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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론에 맞선 노무현을 소환한다

노무현 후보의 인천연설 "색깔론 중단해주십시오"

2023-08-2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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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4월 7일 새처년민주당 경북지역 국민경선이 열린 포항 실내체육관 연단에서 연설하는 노무현 경선후보. 사진=노무현재단 갈무리
 
[뉴스토마토 박주용·한동인 기자] "제 장인은 좌익활동하다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그 사실 알고도 결혼했습니다. 그래도 아들딸 잘 키우고 잘 살고 있습니다. 뭐가 잘못됐다는 겁니까.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 그렇게 하면 대통령 자격이 있고, 이 아내를 그대로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까."(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2년 4월 6일 새천년민주당 인천 경선 연설)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대세론의 이인제 후보는 '노풍(노무현 바람)'이 현실화되자, 노무현 후보 장인의 좌익 전력을 들고 나왔습니다. 노 후보는 "이런 아내를 버려야 하냐"며 정면 돌파를 택했습니다.
 
노 후보보다 앞서 연설했던 이 후보는 "급진 좌파가 우리 당을 점령하고 나라의 장래를 어둡게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며 철 지난 색깔론을 제기했습니다. 이 후보가 색깔론을 꺼냈던 건 민주당 심장인 광주 경선에서 노 후보에게 1위를 빼앗긴 탓입니다. 결국 이 후보는 조급함에 조선일보를 등에 업고 악수를 두게 됩니다. 과거 색깔론에 시달렸던 DJ의 한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민주당에서 빚어진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노 후보의 이 연설로 색깔론을 앞세운 이 후보의 시대착오적 공격은 무력화됐습니다. 인천 연설은 노 후보가 경선 1등의 쐐기를 박은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시 연설은 선거 때마다 회자되는 명연설"이라고 했습니다. 
 
이분법적 색깔론의 재등장…"대통령실이 뒤에 있다"
 
반공 이념을 앞세운 철 지난 색깔론은 2023년 8월 재등장했습니다. 국방부는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을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데요. '공산주의 이력'을 근거로 색깔론을 씌운 '홍범도 지우기'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국방부는 전날 '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관련 입장'에서 "공산주의 이력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 설치해 기념하는 것은 육사의 정체성을 고려할 때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국방부는 홍 장군의 행적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한 호국간성 양성'이라는 육사 설립 취지와 어긋난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만주, 러시아 연해주 등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돼 사망한 홍 장군을 '공산당에 가입했던 사람'으로 깎아내린 겁니다. 
 
야당에서는 "국군의 뿌리인 독립군과 광복군의 역사를 지우는 것은 색깔론을 통해 지지층을 결집해 총선에서 이득을 보려는 윤석열정부의 천박한 정치선동"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국방부의 '홍범도 지우기'는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전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뒤에 당연히 국방부, 보훈부, 대통령실이 있다"며 "역사적인 인물의 조형물을 (육사 내에) 설치한다는 것은 임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대통령실은 사실상 뒤로 빠져 있습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날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역사 논쟁과 관련해 '뭐가 옳은지 냉정하게 보자'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보도에 대해 "대통령이 특정 입장을 밝힌다면 논의에 조금 영향력을 줄 수 있고, 합의를 도출하는 방향에서 조금 흔들릴 수 있어서 일부러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내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을 포함한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흉상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사진=뉴시스
 
윤석열정부의 자가당착…남로당 박정희는?
 
정치권뿐 아니라 역사학계에서도 논란은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홍 장군의 흉상 이전은 윤석열정부의 자가당착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지배적입니다. 역대 진보 정부뿐 아니라 보수 정부도 홍 장군의 공적을 높이 기려왔기 때문입니다.
 
박정희정부는 1962년 홍 장군이 만주에서 독립군을 지휘하며 혁혁한 공적을 올린 것을 인정해 건국훈장(대통령장)을 추서했습니다. 또 1990년 한국·소련이 수교했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홍 장관 유해 국내 봉환을 시도한 바 있습니다. 김영삼정부에서도 홍 장군의 유해 봉환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2016년 3월 박근혜정부는 7번째 214급 해군 잠수함(1800t급)의 이름을 '홍범도함'으로 정했습니다. 당시 해군은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으로 무장 독립운동을 펼친 홍범도 장군의 애국충정을 기리고, 국민 안보의식을 고취하기 위해"라고 설명했습니다. 
 
앞선 정부의 유해 국내 봉환 노력은 문재인정부에서 현실화됐습니다. 2021년 8월15일 문재인정부는 카자흐스탄 정부로부터 홍 장군 유해를 봉환받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했습니다. 또 항일무장투쟁의 상징으로 건국훈장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도 수여했습니다.
 
윤석열정부가 문제를 제기한 홍 장군의 '공산주의 이력'은 남조선노동당(남로당) 조직책 출신으로 사형 선고까지 받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박 전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고 국가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신 분"이라며 "홍 장군의 역사적인 가치는 다른 차원이라서 바로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천호선 노무현재단 이사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현 정부의 색깔론을 비교해서 생각할 만큼의 가치도 없다"며 "그동안 보수·진보를 떠나 합의한 영역이나 공감된 영역들까지 파괴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우익의 역사관이건 좌익의 역사관이건 상관없이 역사를 공부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무지에서 나오는 행동"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박주용·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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