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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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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남는 호텔에 청년이 살자

2020-12-10 06:00

조회수 : 4,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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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코로나가 채 오기 전인 올해 초, 마포구 합정동에 유독 오래 휴업 중이던 호텔이 갑자기 증축하기 시작했다. 10여년 전만 해도 지방과 해외에서 오는 투숙객들이 줄이을 정도로 동네에서 유명한 호텔이었지만, 수년간은 제대로 영업하는 걸 보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마포구에 큰 길가를 중심으로 요 몇 년 새로 짓거나 지은 호텔들이 부쩍 늘었다. 2012년에서 2019년 사이 무려 호텔 수가 3배로 뛰었다. 같은 기간 서울 관광객은 1.5배 증가했다. 당시 정부에서 관광객이 늘어난다고 특별법까지 만들어 용적률을 더 주며 조장한 결과다.
 
당연히 호텔이 과잉공급되면서 돈 버는 호텔만 돈 벌고 공실률은 늘어만 갔다. 마침 서울시에서 2019년 5월 노는 호텔을 매입해 역세권 청년주택으로 전환하겠다며, 1호로 동묘역 인근 한 호텔을 선정해 발빠르게 발표했다. 수요와 공급이 제법 맞아 보였다.
 
서울에 집값이 훌쩍 올랐다. 서울 청년 1인 가구 3명 가운데 1명은 최소 주거기준에도 못 미치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이른바 서울 단칸방의 기준도 월 30만원에서 어느새 50만원으로 오르더니, 지금은 50만원도 훌쩍 넘겼다. 청년은 ‘지옥고’로 갈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그런데 정작 1호가 발표된지 꽤 지났는데도 이후 2호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알아보니 희망 사업자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사회주택 사업자 아이부키는 성북구 안암동 리첸카운티호텔과 중구의 한 호텔을 청년주택으로 전환하려 했으나 규제 장벽에 막혔다.
 
이미 호텔에 특별법으로 용적률 인센티브가 주어진 상황에서 다시 전환하려다보니 초과 용적률을 해결해야 용도 변경이 가능했다. 의무 주차장 확보 면적도 호텔과 주택 사이에 간극이 커 규제 개선과 제도적 뒷받침 없이 개별 사업자가 하나하나 해결하기엔 무리였다.
 
그렇게 1월 첫 보도가 나간 후, 호텔 등 도심 비주거시설을 청년주택으로 공급하는 방안이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했다. 공공사업자의 기존 주택 매입 범위가 확대돼 서울시를 거치지 않고도 LH가 사업을 추진 가능해졌다. 주차장 규제도 완화됐으며, 초과 용적률도 발코니 확장 면적을 환원하는 해법을 찾았다. 
 
LH와 아이부키는 지난달 리첸카운티 호텔을 리모델링한 안암생활 입주를 시작했다. 규제 개선과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지자 인허가·착공부터 입주까지 4개월이면 충분했다. 보증금 100만원, 월 30만원, 최장 6년 거주, 대학가 인근 위치라는 조건 모두 청년 1인 가구에 매력적이다.
 
호텔 리모델링이 위정자들의 부족한 이해로 인해 전세 대책이라거나 부동산 공급대책이라는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 있다. 객실이 크지 않은 호텔 특성상 리모델링하더라도 다인 가구 입주가 힘들어 청년 기숙사로 공급되는 상황에서 전세는 적합치 않다. 또 공급대책이라기엔 특급호텔까지 서울 모든 호텔을 다 합쳐도 6만실밖에 안 될뿐이다.
 
벌써부터 누군가는 안암생활에 사는 청년들을 ‘호텔 거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세탁과 취사 기능이 주거공간에서 빠졌다고 반 쪽짜리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전까지 지옥고 등 열악한 환경에 살다 안암생활에 입주한 청년들이 만족한다는 점이다. 정작 요즘 청년들은 굳이 세탁·취사를 방 안에서 해결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도시의 거의 대부분의 부지가 개발이 완료된 상황에서 예전처럼 남는 땅에 새로 짓는 방식은 쉽지 않다. 기존 시설 중 안 쓰이는 부분을 찾아 필요한 사람들에게 쓰임을 주는 일 또한 정책의 중요한 부분이다. 남는 호텔을 청년에게 공급하는 방법도 그 중 하나다.
 
박용준 공동체데스크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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