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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양

jinyangkim@etomato.com

안녕하세요. 뉴스토마토 산업1부 김진양입니다.
(토마토칼럼)행정망 먹통에 드러난 디지털정부 민낯

2023-11-28 06:00

조회수 : 2,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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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터 장비 불량. 정부24, 조달청 나라장터, 모바일신분증 사이트 등 주요 대민 서비스가 연이어 문제를 일으킨 초유의 '행정망 먹통' 사태에 대해 정부가 일주일이 넘는 조사 끝에 내놓은 원인입니다. 
 
라우터는 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연결해 주는 장치인데요. 라우터에 통신선을 꽂는 포트(연결단자)가 손상돼 1500바이트 이상의 대용량 패킷이 전송될 때 약 90%가 유실됐고 통합검증 서버가 필요한 패킷을 정상 수신하지 못해 서비스가 정상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 행정안전부의 설명입니다. 다만 행안부는 부품 손상의 원인까지는 규명해 내지 못했습니다. 더불어 "해킹 등 외부 공격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처음 개통하는 사이트도 아니고, 수년간 이용해 온 서비스가 단순 하드웨어 이상으로 먹통이 됐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지만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고 발생 후 정부의 대응입니다. 
 
만일 민간 기업에서 동일한 사고가 발생했다면 훨씬 더 큰 후폭풍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운영하는 카카오는 지난해 10월 데이터센터 화재로 서비스가 전면 중단되면서 온갖 수난을 겪었는데요. 당시 카카오의 수장이었던 남궁훈 대표는 사태의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내려왔고, 창업자인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은 국정감사에 소환돼 수 차례 고개를 숙였습니다. 
 
또한 이를 계기로 국회에서는 '넷플릭스법'이라 불리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비롯한 '카카오3법'이 일사천리로 통과됐습니다. 카카오의 서비스 복구 과정은 매일 같이 전 국민에게 '재난문자'를 통해 중계됐지요. 
 
반면, 이번 '행정망 먹통'은 파급력에 비해 대응은 비교적 조용히 이뤄졌습니다. 첫 장애 직후 한덕수 국무총리가 "공공기관의 대민 서비스 중단으로 많은 국민께서 불편·혼란을 겪으신 데 대해 송구하다"며 "신속히 원인을 규명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한 각오로 임하겠다"고 사과를 하기는 했지만 서비스 장애는 며칠간 간헐적으로 더 이어졌습니다. 카카오에 요구했던 '철저한 원인 규명과 책임자 문책'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윤석열정부는 출범 첫해부터 세계를 선도하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 실현을 국정과제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대통령 직속 위원회 설치는 물론, 윤 대통령은 2년 연속 유엔 총회에 참석해 '디지털 대한민국'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에는 '디지털 권리장전'을 공표하며 한국이 디지털 신질서를 마련하겠다는 당찬 선언도 했습니다. 장애가 발생한 시점에도 윤 대통령은 해외에서 '디지털 한국'을 외치고 있었죠. 행정망 서비스의 주무 부처 장관인 이상민 장관 역시 "대한민국이 전 세계 디지털 정부와 공공행정을 선도하겠다"는 보도자료와 함께 해외 일정을 수행 중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실력으로 증명하라'고 이야기합니다.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사람은 내실이 부족한 경우도 종종 봅니다. 정부 역시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글로벌 디지털 질서를 이끌겠다' 자화자찬이 앞서는 것도, 행정망 먹통에 중소기업 기술력 혹은 전 정부 탓을 하는 것도 정부의 디지털 역량 강화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근래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의 보도자료가 급격히 늘어난 것이 그저 기분 탓이 아니길 바랍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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