박물관(페트로자보츠크). 사진=박성현
 
암각화의 창작자들
 
앞서, 바위의 균열선이 베소프노스의 거대인간을 수직 대칭으로 가르거나 고니의 긴 목으로 표현되었다고 소개한 바 있다. 어떤 그림에는 바위 틈새가 사람이 발 딛고 선 땅(지평선)처럼 묘사된 경우도 있다. 사실, 고대 오네가의 예술가들은 바위의 균열 외에도 자연 지형과 대상물의 속성을 활용해 암각화를 제작했다. 특히 흥미로운 한 예를 페리노스곶에서 볼 수 있는데, 바위와 바위 사이 검고 길게 패인 틈에 배를 새겨 넣어 마치 강 위를 흘러가는 듯이 묘사한 그림이다. 혹시 이것은 죽음의 강을 건너는 망자들의 배가 아닐까? 아마도 신석기 예술가는 이미 존재하는 자연미를 그들이 창조해낸 예술미와 조화시킬 줄 아는 예술적 능력의 소유자거나 자연친화적 세계관을 가진 인물이었을 수 있다.
 
자연 지형을 이용해 배가 강 위에 떠가듯이 표현된 암각화(노란색 표시 부분). 사진=박성현
 
오네가호수 안에 위치한 유즈니올레니섬(‘남쪽의 사슴섬’이란 뜻)에는 기원전 6,000년경 즉 8,000년 전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묘지가 있다. 유럽 중석기 시대의 가장 크고 독특한 매장지로 간주되는 이곳은 1936~1938년 소련 고고학자 라브도니카스의 주도로 조사되었고 이후에도 꾸준히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아온 곳이다. 발굴 당시 177개의 무덤이 나왔는데 거기에는 유골, 사냥 및 낚시 도구, 장신구와 돌로 된 성물, 뼈와 사슴뿔 등 7천 개가 훨씬 넘는 유물들이 보존돼 있었던 걸로 알려졌다. 흥미로운 점은 이 무덤들 중 네 개의 주인들이 ‘샤먼’의 역할을 한 인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제시되는 사실은 이들이 수직으로 묻혀 있고(수갱식 분묘), 동쪽을 향한 다른 무덤들과는 달리 서쪽을 향해 있으며(지하세계의 영들과 소통), 샤먼과 관련 있는 부장품들이 출토되었다는 점이다.
 
오네가호수 내 유즈니올레니섬의 올레네오스트로프스키 묘지 132번 매장을 재건축한 모습. 카렐리야공화국 국립박물관(페트로자보츠크). 사진=박성현
 
2022년 과학 저널 <네이처 이콜로지 & 에볼루션>에 발표된 한 연구논문(슐팅 외, “Radiocarbon…”)은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을 밝혀냈는데, 유즈니올레니섬의 대규모 묘지는 홀로세 초기 흩어져 살던 인류가 8,200년 전 기후냉각현상(8.2 ka cooling event)이 일어나자 이에 대처하기 위해 영토를 이루고 모여 살았던 것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보정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값을 통해 이 무덤들이 약 8,250~8,000년 사이 100~300년에 걸쳐 만들어졌고, 기후 변화와 이로 인한 환경의 변화에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 준다고 말한다. 기후가 급격히 하강하자 사람들은 사냥감이 모이는 큰 호수인 오네가에 모여 거주하면서 사회적 관계를 형성했고, 기후 하강이 해소되자 다시 기존의 흩어져 사는 생활방식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오네가호수 바위그림의 시작을 6,000~7,000년 전으로 보기 때문에 암각화의 창작자들은 이들의 후손일 가능성이 크다.
 
오네가호수와 주변의 풍광은 시원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암각화 제작 집단은 성스러운 이곳에서 사냥용 동물과 새, 물고기의 번식을 기원하고 풍요와 인간의 다산을 염원했으며 지상계와 지하계를 잇는 의례를 행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염원은 이제 신비로운 바위그림으로 남았다.
 
다산의 염원이 깃든 성행위 묘사. 페리노스곶. 왼쪽의 스케일바로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사진=박성현
 
박성현 경상국립대 학술연구교수 percept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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