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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연

(시론)25세 대표가 이끄는 '중고생 촛불혁명'

2022-10-27 06:00

조회수 : 3,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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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윤석열 퇴진 중고생 촛불집회'를 알리는 웹포스터가 SNS에 돌고 있다. '촛불중고생시민연대'라는 단체가 만든 이 포스터에는 집결 일시와 장소 이외에도 눈길을 끄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준비물로 '교복'이 적시돼 있다. 짐작하건대 교복을 입어야 중고생들이 집회에 참여했다는 정치적 효과를 부각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집회에 밝은 노회한 방식이라 여겨져 들여다 봤더니 '중고생이 앞장서서 혁명정권 세워내자'는 구호가 담긴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6년전 겨울 '박근혜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집회 때 중고생 집회의 장면이었다. 그때야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분노가 워낙 치솟았던 때인지라 그럴 수도 있겠다며 지나쳤던 광경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 보니 '중고생혁명 지도부'라는 플래카드 문구는 어쩐지 거북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무시무시하다. 
 
이 단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어떤 단체인가 살펴보았다. '최준호 상임대표'의 인사말이 있었다. "촛불중고생시민연대는 이 땅 중고생 저항사의 총체가 모여진 2016 촛불집회의 중고등학생들과 지지시민, 그리고 '촛불중고생정신'을 계승하는 당대의 중고등학생들이 연합해 결성한 한국 유일·최대 대중적 중고등학생 사회운동단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 대표는 1998년생이니 이제는 25세의 나이이다. 단체 이름에 '시민'이라는 용어가 들어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중고생들의 운동을 25살 먹은 선배가 대표를 맡아 이끈다는 사실은 정상적으로 비쳐지지 않는다. 
 
인사말 아래로 '2016 촛불중고생의 주역. 최준호입니다'라는 문구가 들어간 최 대표의 집회 주도 사진이 있었다. 그 때 중고생 촛불집회를 주도했던 경력을 내세운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당시의 촛불집회에 어디 주인공이 따로 있었던가.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했던 시민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광장으로 나섰던 것임에도 굳이 자신의 공으로 내세우며 단체의 위상을 높이려는 모습에서 촛불혁명도 기득권이 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수성향 언론에서 그가 '통합진보당 청소년 비대위원장 출신'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 단체의 '종북' 성향을 의심해서일 것이다. 어쩌면 최 대표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홈페이지에서 최 대표 스스로 소개하고 있는 다양한 경력들을 보니, 한마디로 말해 중고생 정치운동을 해온 활동가인 셈이다. 하지만 중고생 정치운동을 하면서 쌓은 화려한 이력이, 어째서 25세나 된 사람이 중고생운동 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는가라는 상식적인 질문을 막을 수는 없다. 중요한 정치적 고비 때 중고생들의 집회 참여가 반향을 일으켰던 것은 어디까지나 자발적이고 순수한 동기가 힘이 되었던 것인데, 이렇게 능수능란한 전문가의 지도 아래 만들어지는 중고생들의 집회는 그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오래 전에 본 영화 속 대사가 떠올랐다. 이자벨 위페르 주연의 프랑스 영화 <다가오는 것들>에서 철학 교사 나탈리는 다른 여자가 생긴 남편과 이별하고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 혼자가 된다. 영화는 마흔의 나이를 지나서야 비로소 시선을 자신의 일상으로 돌려 삶의 자유를 찾는 나탈리의 새로운 인생을 잘 담아내고 있다. 그녀의 영향으로 철학을 통해 삶을 알게 됐다는 제자 파비앵은 급진주의 학생운동가다. 나탈리는 젊었을 때 공산주의 전단지를 뿌리며 혁명운동을 했던 전력이 있다. 파비앵은 그런 그녀의 '신념과 행동의 불일치'를 비판한다. 서명이나 하는 참여 지식인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그때 나탈리는 이렇게 말한다. "급진성을 얘기하기엔 난 너무 늙었어. 게다가 다 해본 것들이기도 하고. 응, 나는 변했어. 세상은 나빠지기만 했지만 말야. 난 더는 혁명을 바라지 않아.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돕는 것. 그게 내가 바라는 거야."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탈리의 생각과 비슷해짐은 인생의 순리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우리는 문재인 정부 5년을 거치면서 '촛불의 배반'이 낳은 정치적 허무감에 갇혀 있었다. 영화 속 나탈리의 대사가 와닿는 이유도 그런 것이다. 
 
물론 윤석열 정부가 민심에 큰 실망을 낳고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철학과 비전은 보이지 않고 근래 들어서는 보수회귀의 조짐마저 보인다. 정권이 길을 잃으면 마땅히 비판할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출범한지 반년도 되지 않은 정부를 상대로 '퇴진'과 '탄핵'의 준비된 결론을 꺼내들며 중고생을 앞세우려는 모습은 거북하기만 하다.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너희가 혁명 맛을 알아?" 혁명이란 그 대의의 이면에 분노와 증오와 피가 점철된 역사이다. 그러니 '촛불중고생시민연대'의 포스터에 등장하는 '혁명'이라는 말이 중고생들에게 대체 어떤 의미로 이해될지, 먼저 한번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단지 중고생 촛불집회를 이끄는 사람들에게만 하는 얘기는 아니다. 다시 광화문에 모여 세대결을 벌이고 있는 양 극단세력을 향한 얘기이기도 하다. 상대 진영을 향한 그런 분노와 증오의 대결로는 나아질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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