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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은

금융당국, 해외법인 순환근무 규제 완화 검토

일할 만하면 본국으로 소환

2023-12-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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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허지은 기자] 금융당국이 횡령 등 금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시행한 금융사 순환근무제를 해외법인 근무자에 한해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습니다. 해외법인 근무자들은 현지 적응기를 감안하면 실질적인 업무를 보는 기간은 2년이 채 안되는데요. 그러다보니 업무연속성이 떨어진다는 문제제기가 많았습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순환근무제 강화 등 금융사 내부통제 대책 시행을 앞두고 점검에 나섰는데요. 해외법인 인력의 경우 장기간 근무가 가능한 방향으로 탄력 운영하는 방안을 논의 중입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지난 7월 금융회사 해외 진출 활성화 방안을 발표한 이후 해외 진출한 금융사들로부터 순환근무제도 완화에 대한 의견이 나왔고 이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금융사 순환근무제도. (자료=금융위원회·은행연합회, 가공=뉴스토마토)
 
내년부터 순환근무제 강화
 
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우리은행 직원의 700억원 규모 횡령 사고를 계기로 '국내은행 내부통제 혁신방안'을 마련하고, 장기근무자 비율을 제한했습니다. 장기근무자는 순환근무 대상 직원 중 5% 이내 또는 50명 이하로 관리하도록 했습니다. 같은 부서나 영업점에서 3년 이상 근무하는 직원을 최소화해, 횡령사태와 같은 금융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금융사별로 3년에서 5년 주기로 부서이동을 하도록 하고, 직무순환 기준도 자체적으로 두고 있지만 예외 기준을 두면서 내부통제 장치가 미흡하고 장기근무자 인사관리기준도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올 들어 발생한 3000억원 규모의 BNK경남은행 횡령 사고 역시 같은 업무에 15년째 장기근무한 직원이 벌인 범죄로 밝혀지면서 당국은 이 같은 혁신안을 2025년이 아닌 내년 중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그간 당국은 은행의 자율성을 인정해 전문성이 있는 부서에 대해서는 순환근무제를 탄력적으로 운영하도록 허용했습니다. 다만 해외 지점 근무자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적용해왔습니다. 국내 은행들이 내규에 순환근무제를 포함하기 시작한 것은 2013년부터인데요. 당시 국내 한 대형은행 도쿄지점에서 비자금 조성 의혹이 연달아 터진 게 계기가 됐습니다.
 
해외 법인을 두고 있는 금융사들은 해외 근무자를 대상으로도 순환근무제 규제를 완해야한다고 금융당국에 건의하고 나섰습니다. 지난 9월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베트남을 방문한 자리에서 현지 진출 금융사들은 해외 주재원에 대한 순환근무 제도 완화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해외 파견 중인 한 금융사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금융사들은 한 부서에서 3년 이상 근무한 직원의 경우 순환근무제에 따라 부서를 이동시키는데 이것이 해외 주재원에게 적용되면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며 "해외에서 3년이면 적응 시간과 한국에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기간을 제외하고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기간은 1년에서 1년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순환근무제가 도리어 해외 주재원의 업무 효율성을 저하시킨다는 것입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9월 베트남을 방문해 현지 진출한 금융사 관계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사진=금융위원회)
 
"현지 인력 순환 등 탄력운영 필요"
 
물론 해외 근무의 경우 장기근무 제한의 예외 사항으로 인정되고는 있습니다. 은행연합회 모범규준에 따르면, 은행은 직원이 장기 근무를 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건강상 이유나 지방 격오지 근무, 해외근무 등 장기근무가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는 직원에 대해서는 장기근무 제한 적용을 배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다만 은행 자체적인 내규의 예외 기준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 금융사 해외 주재원은 "장기근무제한 예외 기준이라는 것이 상당히 엄격하기 때문에 해외 파견 근무자라고 해서 무조건 장기근무 제한에서 빠지는 것이 아니다"며 "해외 주재원들이 전문성을 살릴 수 있도록, 지금보다 명확히 해외 파견 근무자에 대한 장기근무 인정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금융사 해외법인에서는 순환근무 기간이 도래할 경우 본국 소환 대신에 현지 내에서 인력을 순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건의하기도 했습니다. 금융사 관계자는 "대형 은행의 경우 베트남 지점 한국 직원 수만 30~40명 가량"이라며 "해외법인 안에서 순환근무를 시켜도 충분한 규모"라고 밝혔습니다.
 
금융당국도 해외 주재원의 전문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순환근무 제도의 일부 완화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습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해외 법인과 달리, 한국 본사에서는 해외 법인 근무를 원하는 수요가 있어 무조건 해외 법인만 장기 근무를 허용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해외 법인과 한국 본사 간 의견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해외 법인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지역에 대한 근무 수요가 크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며 "일례로 베트남의 경우 다른 해외 사무소나 법인에 비해 인기 있는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전문성 있는 주재원의 장기 근무가 필요한 곳"이라고 전했습니다.
 
베트남 호찌민 시내 한 빌딩 입주사 현황. 한국 금융사들의 사무소가 모여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허지은 기자 hj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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