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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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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장애인과 거리두는 사회

2022-04-25 06:00

조회수 : 2,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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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다리수술을 받아 한동안 깁스를 했다. 휠체어·목발 신세를 못 면하니 바닥의 모든 요철이 온몸으로 느껴지고, 높이 1~2cm 턱이라도 만나면 내장까지 흔들렸다. 버스·택시에선 눈치밥과 짜증을 감내했다. 지하철 계단을 앞두곤 식은 땀부터 흘렸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장애인의 불편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잠깐 이러다 마는데도 이정도로 고생을 하면 선천적 혹은 후천적인 이유로 장애를 갖게 된 이들은 얼마나 갑갑할까. 장애의 종류는 지체·발달·시각·청각 등 15가지라지만, 세상이 귀기울이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는 수천·수만가지로 쌓이고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고 편의시설도 어떤 기준에서는 많이 늘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비장애인 입장에서다. 마치 가진 자 입장에서 베풀어준다는 식의 시혜적 정책으로는 생색만 낼 뿐 사회를 바꾸진 못한다.
 
서울서베이 2021을 보면 의미있는 조사결과가 있다. ‘직장에서 장애인을 동료로 수용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4명 중 1명은 아니라고 응답했다. 남녀·세대간 격차보다 눈에 띄는 건 지역간 격차다. 평균 집값이 높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산다는 동남권(강남4구)에서 다른 지역보다 더 심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장애인을 하나의 울타리로 품을 수 있는 지 묻는 조사는 울타리가 좁아질수록 더 거부감이 심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친구로 지낼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서 5~15% 가량 한 발짝 뒤로 물러난다. ‘자신 혹은 자녀의 결혼 상대로 가능하냐’라는 질문에서는 가능하다는 응답이 10%대에 머물면서 아예 뒷걸음질치기 바쁘다.
 
이는 여전히 이 사회가 장애인을 ‘우리’와 다른 사람들로 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결혼은 꿈도 못 꾸고, 친구도 눈치봐야 한다. 심지어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것조차 불편해하는 사람이 상당하다. 아무리 ‘내로남불 시대’라지만, 당사자인 장애인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저 형편 좋고 여유로울 때 장애인도 챙겨야지라고 생각하다가, 내 이익이 걸렸을 때 등 돌리는 현실이다.
 
올 초에 횡단보도 우회전 단속을 두고 한동안 시끌시끌했다. 차량의 이동흐름이나 법령의 한계도 일부 이해하지만, 원칙적으로 횡단보도에서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은 보행자, 그 중에서도 교통약자다. 많은 장애인들은 주변의 도움없이 홀로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어려움을 호소한다.
 
실제 횡단보도 보행 신호시간은 비장애인에 맞춰 1초당 1m 이동하도록 맞춰져 있다. 어린이·노인보호구역은 0.8m라지만, 장애인이 보호구역으로만 다니기도 힘든 노릇이다. 최근 일부 지역처럼 보행자가 도중에 있을 경우 보행신호를 자동연장하거나, 유럽과 같이 중간에 대기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장애인콜택시도 획기적인 개선 아니면 아예 사업설계를 다시 해야한다. 앱으로 택시를 부르면 시간 맞춰 오는 세상에서 장애인콜택시는 여전히 한참 모자라며 엄청 오래 걸리고, 부정확하기까지하다. 이대로 장애인콜택시가 충분히 늘어나길 기다릴 바엔 해외처럼 유니버설디자인이 적용된 택시를 대중화해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이용하도록 하는 게 빠르다.
 
흔히 장애인의 반대말을 ‘일반인’이라 부르지만, 사실 장애인의 반대말은 비장애인일 뿐이다. 실제 우리 가족, 친구, 동료도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장애인과의 거리두기를 멈추고, 장애인 입장에 맞춰 방법을 찾는 게 우리를 위한 일이다.
 
당장 내 이해관계가 걸린 일에 무조건 불편을 감수하라는 목소리엔 거부감이 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거리를 좁히고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계속 얘기하며 사회적으로 허용 가능한 지점을 만들어야 한다. 적어도 그게 장애인의 수천·수만가지 이야기에 대한 답이다. 
 
박용준 공동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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