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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욱

(시론)윤석열 VS 이회창

2023-08-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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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버리 논란 속에 새만금의 역사를 돌아보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2001년 5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환경운동단체들과 간담회를 갖고 새만금 사업 재검토를 시사했다. 새만금 찬성 입장의 언론에는 그를 성토하는 칼럼도 실렸다. 그는 이듬해 대선에서 새만금 개발로 다시 방향을 틀었지만, 그만을 특별히 탓할 수는 없다. 한때 ‘갯벌의 가치’를 내세웠던 노무현 대통령도 대선에서는 간척 찬성으로 선회했으니까. 그리고 요즘 진보 시민단체를 혼내주겠다고 벼르는 국민의힘에 비하면 그때 이회창의 행보는 너무나 신선해 보인다.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사사건건 민주노총 반대로만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그때 나는 이회창 총재 시절 한나라당은 어땠는지 검색을 해봤다. 이 총재와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은 2000년 5월 12일, 2001년 4월 26일, 2001년 12월 12일에 만났다. 주요 논의 사안은 ‘한나라당의 총선 공약이었던 주5일 근무제’, ‘대우차 사태 과잉진압 논란’, ‘철도 민영화’ 등이었다. 이 총재는 “우리 당이 여당 시절 노동계와 덜 친화적이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번 대우차 사태에서 벌어진 공권력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할 것”이라는 발언도 남겼다. 인천 지역 한나라당 의원들이 대우차사태 현장을 찾아 경찰에게 항의했던 적도 있었다. 
 
2001년 5월 이회창 총재는 김대중 정부가 표리부동한 재벌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판하고, 투명성과 지배구조, 재벌 총수에 대한 법적용 등을 짚으며 “재벌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그무렵 재벌개혁 논의가 한창이던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재벌들 말도 들어보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으며, “만나주기는 할 텐데 재벌들도 자체 개혁 방안을 들고 나와야 할 것”이라는 으름장도 나왔다고 한다. 이회창의 한나라당이 부패방지법과 특별검사제 도입에 대해 당시 여당보다 더 적극적이고 선제적으로 나왔던 것도 유의미한 대목이다. 
 
이회창은 노무현이 하지 않은 ‘신효순•심미선씨(미군 장갑차 사건 피해자) 조문’도 했고 촛불집회 참여까지 시도했었다. 최근 국민의힘 같으면 절대하지 못할 일이 아닐까. 국민연금을 놓고서는 노무현 후보가 보장성을 강조한 반면 이 후보는 재정안정성을 중시했는데, 이것은 ‘반복지’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복지’에 해당하며, 노무현 정부의 연금개혁안에도 수용되었다. 대북정책과 언론개혁을 놓고 극명한 차이가 드러났을 뿐 나머지 영역에선 한나라당이 민주당보다 특별히 수구보수적이지도 않았다. 일종의 ‘개혁 경쟁’이 있었던 셈이다. 
 
물론 진작부터 ‘민정계’ 등 전통적 기득권세력과 손을 잡았던 이회창은 한국 보수정당의 체질을 근본 개선하는 데는 실패했다. 대선자금 차떼기 파문 속에 정계를 떠난 것도 커다란 불명예다. 그렇지만 그는 “제가 감옥에 가겠다. 대선자금에 관한 일은 모두 제가 시켜서 한 것이다. 설혹 제가 몰랐던 부분이 있다고 해도 총체적 책임은 저에게 있다“고 말할 줄 아는정치인이기도 했다. 이회창은 훗날 회고록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 자금 문제를 근절한 공로가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윤석열 당선’과 ‘이회창 낙선’을 가른 것은 ‘대진운’밖에 없는 것 같다. 이회창의 상대는 노무현이었고, 윤석열의 상대는 이재명이었다는 차이 말이다. 2002년 대선의 ‘바보’ 노무현, ‘대쪽’ 이회창, ‘인내 9단’ 권영길은 정치개혁의 정점에서 있던 인물들이었다. 그뒤 20년을 보내고 한국사회가 맞이한 현 대통령은 노조 혐오에 찌든 극우 인사이며, 재계 비리인사와 노조 탄압자들을 사면하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방조하는 ‘강약약강’만 두드러진다. 지금의 이 시대가 부끄럽다.
 
김수민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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